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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열대 작물 재배 지역 북상 중…귀농인들 커피 어때요?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성주의 귀농귀촌이야기(57)

요즘 대형마트의 채소 과일 코너나 농수산물 시장에 가보면 애플망고나, 바나나, 패션푸르트와 같은 과일이 많이 눈에 띈다. 당연히 동남아산일 줄 알았는데 국내산이라 표기가 되어 놀랄 때가 있다. 최근 동남아시아 대표 과일을 키우는 농부들이 꽤 늘었다고 전해진다. 온난화의 영향 탓에 우리나라에도 열대 과일이 자라기 시작했다. 우리 농민이 키우는 패션프루트, 애플 망고, 파파야, 구아바, 용과, 아테모야 같은 이름을 들어 본듯하지만 생소한 과일을 마트나 시장에서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재배에 성공한 이색 과일이 생각보다 많다. 키우는 작물을 지역별로 살펴보면 아무래도 남쪽 지방에서 잘 자란다. 제주도에서는 이미 망고가 널리 나기 시작했고, 전남 쪽에서는 패션푸르트, 구아바, 용과 등이 재배되고 있다. 경남 쪽에서는 10여년 전부터 키위를 키우고 있다. 우리말로 양다래라고 이름을 붙인 키위는 제주와 경남 고성, 남해를 중심으로 재배하고 있다.

아열대 과일 '리치'. 현재 우리나라에서 재배에 성공한 이색 과일이 생각보다 많다. 아열대 과일이 늘어난 건 우리나라의 기후가 점점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사진 제주도 농업기술원]

아열대 과일 '리치'. 현재 우리나라에서 재배에 성공한 이색 과일이 생각보다 많다. 아열대 과일이 늘어난 건 우리나라의 기후가 점점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사진 제주도 농업기술원]

아열대 과일이 늘어난 건 우리나라의 기후가 점점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평균 기온이 올라가면서 과일의 생육 지형이 바뀌고 있다. 옛날에는 사과가 남쪽에서만 재배돼 대구 능금이나 안동, 청송 사과가 유명했지만, 지금은 강원도에서도 재배된다. 오히려 산골짜기에서 일조량이 많아 더 맛있다고 광고한다.

사과밭을 평창의 계곡에서도 만나고 파주의 DMZ 안에서도 만난다. 어쩌면 사과, 포도, 복숭아는 북한에서도 재배되고 있을 것이다. 여름이 길어지고 봄, 가을이 없어지고 겨울은 따뜻한 기후가 형성되고 있는 한국에서 커피 농장을 만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2020년이면 우리나라 경작지 면적의 10%가 아열대 식물이 차지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이 정도라면 전통적으로 키워왔던 작물 대신 아열대 작물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것도 귀농 시 고려할 점이 되지 않느냐라는 질문도 나온다. 실제로 얼마 전에 경기도 고양시에서 커피를 재배하는 농가를 만났다. 아직은 비닐하우스에서 관상용 커피나무를 키우는 정도지만, 남쪽 지방은 커피 농장이 점점 많아지고 있단다. 지금 강릉에 커피 열풍이 부는 것이 이런 아열대 기후에 열대작물이 재배되는 것이 가능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열대 과일은 채소와 같이 꾸준히 소비되는 작물과는 다르다. 작물의 재배가 소량이고 한국에서 재배된다는 것이 신기해 관심을 가질 수 있겠지만 위험도 있다. [사진 pxhere]

열대 과일은 채소와 같이 꾸준히 소비되는 작물과는 다르다. 작물의 재배가 소량이고 한국에서 재배된다는 것이 신기해 관심을 가질 수 있겠지만 위험도 있다. [사진 pxhere]

이런 이색 열대작물은 농산물 시장의 틈새시장을 노리는 것이기 때문에 귀농·귀촌인이 관심을 가져 볼 만하다. 물론 이색작물로 큰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자. 기존 농민들과 경쟁을 피하고 틈새시장을 겨냥해 소소한 성과를 거둔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지금 열대작물이 아주 잘 팔린다고는 할 수 없다. 몇몇 농가의 희소식이 전체 열대작물 농가의 성공을 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입 과일이 값이 저렴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재배한다고 해서 더 잘 팔린다고는 볼 수 없다.

우리가 일상에서 먹는 채소나 곡물은 일시적인 기온 변화로도 수확량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가격이 급등하거나 급락해 농민들에 큰 손실을 입히기도 한다. 그래서 정부가 나서서 ‘수급 조절’을 하도록 대책을 마련한다. 아예 아열대 작물로 재배 종목을 바꾼다면 급등, 급락과 같은 변동 폭은 적지 않겠냐는 전망도 있지만, 그것도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열대 과일은 채소와 같이 꾸준히 소비되는 작물과는 다르다. 매우 이색적이고 작물의 재배가 소량이고 한국에서 재배된다는 것이 신기해 관심을 가질 수 있겠지만 위험도 있다. 과감히 바꾸라는 제안은 못 한다. 대규모 생산단지에서 작물의 일부를 시험삼아 스페셜 상품으로 구성하는 건 괜찮을 수 있지만, 소규모 농가에서 판매처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다.

현재는 망고, 용과, 파파야, 여주, 구아바 등의 아열대 과일과 채소 가격이 다른 작물에 비해 비싼 편이다. 한국산을 일부러 찾는 이도 있어 경쟁력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갈수록 수요가 늘어간다는 소식은 들려 오는데 왜 그런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 소비자의 입맛이 어떤지 보자. 확실히 소비자의 선호도가 예전과 달라졌다.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과일은 사과, 수박, 포도인데 점점 바나나, 망고 수요가 늘고 있다고 한다. 청소년의 선호 과일은 망고와 딸기다. 국민 생선이 조기, 명태, 광어였다가 지금은 새우나 노르웨이산 연어로 바뀌었다. 특히 청소년들이 비린 생선을 덜 먹고 기피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몇 년 후에 주 소비자 계층으로 성장하면 판도가 확실히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미래를 대비해 열대 과일 묘목을 사다가 심어서 키워서 열매를 맺을 때까지 몇 년을 기다릴 수 있겠지만, 그때 가서도 내가 몇 년간 공들인 작물을 사람들이 찾을지는 예측할 수 없다. 갑자기 수입산이 마구 들어 와 버리면 방법이 없다. 그래도 확실히 국내에서 아열대작물이 자라는 환경이 조성되고 수요가 늘어나는 건 사실이다.

지난달 마트에서 가장 많이 팔린 과일이 청포도였단다. 맛이 좋아서라기보다 씨가 없어 잘 팔렸다고 한다. 사람들이 과일을 먹지만 씨를 귀찮아하는 것이다. 소비자 입맛 변화를 체감한다. [사진 pxhere]

지난달 마트에서 가장 많이 팔린 과일이 청포도였단다. 맛이 좋아서라기보다 씨가 없어 잘 팔렸다고 한다. 사람들이 과일을 먹지만 씨를 귀찮아하는 것이다. 소비자 입맛 변화를 체감한다. [사진 pxhere]

아열대작물을 키우는 농가에서는 기후 변화로 인한 농업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한다. 옆 농장이 열대작물을 키우면 아주 신기하게 본다. 소비자도 호기심으로 손이 가기도 한다. 대개의 농민은 기후 변화로 작목이 지역을 이동하거나 열대 과일이 자라고, 원래 잘 자라던 것들이 덜 자라는 모습을 보며 불안감을 느낀다. 다가오는 미래가 불투명한데 농사까지 환경이 변하니 두렵다.

나는 기후변화보다 소비자 입맛 변화를 더 체감한다. 점점 입맛이 더 매운 것, 더 단 것, 더 짠 것을 선호한다. 음식도 그렇게 만들어지니 정작 우리 농산물 본연의 맛을 느끼지 못하고 처음부터 배우지도 못하는 상황이 만들어졌음을 통감한다. 기후변화가 열대작물을 키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열대작물을 좋아하니 키우게 되는 것이 아닐까.

추석이 한참 지난 지금도 과일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지난달 마트에서 가장 많이 팔린 과일이 의외로 포도였다는 기사가 나왔다. 샤인머스캣이라는 청포도다. 왜 갑자기 청포도를 찾을까 궁금했다. 청포도 맛이 좋아서라기보다 씨가 없어 잘 팔렸다고 한다. 사람들이 과일을 먹지만 씨를 귀찮아하는 것이다.

귀농·귀촌인은 이를 주목하면 좋겠다. 제철 과일이, 우리 농산물이 좋다고 이야기하지만 알고 보면 소비자는 먹기 편한 것을 가장 많이 찾는 것이다. 작물을 선택할 때 이색 과일이니까 잘 팔리려니 생각하지 말고 소비자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길 바란다.

슬로우빌리지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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