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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국회역 지붕 올라갔나, 513명 숨진 형제복지원의 울분

중앙일보

입력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인 최승우 씨가 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 지붕에서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윤성민 기자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인 최승우 씨가 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 지붕에서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윤성민 기자

7일 국회 앞 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 지붕 위에 최승우(50)씨가 있었다. 그는 전날 오후 1시쯤 휴대전화와 보조 배터리 3개, 이불 한 채를 들고 사다리를 타고 지붕으로 올라갔다. 그는 이틀째 단식 농성 중이다. 전날 저녁 지인이 올려준 박스 속에서 그는 하룻밤을 새웠다. 이날 서울 최저기온은 6도였다. 그는 “바람이 많이 불어서 생각보다 추웠다”고 했다.

최씨는 딱 2년 전인 2017년 11월 7일 6번 출구 옆에 노숙 농성을 위해 1평 정도 되는 비닐 집을 만들었다. 형제복지원에 같이 갇혀 있던 한종선(43)씨와 함께였다. 비닐 집 옆에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 규명하라’고 써 붙이고,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화이트보드에 날짜를 바꿔 적었다. 한씨는 이날 오전 ‘729일’로 날짜를 고쳤다. 그가 전날 자리를 비운 사이 최씨가 지붕에 올랐다고 한다.

두 사람은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다. 1975~1987년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장애인, 고아, 부랑자 등을 불법으로 감금·폭행하고, 강제 노역을 시켰던 사건이다. 형제복지원은 약 30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당시 전국 최대 규모의 부랑인 수용 시설이었다. 12년간 이곳에서 513명이 숨졌다. 최씨는 13살 때인 1982년 형제복지원에 잡혀갔다. 그는 부산 개금파출소 순경이 가방을 뒤져 빵과 우유를 발견하더니 자신을 도둑으로 몰아 형제복지원에 넘긴 것으로 기억했다. 그는 1987년 겨우 살아서 빠져나왔다.

최승우 씨가 지하철역 지붕에 올라가기 전 2년 동안 노숙 농성을 하던 곳. 윤성민 기자

최승우 씨가 지하철역 지붕에 올라가기 전 2년 동안 노숙 농성을 하던 곳. 윤성민 기자

최씨는 지하철역 지붕에서 전화로 “법이 통과되기 전까진 내려가지 않겠다”고 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 규명과 보상을 위한 형제복지원 특별법은 19대 국회 때인 2014년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처음 발의했다. 법안소위에서 3번 논의됐다. 회의록을 보면, 김성렬 당시 행정자치부 차관은 “일차적으로는 재원 부담이 매우 크기 때문에 행자부도 굉장히 어려운 점이 많다”며 법안에 반대했다.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도 같은 입장이었다. 법안은 더는 논의되지 않고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0대 국회가 시작하고 진 의원은 형제복지원 특별법을 다시 발의했다. 이후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은 과거사 사건마다 따로 특별법을 만들기보다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정리법) 개정을 통해 진상 규명을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고 과거사정리법 개정을 추진했다. 과거사정리법은 2010년 종료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활동 기한을 연장하고, 진상규명을 위해 필요한 개인정보 수집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국회 논의는 더뎠다. 아홉 번의 법안소위와 두 차례 안건조정위에도 결론을 못 냈다. 한국당은 과거사정리위 조사위원 구성의 편파성을 문제 삼았다. 개정안에 따르면 상임 조사위원 6명은 대통령 추천 2인, 국회 추천 4인으로 구성된다.

결국 해당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는 한국당이 불참한 채 전체회의를 열어 표결로 과거사정리법을 통과시켰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 보상 관련 내용은 기획재정부 반대로 빠졌다. 행안위 한국당 간사인 이채익 의원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과거사정리법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조사위원 구성을 최근 제정된 사회적참사진상규명법(국회의장 1명, 여당 4명, 야당 4명 추천) 수준으로 맞춰야 한다고 했는데, 민주당이 날치기로 처리했다"고 말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과 이재정 의원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9호선 국회의사당역 지붕에 올라 농성을 펼치고 있는 최승우 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스1]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과 이재정 의원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9호선 국회의사당역 지붕에 올라 농성을 펼치고 있는 최승우 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스1]

과거사정리법은 이제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갔다. 한국당은 조사위원 구성 관련 조항을 수정한 법안을 다시 만들지 않으면 여전히 법안 처리에 합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법사위원장은 여상규 한국당 의원이 맡고 있다.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이 강행 처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과거사정리법을 대표 발의한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은 “사실 20대 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본다”고 말했다.

최씨는 통화에서 “이번 기회가 아니면 법이 통과 안 될 것 같아서 여기까지 올라왔다. 국회에 압박이라도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사람이 죽도록 놔둘 수는 없을 것 아니냐”고 말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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