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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민환의 퍼스펙티브

비대해진 청와대 줄이고 반대편 이야기 받아들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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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촛불시위를 촛불혁명으로 승화하는 길

2017년 5월 10월 국회에서 문재인 대통령 취임식이 열렸다. 시민들이 이날 국회 앞 잔디밭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으로 취임식을 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2017년 5월 10일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근 기자

2017년 5월 10월 국회에서 문재인 대통령 취임식이 열렸다. 시민들이 이날 국회 앞 잔디밭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으로 취임식을 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2017년 5월 10일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근 기자

3년 전 이맘때 광화문에서는 촛불이 겨울을 불사르고 있었다. 2016년 10월 29일에 청계광장에서 민중궐기총본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첫 촛불 집회를 열었다. 11월 5일 열린 2차 촛불 집회까지만 하더라도 여론은 박 전 대통령의 자진 하야에 머물렀다. 그러나 3·4차 시위부터는 퇴진론으로 발전했다가 5차 시위부터 강제 퇴진을 촉구하는 탄핵론으로 급변했다. 결국 헌법재판소가 만장일치로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촛불 민심은 명예롭게 수용되었다.

이제라도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통령” 되려면 #초심으로 돌아가 권력을 내각·국회에 분산하고 #청와대·내각 개편으로 당파적이지 않은 인재 등용해 #반대편 입장을 국정에 반영해 사회통합 이뤄야

광장에서 확인된 여망은 두 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 대통령중심제의 권력 집중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 하나였다면, 반목하고 갈등하는 분열의 시대를 접고 통합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다른 하나였다. 이 두 가지야말로 시대적 과제였고 촛불 정신의 핵심이었다.

광장에서 표출된 두 여망은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문 대통령은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다”며 “2017년 5월 10일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권위적인 대통령문화를 청산하겠다”라고도 했다.

문 대통령의 취임사는 임기 절반을 마친 이 시점에서는 생뚱맞게 느껴진다. 박근혜 시절에 최순실 사태가 박 정권의 본색을 여지없이 까발렸다면, 문재인 시절에는 조국 대란이 문 정권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조국도 문제였지만 조국 대란에 임한 청와대와 여당의 태도가 더 문제였다. 지금 광장은 쪼개진 데다 소란스럽기 짝이 없다. 문재인 정권이 국민 통합에도 권력 분산에도 실패한 참담한 후과다.

권력 감시·비판이 적폐로 낙인 찍혀

국민 통합을 위해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사를 등용할 것이며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캠프 출신으로 코드가 맞는 더불어민주당 사람들만 등용하는 캠코더 인사, 끼리끼리 돌아가며 물려주는 회전문 인사가 되풀이되고 있다. 공공기업 낙하산 인사는 금도를 벗어난 지 오래다.

나라를 둘로 쪼개놓은 조국 논란은 대의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직접민주제적 대안이 나온 것이 아니다. 이번 소란은 대통령이 불을 붙이고 기름까지 끼얹었다. 조국을 버리지 않았으면 정권을 버리는 쪽으로 진전했을 개연성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아직도 말할 자유는 위축되고 있다. 지식인이나 언론의 사명은 살아있는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감시나 비판이 적폐로 낙인 찍히고 청산의 대상으로 몰린다. 걸핏하면 쓰레기로 매도한다. 숙의의 길을 막는 길바닥 민주주의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시민단체의 모델로 알았던 참여연대에서조차 비판이 용납되지 않는 현실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권위적인 대통령 문화 역시 청산되지 않고 있다. 지금 청와대는 ‘박정희 청와대’나 ‘전두환 청와대’에 버금가는, 한국 현대사에서 세 번째로 강한 청와대라고들 한다. 총리는 국회 대응용이다. 외교부도, 통일부도, 경제부처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여당은 청와대 앞잡이에 불과하다. 청와대는 사법부에도 막강한 우군을 박아두었다. 게다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무차별 포격을 가하는 댓글 부대가 공론장을 휘젓고 있다. 모든 권력의 뒤에 서 있는 청와대는 강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무섭기까지 하다.

국론이 분열되더라도, 청와대에 권력이 집중되더라도, 국정이 잘 돌아간다면 그래도 국민은 참고 견딘다. 실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 국제 환경은 최악이다. 일본과는 한·일 협정 이전의 상태로 돌아갔다. 대미 관계도 심상치 않다. 중국과 소련은 북한과 밀착해 반한 전선을 구축했다. 북한은 우리 대통령이나 정부를 능멸하고 있다. 모두 청와대가 자초한 결과다.

경제는 파탄지경이다. IMF는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0%로 예상했다.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는 2.0%다. 세계 성장률을 1.0%포인트나 밑돈다. 1980년 이후 지난해까지 한국의 성장률이 세계 성장률을 1%포인트 이상 밑돈 것은 오일쇼크의 영향을 받은 1980년과 아시아 외환위기 충격에 빠진 98년 두 번뿐이라고 한다. 정부와 기업이 반도체 이후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지 못한 결과라는 전문가 의견이 가슴에 와 닿는다.

청와대에 집중된 권력 내려놓아야

요즘은 대학입시 문제로 학부모들을 흔들고 있다. 대통령이 갑자기 정시 비중을 높이겠다고 하자, 당이나 정부가 부랴부랴 기존의 정책을 바꿀 태세다. 졸속이 부를 부작용이 두렵다. 학생은 대학이 뽑는데 입시정책에서 대학은 완전히 소외되어 있다. 초·중등 과정의 공교육은 무너진 지 오랜데 거시적인 정책 대안은 손 놓고 있다.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정책 실패가 청와대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상명하복의 기강 잡기에 바쁘다. 정부도, 여당도, 그리고 경제계, 교육계까지도 무조건 깃대를 따라가야 한다. 언론도 그 곁에서 북 치고 장구 치기를 바란다. 과오가 전 방위로 일반화하고 있는데도 당·정·청은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하겠다고 했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다고 했다. 구두선(口頭禪)일 뿐이다.

문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 반이 남았다. 이제라도 걸음을 멈추고 취임사에서 밝혔듯이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통령”이 되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 길은 누구보다도 문 대통령이 잘 알고 있다. 초심으로 돌아가면 된다. 청와대에 집중된 권력을 행정부와 의회와 사법부와 사회에 넘겨야 한다.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청와대를 개편해야 한다. 그만둘 사람은 이철희·표창원 의원이 아니라 청와대 정무라인이고 여당 지휘부다. 내각도 개편해 정파적이지 않은 경륜 있는 총리에게 내맡겨야 한다. 인재를 두루 써야 한다. 대통령은 반대편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 국정에 반영해야 한다. 그 길이 권력 분산과 사회 통합의 왕도다. 이런 사실은 문 대통령의 취임사를 관류하는 사항들이다. 초심을 버리고 패도(覇道)를 택하면 더 큰 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정치권은 중도층 목소리 반영해야

최근 들어 문 대통령의 지지도가 회복세를 보인다. 조국 사태로 지옥 문턱까지 갔는데도 지지율이 어렵지 않게 반등한 데는 이유가 있다. 아직도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면서 함박도나 보고 오고, 국회의 체통을 무너뜨린 의원들에게 상장을 주는, 비전없는 야당을 두고 있는 홍복 덕분이다. 광화문 시위 현장에 갔다가 단상에서 고함지르는 사람들 면면을 보고 되돌아왔다는 사람도 많다. 정부 여당은 정의당이 아니라 중도 특히 스윙보터(swing voter)의 반응을 데스노트(death note)로 삼아야 하듯이, 야당도 태극기 부대의 고함보다는 중도의 심중을 데스노트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정부 여당이 그럴 생각이 없듯이, 야당도 전혀 중원으로 나갈 의사가 없다. 피장파장이어서 서로가 불행 중 다행인 셈이다.

나는 문 대통령을 먼발치에서라도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순수해 보인다. 그 순수성이 남은 임기를 잘 마무리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3년 전의 그 추운 겨울에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기억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성공해야 촛불시위가 촛불 혁명으로 승화한다.

키워드

대의제
주권자인 국민이 국가의사·정책 등을 직접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대표를 선출해 국민을 대신해 결정하게 하는 제도. 대의제가 성공하려면 국가권력에 대한 통제가 이뤄져야 하며, 대의 기관과 국민 간에 정당한 대의 관계가 유지되어야 한다.

스윙보터(swing voter)
선거 등 투표 행위에서 누구에게 투표할지 결정하지 못한 유권자. 주요 정당의 힘이 균형을 이루고 있을 때, 특히 팽팽한 접전이 예상되는 선거에서  스윙보터는 투표 결과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데스노트(death note)
사람의 이름을 쓰면 그 사람은 죽는 사신의 공책 ‘데스노트’를 갖게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 일본 만화와 영화의 제목. 데스노트에 이름이 오르면 죽음을 맞기 때문에 데스노트를 가진 사람을 존중하고 두려워해야 한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김민환 고려대 미디어학부 명예교수·리셋 코리아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