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골라, 한국 회담 요청에 "월드컵 뒤에 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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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말 나이지리아를 방문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올루세군 오바산조 나이지리아 대통령과 공항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당시 중국은 나이지리아에 차관과 석유산업 투자 등 40억 달러를 제공하겠다고 했으며, 대가로 유전 네 곳의 지분 인수 우선협상권을 받아냈다. [중앙포토]

유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석탄.철광석.우라늄 등 주요 원자재 가격도 최근 3년 새 3~4배나 올랐다. 바야흐로 자원 보유국들은 상대를 골라 자원을 파는 시대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들은 물론 중국이 무서운 기세로 산업의 원동력인 자원을 찾아 전 세계를 누비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불꽃 튀는 자원 확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도 노무현 정부 들어 자원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시작에 불과해 성과는 미미하다. 이에 본지는 5명의 기자를 아프리카.중남미.중앙아시아 등 전 세계 10개국에 보내 급박하게 벌어지고 있는 세계의 자원 전쟁과 중국의 전략을 취재했다.

'배럴당 유가 80달러 돌파'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23일(한국시간) 북해산 브렌트유는 73.6 달러,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는 74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이스라엘.레바논 사태와 이란 핵 문제 등으로 최대 원유 생산지인 중동 정세가 불안한 데다 중국.인도 등 거대 국가의 원유 수요가 많이 증가해 유가는 연일 오르고 있다.

석유 전문가들은 지난해 미국 멕시코만 일대 원유 생산 시설을 쑥대밭으로 만든 태풍 카트리나 같은 자연 재해가 올해도 닥치면 유가는 100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제원자재 가격도 연일 뜀박질하고 있다. 석탄.철강 가격 상승률은 매년 두 자릿수다. 원자력 발전 연료인 우라늄은 2003년 ㎏당 24달러에서 현재는 90달러로 네 배 가까이 올랐다. 이에 선진국은 물론 중국.인도 등도 해외 자원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들은 매년 자원 보유국의 유전과 광산을 사들이는 데 1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한다.

한국도 발벗고 나섰다. 그러나 한국의 자원 확보는 가시밭길이다. 외교력이 선진국과 중국 등 거대 국가에 뒤처지는 데다가 자원 보유국에 주는 경제 원조도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난해 "아프리카에 향후 3년간 100억 달러를 차관 등으로 제공하겠다"고 공언했다. 아프리카에만 매년 30억 달러 이상을 쏟아 붓겠다는 것이다. 아프리카가 원유.광물.원목 등 '자원의 보고'라는 점을 노린 물량 공세다. 반면 2005년 한해 한국의 아프리카 원조 액수는 약 3000만 달러에 불과했다. 그나마 올 3월 노무현 대통령이 이집트.나이지리아.알제리를 방문한 자리에서 "2008년에 아프리카 원조 규모를 연간 1억 달러로 늘리겠다"고 한 정도다.

이 때문에 한국은 자원 보유국들에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우리 정부는 아프리카 산유국인 앙골라에 7월 중순께 차관급 에너지 자원 협력 회담을 하자고 요청했다. 그러나 "일단 미루자"는 응답만 돌아왔다. 회담은 결국 8월 초로 결정됐다. 앙골라 사정에 정통한 현지 한국 기업인은 "7월에 앙골라 고위 관료들은 월드컵을 구경하러 독일에 갔다"며 "한국과의 자원 회담이 우선 순위에서 월드컵 관전에 밀린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시 미국 대통령, 원자바오 중국 총리 등 강대국 정상들이 줄줄이 앙골라를 방문해 자원 협력을 논의하는 마당에 한국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6월 23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한국-아르헨티나 1차 자원협력위원회엔 아르헨티나 수석 대표로 예정돼 있던 호르헤 오마르 마요랄 광업차관이 다른 일정을 이유로 불참하는 일도 있었다.

한국은 외교 채널도 부족하다. 앙골라 등 아프리카 주요 자원 보유국에 대사관이 없다. 53개 아프리카 국가에 한국이 대사관을 두고 있는 나라는 16개국뿐이다. 반면 중국은 스와질란드 등 일부를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앙골라에 대사관을 내자고 기획예산처 등에 건의했으나 예산 부족으로 반려됐다"고 밝혔다. 외교부 내에서도 남아프리카공화국.앙골라 등 주요 자원 보유국을 담당하는 남동아프리카 과장 자리는 지원자가 없어 수개월째 비어 있다.

자원 민족주의 물결도 전 세계로 번져 한국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중남미뿐 아니라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등도 해외 기업에 넘겼던 유전 지분을 국영 석유회사가 속속 거둬들이고 있다.다국적 경영 컨설팅사인 액센추어 서울사무소의 김희집 에너지 담당 부사장은 "정부가 해외 자원 확보에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고 더 많은 예산과 인력을 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더해 한국의 앞선 통신.건설.전력 기술 등을 내세워 관련 인프라를 산유국에 지어주고 그 대가로 자원을 확보하는 '패키지 딜' 방식을 강력히 추진해야 자원 확보 전쟁에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 : 아프리카=권혁주, 중남미=서경호,

유럽.중앙아시아=심재우, 캐나다=임미진 기자(이상 경제부문)

호주=조민근 기자(국제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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