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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위 40년만에 처음" 칠레 교민들 자경단도 만들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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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4일(현지시간) 칠레 산티아고 시내 이탈리아 광장으로 향하는거리에서 쓰레기통과 벤치가 불타고 있다. [이광조 JTBC 촬영기자]

11월 4일(현지시간) 칠레 산티아고 시내 이탈리아 광장으로 향하는거리에서 쓰레기통과 벤치가 불타고 있다. [이광조 JTBC 촬영기자]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열린 지 18일째인 4일(현지시간) 칠레에는 지진까지 덮쳤다. 시위 때문에 올해 경제성장률이 곤두박질할 것이라는 경고도 나왔다. 칠레에 생활 터전을 마련한 교민들 마음도 착잡하다. 시위대를 이해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한 매출액 감소가 공포 수준이기 때문이다.

[혼돈의 칠레] 산티아고 르포③ #시위 광장 인근에 한인상가 밀집 #"유동인구 급감하고 매출 반토막"

다시 규모 커진 시위

11월 4일(현지시간) 칠레 산티아고 시내 이탈리아 광장에 시위를 위해 모여드는 인파 가운데 한 노인이 ’젊은이들이여 고맙다“는 피켓을 들고 걷고 있다. [이광조 JTBC 촬영기자]

11월 4일(현지시간) 칠레 산티아고 시내 이탈리아 광장에 시위를 위해 모여드는 인파 가운데 한 노인이 ’젊은이들이여 고맙다“는 피켓을 들고 걷고 있다. [이광조 JTBC 촬영기자]

11월의 첫 월요일인 4일에도 시위대는 성지로 여기는 수도 산티아고 시내 이탈리아광장과 대통령궁 앞 헌법 광장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주말과 휴일보다 규모가 훨씬 커졌다. 시위대는 시간이 갈수록 불어났다. 광장은 물론 주변 도로와 공원도 가득 메워졌다.

시위대는 경찰 진압차를 차단하기 위해 도로 위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불을 질렀다. “칠레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자”는 구호가 넘쳐났다. 시위대와 경찰 간 격렬한 충돌도 되풀이됐다.

시위가 18일째로 접어들면서 시위대 규모나 수위가 차츰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일각의 전망은 빗나갔다. 택시 기사 가브리엘 브라보(44)는 “정권이 시민의 요구를 진작 들어줬더라면 이번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정권이 바뀌지 않는 한 지금 상황이 바뀔 일은 없다”고 말했다.

지진에 광장 '흔들'…경제도 ‘흔들’

광장에서 시민의 요구가 분출되던 저녁 6시 53분쯤 산티아고가 흔들렸다. 산티아고에서 북쪽으로 280㎞ 떨어진 이야펠 지역에서 발생한 규모 6.0의 강진 탓이다.

교민 안정호(32) 씨는 “식당에서 의자와 식탁이 흔들려 트럭이 지나가는 줄 알았는데 지진이었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시위대가 집결하기 전 신임 이그나시오 브리오네스(Ignacio Briones) 재무장관은 올해 칠레 경제성장률이 시위 때문에 2.0~2.2% 수준으로 하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초 올해 성장률은 2.6%로 전망됐다.

그러나 시위대는 꿈쩍하지 않았다. 시위 규모는 다시 커졌고, 오는 6일 택시와 버스, 트럭 기사가 참가하는 더 큰 시위도 예고됐다.

"칠레 생활 40년 만에 이런 시위는 처음"

한인 상가가 밀집한 산티아고 최대 의류·액세서리 도매시장인 파트로나토에서 도매상가를 운영 중인 김지용 전 칠레 한인회장이 4일(현지시간) 교민들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이광조 JTBC 촬영 기자]

한인 상가가 밀집한 산티아고 최대 의류·액세서리 도매시장인 파트로나토에서 도매상가를 운영 중인 김지용 전 칠레 한인회장이 4일(현지시간) 교민들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이광조 JTBC 촬영 기자]

시위대의 성지인 이탈리아 광장에서 걸어서 10여 분 떨어진 산티아고 최대 의류ㆍ액세서리 도매시장 파트로나토(Patronato). 한인 상점 300여 개가 모여 있다. 2500명 교민 사회의 중심이자 생계 터전이다.

이곳에서 액세서리 도매상점을 운영하는 김지용(63) 전 칠레 한인회장은 “40년 칠레 인생에서 이런 시위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민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겠다는 건 나쁘다고 보지 않는다”면서도 “시위가 폭력적으로 장기화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고 말했다.

요식업에 종사하는 김지현 씨는 “부유층이 사는 윗동네와 서민 지역인 아랫동네가 나뉘어 빈부 격차가 크다는 점에서 이번 시위가 심정적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폭력적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매출 반 토막 … 약탈ㆍ방화 맞서 자경단 조직

11월 4일(현지시간) 칠레 산티아고 시내 한인 상가가 밀집한 산티아고 최대 의류·액세서리 도매시장인 파트로나토(patronato)의 한인 의류가게에서 한 손님이 옷을 고르고 있다. [이광조 JTBC 촬영기자]

11월 4일(현지시간) 칠레 산티아고 시내 한인 상가가 밀집한 산티아고 최대 의류·액세서리 도매시장인 파트로나토(patronato)의 한인 의류가게에서 한 손님이 옷을 고르고 있다. [이광조 JTBC 촬영기자]

한인 상점들은 이번 시위로 직격탄을 맞았다.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김승환(62) 씨는 “유동인구가 7분의 1로 줄었고 매출은 반 토막 났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의류도매업을 하는 안병식(60) 씨는 “여름을 앞둔 11월 매출이 가장 좋은데, 지금은 60~70%나 줄어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방에서 도매상인들이 물건을 떼러 올라와야 하는데 시위로 교통이 마비되면서 발길이 거의 끊겼기 때문이다.

칠레 산티아고의 최대 의류·액세서리 도매시장인 파트로나토(patronato)의 한인 식당, 4일(현지시간)에도 시위로 손님이 없다. [이광조 JTBC 촬영기자]

칠레 산티아고의 최대 의류·액세서리 도매시장인 파트로나토(patronato)의 한인 식당, 4일(현지시간)에도 시위로 손님이 없다. [이광조 JTBC 촬영기자]

교민들은 ‘시위로 상점이 피해를 보지 않을까’하는 걱정에 자경단을 조직해 3교대로 순찰 활동을 했다. 4일부터는 용역업체를 고용해 24시간 순찰에 들어갔다.

주칠레 한국대사관 양호인 공사는 “교민 800여명이 가입한 카톡방을 통해 수시로 시위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며 “방화나 약탈 등 직접적 피해는 없지만, 영업 손실에 대한 교민들 우려가 크다” 말했다.

산티아고(칠레)=임종주 특파원 lim.jongju@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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