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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아니라지만 경제 위기 조짐 곳곳에서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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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한국경제 위기설 나오는 배경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세계 경제가 동반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신임 총재는 최근 세계 90% 지역에서 성장이 동반 둔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데이비드 멜패스 세계은행 총재 역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와 미·중 무역분쟁에다 유럽의 경기침체로 올해 성장률은 최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예상되면서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에 대한 논란도 가열되고 있다.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어두운 전망이 있는가 하면 경제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위기상황은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한국경제는 괜찮은 것인가, 만약 위기 가능성이 높다면 그 해법은 무엇인가.

국가부채·고령화로 장기침체 우려 #중국 추격·노사문제로 경쟁력 약화 #‘소부장’ 전략은 적절한 때 나왔지만 #구호에 그치면 역대 정부 전철 밟아

경제위기의 원인은 다양하다. 통상 금융위기나 외환위기 같은 경제위기는 주로 경기침체로부터 촉발된다. 경기침체로 기업부실이 늘어나면 기업에 대출해준 금융회사가 부실화되고 이어서 외국인 자본이 유출되면서 금융위기와 외환위기가 초래되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기아자동차·한보철강 등 기업부실이 금융부실로 전이되면서 금융위기가 발생했고 곧이어 외환위기로 퍼졌다. 또 다른 원인은 국가신뢰도 하락이다. 재정적자가 누적되면서 국가부채가 일정규모 이상으로 늘어나거나 수출이 감소해 경상수지가 악화하면 자본이 유출되면서 위기를 겪게 된다. 최근 그리스·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과 반복적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남미가 이런 경우다. 이들 국가 대부분은 포플리즘에 의해 과도한 재정지출로 국가부채가 늘어나 위기를 겪었다. 또 부동산·주식 등 자산가격 폭락도 위기를 불러온다.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부동산 관련 부실대출은 금융위기를 불러오고 주가 폭락은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을 유출해 외환위기를 초래한다.

표면적 경제지표 아직은 양호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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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의 위기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핵심 지표는 최근 2%대로 떨어진 성장률이다. 신흥국보다는 낮지만, 선진국과는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국가 신뢰도를 나타내는 지표인 경상수지 흑자 규모 역시 국내총생산(GDP)의 4%로 건실한 편이다. 수출보다 수입이 더 감소하면서 생긴 불황형 흑자라는 사실은 불편하지만, 현재의 한국경제를 안정시켜 주는 중요한 요인이다.

경제 주체별 부실화 가능성의 경우 대기업은 추세는 감소하고 있지만, 영업이익은 아직 나고 있다. 그러나 조선업 같은 구조조정기업과 자영업을 포함한 중소기업은 부실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은행은 대규모 이익을 내고 있으나 제2 금융권은 부실대출 비중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가계의 경우도 대출 잔액의 증가율은 낮아지고 있지만 가계대출 규모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올해 2분기 1556조원으로 GDP 대비 81%에 달한다. 이는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제시하는 75%를 상회한다. 그러나 경기침체가 장기화할 경우 가계부채의 부실화 위험은 크다고 할 수 있다. 정부부채의 경우 재정적자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1.9%로 위험 수준인 3%에 미달하고 국가부채도 GDP 대비 37%로 낮다. 재정은 아직 건전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국가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낮은 점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지표상으로 보면 한국경제는 가계부채와 자영업·중소기업 지표를 제외하고는 아직 위기의 신호가 강하게 감지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경제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앞으로 위기 발생 가능성이 상존해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한국경제는 일본처럼 장기침체의 늪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출산율이 낮고 신기술 개발이 활발하지 못한 것도 원인이지만 중국의 강한 추격으로 산업경쟁력과 수출경쟁력이 급속히 약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철강업 등은 이미 구조조정을 하고 있으며, 자동차·전자·화학산업도 중국의 추격으로 조만간 경쟁력이 낮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여기에 4차 산업혁명으로 산업구조가 크게 바뀌고 있어 신기술 개발과 전문기술인력 양성이 중요한데 정부와 기업 모두 이에 대한 전략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산업경쟁력 약화는 제조업 공동화를 앞당겨 안정적 일자리를 줄이고 성장률을 낮게 해 기업부실을 확산시킨다.

노사분규와 근로시간 단축 과도

국가신뢰도 또한 급격히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 성장률이 둔화하면서 세수는 줄어드는 반면 고령화로 복지 수요가 늘어나면서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많이 증가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획재정부의 ‘2019-2023 국가재정운용계획’에 의하면 현재 773조원인 국가부채는 2023년에는 1000조원 이상으로 늘어나고 국가부채 비중도 46%를 넘어서게 된다. 국가재정의 건전도가 악화하면 경제는 남유럽이나 남미처럼 위기에 노출될 수 있다. 중국에 편중된 무역구조도 문제다. 수출은 한국경제를 지탱해 주는 핵심 기둥이기 때문이다. 정치와 안보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내수가 늘어나기 어려운 구조가 고착화하는 것도 문제다. 수출이 성장률을 높이고 경제를 안정시켜 주는 가장 중요한 요인인데 수출에서 중국과 홍콩이 차지하는 비중은 35%에 달한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중국 경기가 둔화할 경우 수출이 급감하면서 경제는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기업부실도 우려된다. 한국 기업은 대외적으로는 중국의 추격으로 경쟁력이 약화하고 있고 대내적으로는 임금 인상과 과도한 노사분규 그리고 근로시간 단축으로 비용이 늘어나면서 사면초가 상태에 있다. 지금까지는 영업이익을 내고 있으나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쓸 정책수단도 제약돼 있다. 특히 통화정책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서는 금리를 내려야 하나 금리 인하는 부동산 가격을 높일 수 있으며 자본유출도 유발할 수 있다. 또 한국의 원화는 국제통화가 아니어서 글로벌 통화전쟁에서 패할 가능성이 높다. 국제통화를 가진 선진국은 양적 완화 정책으로 환율을 높여 수출을 늘릴 수 있지만 한국은 국제통화를 가지고 있지 않아 환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환율조작국 지정위험이 높은 외환 시장개입 방법밖에 사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한국 경제가 튼튼하다”고 되풀이하고 있지만 구조를 들여다보면 곳곳에서 위기가 감지되고 있다는 얘기다.

금융안정지수는 이미 주의단계 진입

한국은행은 금융안정지수(FSI)를 통해 정상·주의·위기의 3단계로 위기 신호를 발표하고 있다. FSI는 지난 3월부터 지속해서 높아지다가 8월에는 8.3으로 주의단계로 진입했다. 한국경제가 지금은 주의단계에 있지만, 앞으로 본격적인 위기단계로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정책당국은 먼저 수요중심의 성장전략을 공급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 등의 한국경제 문제점들은 대부분 임금인상이라는 수요 측면 요인보다 산업경쟁력 약화라는 공급 측면에 있기 때문이다. 수출경쟁력이 약화하면서 주력산업의 구조조정으로 일자리가 감소하고 있다.

일자리를 늘리고 경기를 부양시키기 위해서는 산업경쟁력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신기술 개발을 위한 전문인력 양성과 기술개발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이른바 신산업정책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최근 정부도 집권 후반기 경제정책의 초점을 소재·부품·장비산업(소부장) 개발에 두겠다고 했다. 그러나 정책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로드맵이 필요하다. 역대 정부처럼 구호에만 그치고 구체적인 실행에 나서지 않으면 산업경쟁력을 높일 수 없다. 관건은 수출이다. 수출 감소로 경상수지가 악화하면 한국경제는 위기국면으로 들어가게 된다. 중국에 편중된 수출구조를 다변화하고 수출기업에 각종 인센티브를 줘서 수출이 급격히 감소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자본시장이 개방된 국가는 항상 경제위기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특히 국제통화를 가지지 않은 신흥시장국은 자본유출로 인한 외환위기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사회주의 국가들은 자본 자유화를 하지 않으려 한다. 미·중 무역 전쟁도 중국의 자본자유화와 연관이 있다. 한국경제는 지금과 같은 여건이 지속해 장기 침체국면으로 들어가게 되면 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경제가 위기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정책당국은 정치와 안보의 불확실성이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시켜야 한다. 신산업정책을 사용해 산업경쟁력과 수출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이렇게 대응할 때 한국경제는 장기침체의 위험에서 벗어나 위기를 겪지 않고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