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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신선로·한과 상에 올린 서양식 파티, 대한제국 지키려던 노력이었죠

중앙일보

입력

19세기 말, 조선이 외국에 문호를 열고 서구에 눈 뜨던 시기.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식탁은 단순한 밥상이 아니었습니다. 나라를 지키고, 서구 열강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외국인들과 친분을 쌓는 외교적 자리였죠. 하지만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면서 황제의 식탁은 슬픈 역사가 됐습니다. 지난 17일 박수연·한은솔 학생모델이 고종 황제의 식탁에 서린 슬픈 역사를 되새기러 서울 덕수궁에서 열리는 ‘황제의 식탁 특별전’을 찾았죠. 조선이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맺은 1876년부터 일본이 노골적으로 식민지화에 나선 1905년까지 대한제국 식문화를 소개하는 전시입니다. 고종 황제는 식탁 하나에도 ‘옛것을 근본으로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인다’는 구본신참(舊本新參) 철학을 담았죠.

박상규(맨 오른쪽) 학예연구사가 소중 학생기자단에 개항기 서양식 연회 식사법을 소개했다.

박상규(맨 오른쪽) 학예연구사가 소중 학생기자단에 개항기 서양식 연회 식사법을 소개했다.

“19세기 말, 서양 문화가 세계를 잠식하자 조선은 마음이 급했어요. 빨리 서양 문명을 받아들여 힘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야 서구 열강들로부터 나라를 지킬 수 있으니까요.”
박상규 학예연구사의 안내에 따라 소중 학생기자단은 조선이 신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던 개항기의 식탁부터 살펴봤어요. 조선 왕실과 상류층이 외국 손님을 대접한 음식과 예법을 볼 수 있죠. 1883년 조선이 일본과 통상(무역)을 두고 맺은 ‘조일통상장정’을 기념해 열린 연회장 그림을 보며 박 학예사는 서양 예법을 적용한 대표적인 서양식 만찬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서열에 따라 자리를 배치했던 조선의 식탁과 달랐어요. 주인은 식탁 양 끝에, 손님은 주인과 가까운 자리에 앉히는 미국식과 주인을 식탁 중앙에 앉히는 영국식을 혼합한 배치였죠. 그림엔 직사각형 긴 식탁에 12명이 둘러앉았는데, 조선의 개혁가인 김옥균·민영익·홍영식 등이 식탁 양 끝과 가운데 앉았어요. 그 주변에 독일·일본 사신들이 자리했고요. 또 식탁 위에 키 큰 화병과 촛대를 놓고, 개인용 접시·포크·나이프를 사용했죠.

3전시실에서는 고종황제 51번째 탄일 연회에 올라간 음식과 그릇 등을 볼 수 있다.

3전시실에서는 고종황제 51번째 탄일 연회에 올라간 음식과 그릇 등을 볼 수 있다.

“가족들이 아침저녁으로 커다란 식탁에 의자를 둘러놓고 식사를 한다. 부자·형제·부부가 나란히 앉아서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먹는다. 온화한 말씨와 얼굴빛이 방안의 화기를 띠고 식탁 위로 따스하게 퍼져 오른다.”(1889년 유길준이 쓴『서유견문』(서해문집) 중)
“서울을 떠난 후 겪어야 했던 한 가지 고충은 외국 음식과 식사법에 익숙해지는 것이었다. 능숙하게 나이프와 포크-오래된 야만인의 유물-을 써야 해서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 입술을 베이고, 혀를 찌르고 옷에 고기를 떨어뜨리기 일쑤였다.”(1896년 5월 시인 김득련이 뉴욕에서 사촌에게 보낸 편지 중)

조일통상장정체결 기념연회도. 식탁 양극에 연회 주최 측인 조선의 개혁가 민영목(왼쪽)과 변원규가 앉았다.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덕수궁 관리소]

조일통상장정체결 기념연회도. 식탁 양극에 연회 주최 측인 조선의 개혁가 민영목(왼쪽)과 변원규가 앉았다.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덕수궁 관리소]

1881년 조선인 최초 국비유학생으로 일본·미국을 다녀온 유길준과 1896년 러시아 황제 대관식 축하사절단으로 11개국을 여행한 시인 김득련의 기록입니다. 2전시실에서는 해외 유학을 다녀온 조선인들의 서양 음식 체험기를 볼 수 있죠. 그중 유길준·김득련은 서양 음식에 서로 다른 평가를 내렸어요. 유길준은 조선과 달리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식사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지만, 김득련은 핫케이크에 후추를 뿌려 먹는 등 불편했던 경험을 적었죠. 박 학예사는 “서양 식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사람과 시대에 따라 달랐어요. 서양 식문화가 정착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죠”라고 설명했습니다.

고종 황제 탄일상에 사용한 그릇 '신선로'를 보고 있는 박수연(왼쪽)·한은솔 학생모델.

고종 황제 탄일상에 사용한 그릇 '신선로'를 보고 있는 박수연(왼쪽)·한은솔 학생모델.

세 번째 전시실, ‘황제의 잔칫상’에 들어서자 본격적으로 황제의 식탁을 볼 수 있었어요. 1902년 4월 고종 황제의 51번째 탄일(생일) 연회를 그린 병풍과 탄일상에 올라간 음식과 그릇, 그릇을 올린 작은 상 ‘소반’까지 연회 때 사용됐던 소품들을 그대로 전시했습니다.

“1897년 고종 황제는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각종 예법을 황제국의 격에 맞게 조정했어요. 황제국에 맞게 서양식 연회가 등장했지만, 고종 황제 잔칫상만큼은 조선 예법을 따랐죠. 51번째 탄일 잔칫상은 전통을 지키려는 고종 황제의 의지가 담긴 장면이에요.”
안쪽으로 들어서자 한지 두루마리가 벽면 끝에서 끝까지 길게 펼쳐져 있었어요. 탄일상에 올라간 음식 목록을 기록한 ‘음식 발기’입니다. 발기는 궁중에서 사용한 물품·복식·음식 등을 기록한 거예요. 음식 발기는 일종의 메뉴판인 셈이죠.

대한제국 서양식 연회장을 엿볼 수 있는 4전시실.

대한제국 서양식 연회장을 엿볼 수 있는 4전시실.

음식 발기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음식이 많았어요. 1902년 고종 황제 탄일상 음식 발기에 미뤄볼 때 고종 황제의 상차림에는 육류인 편육부터 생선전·온면·냉면·강정·약식 등 총 32그릇 50종류의 음식이 담긴 것으로 보여요. 수연이는 “음식 가짓수에 비해 메뉴판에 적힌 내용이 많아 보인다”며 그 이유를 물었죠. 박 학예사는 “참석자들은 각자 작은 상에 음식을 받았는데 신분과 관직 서열에 따라 음식 종류와 그릇 수, 사용하는 식기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답했어요. 상차림에 차등을 두어 신분을 표시한 거죠. 연회 참석자의 음식상 메뉴를 모두 기록하다 보니 고종 황제 탄일상 음식 발기 길이는 12m에 달했어요.
“고종 황제 잔칫상과 달리 외국인이 참석하는 연회는 철저하게 서양의 식사법을 따랐어요. 외국인들은 대한제국 서양식 연회를 높게 평가했죠. 여기엔 독일인 미스 손탁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대한제국 황실 서양식 연회를 맡은 여인들. 왼쪽에서 세 번째 여성이 총책임자였던 독일인 미스 손탁. [덕수궁관리소]

대한제국 황실 서양식 연회를 맡은 여인들. 왼쪽에서 세 번째 여성이 총책임자였던 독일인 미스 손탁. [덕수궁관리소]

서양식 연회 전시실로 학생기자단을 안내한 박 학예사는 흑백 사진 속 한 여인을 가리켰어요. 대한제국 서양식 연회를 총감독한 미스 손탁입니다. 손탁은 1896년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 황제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긴 아관파천 때 고종 황제를 만났다고 해요. 음식 솜씨가 좋았던 손탁은 이후 주한러시아 총영사를 역임한 카를 베베르의 추천을 받아 1900년 5월 대한제국 황실과 정식 계약을 맺고 서양식 연회 총책임자로 근무했어요. 하지만 1909년 9월 자리에서 물러나라는 통보를 받고 대한제국을 떠났죠. 박 학예사는 “손탁은 조선에 머무는 외국인들 사이에서 황실과 접촉하는 유일하고 확실한 사람이었어요. 고종 황제의 신뢰도 두터웠고요. 그러다 보니 일본은 손탁을 견제했어요. 당시 일본이 조선을 장악하려던 때였던 만큼 일본이 손탁의 해촉에 관여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어요”라며 손탁이 대한제국을 떠나야만 했던 이유를 들려줬습니다.

1905년 9월 20일 고종 황제와 미국 공주로 여긴 앨리스 루스벨트가 함께한 전통식 한식 오찬 메뉴를 재현했다.

1905년 9월 20일 고종 황제와 미국 공주로 여긴 앨리스 루스벨트가 함께한 전통식 한식 오찬 메뉴를 재현했다.

마지막 ‘대한제국 국빈 연회’와 ‘황실 연회로의 초대’ 전시실에는 국빈을 맞이한 황실의 연회장과 오찬 상차림이 재현돼 있었어요. 1905년 9월 20일 고종 황제가 미국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딸, 앨리스 루스벨트에게 대접한 상차림입니다. 당시 21살이던 앨리스는 미국 아시아 사절단 일원으로 고종 황제의 초청을 받고 3박 4일간 조선을 방문했어요. 고종 황제는 서양식 코스요리가 아닌 탄일상에 올린 것과 같은 전통적인 황실 잔칫상으로 앨리스를 대접했어요. 전시실에는 당시 오찬 상차림에 올라온 열구자탕(신선로)·골동면(비빔국수)·전유어(생선전)·숙실과(한과) 등 17가지 요리와 3가지 장류 등 총 20가지의 음식이 재현됐죠.

1905년 미국의 태프트 아시아 순방단. 앞줄 가운데 여성이 앨리스 루스벨트다. [덕수궁관리소]

1905년 미국의 태프트 아시아 순방단. 앞줄 가운데 여성이 앨리스 루스벨트다. [덕수궁관리소]

이 오찬은 고종 황제가 외국인 여성과 공식적으로 가진 최초의 식사자리입니다. 그만큼 앨리스를 미국 공주로 여기고 각별하게 접대했어요. 미국의 힘을 빌려 일본을 견제하려는 노력이었죠. 하지만 앨리스와 아시아 순방단은 이미 2달 전 일본에서 ‘가쓰라 태프트 밀약’을 체결한 상태였어요. 가쓰라 태프트 밀약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 일본의 대한제국 지배를 각각 인정한다는 내용인데 고종 황제는 이를 전혀 몰랐던 거예요. 배신을 당한 셈이죠.
앨리스는 훗날 자서전 『혼잡의 시간들』(1934)에서 당시 고종 황제와의 오찬을 깔보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어요. 고종 황제를 ‘키 작은 황제’, 연회장을 ‘냄새나는 식당’이라고 부르고, “대한제국의 황제와 황태자는 황족이라는 존재감이 얼마 남지 않았으며 조그만 궁에서 측은하고 멍하게 지내고 있다”고 적었죠.

대한제국 황제의 식탁 특별전이 열린 서울 덕수궁 석조전을 찾은 한은솔(왼쪽)·박수연 학생모델이 대한제국 황실 서양식 연회장을 둘러봤다.

대한제국 황제의 식탁 특별전이 열린 서울 덕수궁 석조전을 찾은 한은솔(왼쪽)·박수연 학생모델이 대한제국 황실 서양식 연회장을 둘러봤다.

결국 앨리스와의 오찬 2달 뒤인 1905년 11월 17일 대한제국은 일본에게 외교권을 빼앗겼고, 대한제국을 지키려던 고종 황제의 노력은 물거품이 됐습니다. 박 학예사는 “고종 황제는 국빈을 대접할 때 한식을 내놓아 구본신참의 자세를 일깨웠어요. 비록 앨리스와의 오찬은 슬픈 역사가 되었지만, 대한제국 황제의 식탁에는 끝까지 나라를 지키겠다는 ‘마지막 자존심’이 담겼습니다”라며 설명을 마무리했습니다.
글=이민정 객원기자 sojoong@joongang.co.kr, 사진= 이상윤(오픈스튜디오), 동행취재=박수연(서울 우면초 5)·한은솔(경기도 늘푸른초 6) 학생모델

‘대한제국 황제의 식탁’ 특별전
◇ 장소 서울시 중구 덕수궁 내 석조전
◇ 기간 11월 24일까지
◇ 관람시간 화~일 오전 9시 30분~오후 6시
◇ 입장료 덕수궁 입장권 소지자에 한해 무료

소중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고종 황제가 앨리스 루스벨트 등 국빈을 대접한 모든 접시에 대한제국의 상징인 오얏꽃 무늬를 새긴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우리의 전통음식을 대접한 것은 마지막 자긍심이었다”는 박 학예사님의 마지막 메시지처럼 그릇 하나하나에 대한제국의 의미를 새긴 것 같아요. 마지막 대한제국 서양식 연회장에 한복을 입고 앉은 모습을 상상하니 낯설지만 대한제국을 지키려 했던 노력이 담겨 숙연했습니다.
-박수연(서울 우면초 5) 학생모델

특별전이 열린 석조전은 그리스 신전을 닮았습니다. 19세기 말 정치적 혼란의 주 무대가 되었던 덕수궁에 한국 전통 양식인 궁궐과 서양식 건축물이 함께 어우러진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고종 황제는 궁내 곳곳에 ‘구본신참’ 원칙을 담았나 봅니다. 전시된 사진 속 모습 하나하나가 인상 깊었죠. 갓을 쓴 사람들이 식탁에 앉아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있고, 한복을 입은 남성과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함께 찍은 사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한은솔(경기도 늘푸른초 6) 학생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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