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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를 하시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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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정제원 기자 중앙일보 문화스포츠디렉터
정제원 중앙일보플러스 스포츠본부장

정제원 중앙일보플러스 스포츠본부장

중국 상하이시 칭푸구에 자리 잡은 골프 연습장의 사장(총경리)은 중국 동포 김훈씨다. 30대 초반의 야심 찬 사업가인 김씨는 중국 골프산업의 미래가 밝다고 보고 과감하게 골프 연습장을 차렸다. 골프 연습장의 이름은 ‘행복골프훈련창’이다. 서울 강남에 자리 잡은 행복골프훈련소의 이름을 가져다 썼다. 행복골프훈련소의 상하이 지점쯤 되는 셈이다. 김씨는 한국의 골프 교습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요즘도 수시로 상하이와 서울을 오간다.

“인터넷을 통해 서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행복골프훈련소를 발견했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주도하는 골프 교습 방식과는 분명히 다르더군요. 골프 강국인 한국의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연습장을 찾아갔습니다.”

김씨는“요즘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의 지도층 인사들은 어린 자녀에게 골프를 가르치는 게 유행”이라고 말했다. 골프가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중국 정부가 축구에 이어 골프를 정책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도 골프 붐이 불고 있는데 한국에서 골프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주제다. 박세리·김미현을 시작으로 요즘엔 한국 여자골퍼들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를 주름잡고 있지만, 골프는 자칫하면 다치기 쉬운 양날의 칼이다. LPGA투어에서 한국 선수가 우승했다는 소식을 전할 땐 많은 사람이 열광하지만, 주말에 골프장 가서 샷을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간 눈총을 받는다. 특히 고위 공직자 사이에 골프는 금기어에 가깝다. 실제로 골프를 좋아하는데도 누가 취미고 뭐냐고 물으면 등산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골프 이야기를 꺼내면 잘해봤자 본전이요, 잘못하면 화를 입기 때문이다. 골프 탓에 구설에 오른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도 골프 이야기를 꺼낸 건 이 스포츠가 대한민국 미래의 먹거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20~30대 중에도 골프를 즐기는 이가 한둘이 아니다. 특히 여성 골프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어느새 골프는 프로야구·프로축구와 더불어 대한민국의 인기 스포츠가 됐다. 해마다 7% 이상씩 성장하면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산업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골프장을 이용한 연인원은 3584만명이다. 지난해 프로야구 경기장을 찾은 사람(807만명)보다 골프장을 찾은 사람이 4배를 넘는다. 대한골프협회에 따르면 국내 골프 인구는 636만명(2017년 기준)으로 나타났다. 20세 이상 인구 10명 중 1.5명이 골프연습장 또는 골프장(스크린 골프장 포함)을 찾는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20~30년 전만 하더라도 골프는 부자들의 전유물로 치부됐지만, 요즘은 스크린 골프의 열기를 타고 문턱이 눈에 띄게 낮아졌다. 전국에 골프장이 500개를 넘은 지 오래고, 스크린 골프장은 7300개를 훌쩍 넘는다. 스크린골프는 특히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특화 상품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쉬쉬하며 골프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접대 골프가 성행하면서 ‘골프=부조리’란 인식이 자리 잡은 탓이다. 그러나 골프의 산업적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 골프는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스타트업의 요람이자 대한민국의 수출 상품이 될 수 있다.

한국 여자 프로골퍼의 실력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1위다. 골프 산업도 세계 1등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골프는 단순 스포츠가 아니라 제조(장비), 패션(골프웨어), 건축(골프장 설계), 교육(레슨), 방송(중계)을 망라한 종합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다. 중국의 골프 시장이 미국과 유럽 사람의 손에 넘어가기 전에 우리가 나설 만하지 않은가.

정제원 중앙일보플러스 스포츠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