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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도서정가제 탓에 웹툰 무료보기가 사라진다?

중앙일보

입력

1일 오후 9시 현재 도서정가제 페지를 청원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20만명 가까운 이들이 동의했다. [청와대 홈페이지]

1일 오후 9시 현재 도서정가제 페지를 청원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20만명 가까운 이들이 동의했다. [청와대 홈페이지]

지난달 1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도서정가제 폐지’를 요구하는 글이 올랐다. 청원인은 "‘동네서점 살리기’라는 취지와 달리, 중소 서점과 출판사를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부담스러운 가격으로 독자를 책에서 멀어지게 한다”고 도서정가제를 비판했다.

1일 오후 9시 현재 '도서정가제 폐지' 청원은 19만6608명이 동의했다. 곧 청와대의 답변 기준인 20만명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도서정가제 폐지' 청원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데엔 웹툰·웹소설 애호가 사이에 돌았던 우려가 배경이 됐다.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엔 “도서정가제가 웹툰·웹소설에 적용되거나 완전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 지금 같은 무료보기 서비스가 사라진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도서정가제가 웹툰 무료보기 등에 영향 줄 것이란 우려가 담긴 글들. [화면 캡처]

도서정가제가 웹툰 무료보기 등에 영향 줄 것이란 우려가 담긴 글들. [화면 캡처]

이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도서정가제 때문에 웹툰·웹소설 무료보기 서비스가 사라질까? 팩트체크 결과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었다. 웹툰·웹소설의 무료보기는 원칙적으로 도서정가제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2002년 도입된 도서정가제는 서점 등 유통사가 출판사가 정한 정가 이하로 책을 판매할 수 없게 하는 제도다(출판문화산업진흥법 22조). 인터넷·대형 서점과 중소서점의 출혈 경쟁을 막고, 책값 거품을 잡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유통사는 책값 직접 할인(10%)과 마일리지 등 간접할인(5%)을 합해 15%까지만 할인할 수 있다.

플랫폼업첻르은 '기다무(기다리면 무료)'를 통해 이용자를 끌어모인다. [화면캡처=카카오]

플랫폼업첻르은 '기다무(기다리면 무료)'를 통해 이용자를 끌어모인다. [화면캡처=카카오]

도서정가제 대상 여부는 ISBN 유무

그렇다면 웹툰·웹소설은 도서정가제의 적용 대상일까? 콘텐트에 따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적용 여부는 '국제표준도서번호(ISBN)'의 발급 여부에 달렸다. ISBN은 책의 유통·관리를 위해 붙인 식별정보로, 사람으로 치면 주민등록번호 같은 역할을 한다. ISBN이 발급되면 출판법의 간행물로 인정받는다. 부가가치세 면제 등의 혜택을 받는 동시에 간행물윤리위원회 심의 등 의무 사항도 생긴다.

도서정가제를 준수해야 할 의무도 붙는다. 국내 출판·유통업계가 제정한 자율협약(2018년 4월)에 따르면 도서정가제가 적용되는 전자출판물은 'ISBN이 등록된 비과세 대상의 디지털 콘텐트’로 한정된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무료로 연재되는 웹툰·웹소설은 대부분 ISBN이 없다. 따라서 도서정가제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반면 유료 연재 중이거나 연재가 완료돼 전자책으로 나온 웹툰·웹소설은 대부분 ISBN을 갖고 있다. 이들은 원칙적으로 도서정가제가 적용된다.

지난해 11월 태국에서 열린 네이버 웹투니스트 데이. [제공 네이버]

지난해 11월 태국에서 열린 네이버 웹투니스트 데이. [제공 네이버]

적용 대상이라도 무료보기엔 지장 없어

하지만 ISBN을 발급받은 웹툰·웹소설도 도서정가제 때문에 현행 무료보기 서비스의 이용이 제한될 가능성은 없다.

국내 웹툰·웹소설 업체들은 일정 시간 무료로 웹툰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용자를 끌어모은다. 웹툰 애호가들이 ‘기다무(기다리면 무료)’라고 부르는 업계 관행이다.

그런데 이런 무료보기는 법적으로 콘텐트 판매가 아니라 잠시 볼수 있게 허용하는 대여에 해당한다. 때문에 콘텐트 판매가격에 대한 제한인 도서정가제를 대여 서비스에 적용할 계획은 없다는 게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입장이다.

기자와의 통화에서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도서정가제는 판매와 관련된 제도이기 때문에 무료보기 서비스와 관련이 없다. 도서정가제 때문에 무료보기가 사라진다는 주장은 오해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그는 "할인폭을 없애는 이른바 '완전 도서정가제'를 추진한다는 이야기도 돌지만, 이 역시 사실무근"이라고 설명했다.

플랫폼업체 등은 다양한 무료서비스를 통해 이용자를 끌어모으고 있다. [화면캡처=리디북스]

플랫폼업체 등은 다양한 무료서비스를 통해 이용자를 끌어모으고 있다. [화면캡처=리디북스]

출판유통위 공문은 가격 표기 요구

인터넷 커뮤니티 등엔 출판유통심의위원회가 전자책 유통사와 플랫폼에 보낸 공문(지난달 23일)을 근거로 "웹툰에 ISBN 발급을 의무화하고 도서정가제를 적용하려 한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출판유통심의위 측은 오해라고 밝혔다. 심의위 관계자는 "공문은 ISBN을 발급받은 콘텐트에 한해 가격 표시를 제대로 해달라는 내용이다”고 설명했다. 도서정가제엔 소비자가 알아보기 쉽게 가격을 표시하라는 규정이 있다.

네이버, 레진 등의 웹툰 서비스에선 콘텐트 가격표시를 쿠키, 코인 등 자체적인 전자화폐를 쓴다. [화면캡처]

네이버, 레진 등의 웹툰 서비스에선 콘텐트 가격표시를 쿠키, 코인 등 자체적인 전자화폐를 쓴다. [화면캡처]

현재 웹툰·웹소설 업계에선 '코인''쿠키' 같은 전자화폐를 사용하는데, 도서정가제 규정에 따라 이를 원 단위로 바꿔 표기하거나 전자화폐와 함께 표기해달라는 요청이란 설명이다.

김유창 웹툰산업협회장은 “별도의 법규정이 없이 종이책에 부여된 ISBN을 웹툰에 적용하다 보니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며 "업계, 플랫폼,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모색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지영 인턴기자(고려대 한국사), 천인성 기자
guch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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