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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고교서열화 해소' 발표 연기…"졸속 추진 드러낸 셈"

중앙일보

입력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달 2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교육개혁 관계 장관 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달 2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교육개혁 관계 장관 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부가 지난달 30일로 예정했던 '고교 서열화 해소방안' 발표를 잠정 연기했다. 교육부는 "시도교육감들과의 사전 협의를 위해 발표를 미뤘다"고 설명하지만, 교육계 안팎에선 "대통령 지시 이행에 급급해 현장 소통엔 소홀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비판했다.

1일 교육부에 따르면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고교서열화 해소 방안을 직접 발표할 계획이었다. 지난달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교육개혁관계장관회의 직후 공개됐던 2025년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의 구체적인 방안과 후속 조치 등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고교학점제 등 일반고 역량 강화 방안도 발표 내용에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회견장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등 수도권 교육감들도 참석할 예정이었다.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이 7일 충북 청주시 교원대에서 열린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임시총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이 7일 충북 청주시 교원대에서 열린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임시총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교육부는 그러나 발표 예정 하루 전인 29일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의 요구 때문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협의회 측에서 '4일 열리는 총회에서 안건을 논의하고 싶으니 발표를 미룰 수 있겠느냐'는 문의가 왔고, 내부 검토를 거쳐 이를 수용했다"고 밝혔다. 협의회에 따르면 교육감들 사이에서 '자사고·외고 등은 시도교육감 소관인 만큼 교육부의 일방통행식 발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왔다고 했다.

이를 두고 교육계에선 교육부가 현장과 충분한 논의 없이 졸속으로 고교서열화 해소 방안을 추진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교육부가 자사고·외고의 일괄 폐지 등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한 건 불과 두 달여 전인 지난 9월부터다.

이전까지만 해도 교육부는 "내년까지 자사고·외고의 단계적 전환에 집중한다"고 밝혔었다. 우선 학교 단위의 재지정 평가를 통해 기준에 미달한 학교를 일반고로 전환하고, 내년 평가 이후 시행령 개정을 통한 일괄 전환에 대해 논의해 보자는 입장이었다.

지난 8월 7일 오후 청주시 한국교원대에서 열린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 임시 총회'에서 교육감들이 총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월 7일 오후 청주시 한국교원대에서 열린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 임시 총회'에서 교육감들이 총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 부정 의혹이 불거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9월 초 문 대통령이 "고교 서열화 해소 등을 포함한 교육개혁 추진"(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식)을 지시한 뒤 당·정·청협의회를 중심으로 자사고·외고의 일반고 일괄 전환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겨우 두 달 동안 자사고·외고의 일괄 폐지 방식, 일반고 전환 로드맵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한국교총의 조성철 대변인은 "학교·학생에 파급력이 큰 교육정책을 이처럼 급하게 결정하다 보니 교육부와 교육감 사이에서 엇박자까지 나고 있다"며 "계획 수립에서부터 문제가 생기는 정책은 추진 과정에서도 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교육감들은 교육부가 자신들을 '패싱' 하려 했다는 점에 반발했지만, 정책 자체를 반대할 가능성은 작다. '시행령 개정을 통한 자사고·외고의 일괄 전환'은 조희연 교육감 등 진보 성향 교육감들의 요구사항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대신 교육부가 구상 중인 후속 조치, 일반고 역량 강화방안에 의견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이달 내 발표하겠다고 밝힌 대입 공정성 제고 방안에 대한 불만이 나올 가능성도 높다. 문 대통령의 정시 확대 발언 이후 진보 성향 교육감들은 잇따라 이를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부와 교육감의 갈등에서 미래 교육이나 학생 역량에 대한 고민은 찾기 어렵다"며 "교육정책을 마련하는 과정이 여론 전환이나 정치적 수단이 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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