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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내고 변덕스럽고 비뚤어진…'천사' 쇼팽의 두 얼굴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송동섭의 쇼팽의 낭만시대(48)

우편 엽서로 제작된 노앙의 상드 저택 사진. [사진 송동섭]

우편 엽서로 제작된 노앙의 상드 저택 사진. [사진 송동섭]

상드는 쇼팽이 자기에게 화를 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언제나 상드에게 친절했다. 상드는 그를 천사라고 부르며 헌신적으로 보살폈다. 그런데 천사였던 쇼팽이 상드에게 천사가 아닌 결함 있는 보통 인간으로 보이기 시작 한때가 왔다. 그것은 로지에르와 안토니의 연애 사건 때였다.

노처녀 로지에르는 시골의 가난한 귀족 집안 출신이었다. 돈이 없었던 그녀는 쇼팽에게 피아노를 배우면서 대가(代價)로 상드의 딸 솔랑주에게 피아노도 가르쳤고 쇼팽 가까이에서 집안일도 도와주고 있었다. 상드와 쇼팽 그리고 솔랑주는 그녀를 좋아하여 모두 그녀를 가족처럼 대하고 있었다. 특히 쇼팽은 착실한 그녀에게 많은 것을 의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진한 노처녀가 쇼팽의 집을 자주 찾던 안토니와, 독신생활을 경계를 넘어 불장난에 휩쓸렸다. 쇼팽의 학창시절 친구였던 안토니는 한때 약혼녀였던 마리아의 오빠로 스페인 전쟁에 참여한 후 돌아와 파리에 머물면서 쇼팽과 어울리고 있었다. 한량에 바람둥이였던 안토니는 로지에르를 데리고 무책임한 장난질을 하고 있었는데 순진한 로지에르는 그에게 빠져들었다.

로지에르는 뒤늦게 눈뜬 사랑에 취해서 분별력을 잃고 주위에 이런 저런 얘기들을 흘리고 다녔다. 그것은 아슬아슬한 지경을 넘나들었고 사춘기의 소녀 솔랑주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었다. 쇼팽은 그녀와 안토니의 불장난이 달갑지 않았다. 쇼팽은 그 사랑놀음이 안토니의 가벼운 장난으로 끝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친구를 탓하지는 못하고 애매한 로지에르의 행태만 못마땅해 했다.

쇼팽에게는 그들의 불장난이 못마땅한 다른 큰 이유가 있었다. 그는 그때까지 마리아와의 약혼이 깨어진 것을 꺼림칙한 기억으로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신분상 혹은 경제적 측면에서 충분한 자격도 없이 어울리지 않는 상대에게 염치없이 청혼했다고 사람들에게 비칠까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쇼팽의 자격지심에서 나온 것이었지만 그 자격지심을 건드리는 로지에르의 연애가 그는 몹시 신경 쓰였다. 그들 둘이 가까워 지면, 안토니를 통해, 마리아와의 약혼과 파혼에 얽힌 내밀한 얘기가 그 노처녀에게 흘러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상드가 로지에르를 살갑게 대하고 있었으므로, 그런 이야기들이 다시 상드에게 전해 들어갈까 쇼팽은 염려했다.

마리 드 로지에르. 조르주 상드의 데생. 1843년경. Musée de la Vie romantique 소장.

마리 드 로지에르. 조르주 상드의 데생. 1843년경. Musée de la Vie romantique 소장.

상황이 더 어려워진 것은 쇼팽의 흉상에 관한 일로 인해 일어났다. 파리의 조각가 당탕(Dantan)은 쇼팽의 흉상을 제작하여 팔고 있었는데 쇼팽이 그것을 구입해서 바르샤바의 가족에게 보내려고 했다. 그는 그 일을 파리에 있는 친구 폰타나에게 부탁했다. 앞뒤 사정을 모르는 폰타나는 폴란드로 가족 방문을 계획하고 있던 안토니에게 그 흉상을 맡겨 쇼팽의 본가에 전달을 부탁했다.

노앙에 있던 쇼팽은 폰타나로부터 이 소식을 듣고 안절부절 못했다. 그는, 자신의 흉상이 안토니와 마리아의 가족들에게 쇼팽과의 옛 얘기들을 떠올리게 할 것이고, 그래서 생겨나는 쓸데없는 쑥덕거림이 다시 안토니, 로지에르, 상드에게 흘러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쇼팽은 흥분해서 로지에르를 침소봉대하는 사람, 남의 일에 쓸데 없이 끼어드는 사람, 담장 밑을 파고 들어와서는 장미꽃밭을 휘저으며 송로버섯을 찾는 돼지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쇼팽은 여름 중 로지에르가 노앙에 오는 것을 금지시키라고 상드에게 요구했다. 아울러 자신의 심부름을 착실히 수행하고 있던 친구 폰타나에게도 싫은 소리를 했다.

영문을 모르는 상드는 그런 쇼팽을 이해할 수 없었다. 상드는 예민하고 화를 잘 내며 때로 뿌루퉁하게 삐쳐 있는 쇼팽의 모습을 새삼 보게 되었다. 상드의 쇼팽에 대한 표현에 처음으로 천사가 아닌 다른 말이 등장했다. 상드는 로지에르에게 편지를 보내어 양해를 구했다.

상드는 편지에서 쇼팽이 로지에르에게 짜증을 냈다고 직접적으로 전했다. 그 편지에서는 쇼팽을 묘사하는 말로, 사람을 대하는 병적인 태도, 어떤 사람을 금방 좋아했다가 심하게 싫어하는 변덕, 삐뚤어진 성격, 우울해져서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않고 있는 모습 등의 말이 나온다.

편지 속 쇼팽의 모습은 약점투성인 인간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그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상드는 여전히 그를 사랑했고 함께 할 사람으로 여겼다. 그녀는 그의 깊은 곳에 있는 착한 본성이 병(病)에 가려져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드러날 것으로 희망하고 있었다.

쇼팽의 사인. [사진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쇼팽의 사인. [사진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흉상에 관련된 사건은 친구이며 자신의 조력자였던 폰타나와의 관계도 틀어지게 했다. 폰타나는 묵묵히 그의 일을 도와주고 있었는데 난데없는 꾸지람에 혼란스러웠다. 그 또한 쇼팽의 속 마음에 무엇이 들어있는 지 알지 못했고 갑작스런 쇼팽의 화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에 자극 받았는지 폰타나는 곧 그의 곁을 떠났다.

리스트와 거리를 유지하면서 음악계의 사람들과도 거리가 생긴 쇼팽이었다. 리스트는 음악계에 발이 넓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와의 거리는 음악계와의 거리를 의미했다. 많은 사람들이 천재 음악가쇼팽에게 호의를 가지고 다가갔지만 그는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을 조심스러워했다. 젊고 유망한 음악가들이 그들의 우상에 가까이 가는 것은 어려웠다.

쇼팽에게는 건강의 문제가 있었다. 그에게 호의를 가지고 그를 바라보면서 그에게 어떤 기대를 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몸이 약한 그가 남의 입장을 충분히 배려하여 그들의 기대에 적극적으로 응대하는 것은 어려웠다. 자기 자신도 간수하지 못하는데 누구를 간수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쇼팽을 다가갈 수 없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쇼팽은 음악계에서도 다소 고립되어 가고 있었다.

그는 익숙한 살롱에서 고귀한 부인들과 아가씨들에게 둘러싸여 칭찬과 환호를 받는 것에 젖어있을 뿐이었다. 그와 진지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쇼팽에게 있어서 상드의 존재와 보호막은 더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 그런데 그가, 이제 상드의 눈에 하늘의 천사에서 결함 있는 인간으로 바뀌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조르주 상드의 사인. 1857. Musée George Sand et de la Vallée Noire. [사진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조르주 상드의 사인. 1857. Musée George Sand et de la Vallée Noire. [사진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당시 쇼팽은 정점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때문에 모든 것은 큰 파장을 일으키지 않고 수면아래에 묻힐 수 있었다. 하지만 쇼팽의 병이 심해져서 더 활력을 잃게 되고, 그래서 상드에게의 의존은 더 심해지게 되면서 상황은 달라지게 되었다. 특히 쇼팽을 질투하는 상드의 아들 모리스가 커져서 집안에서 적극적으로 발언권을 행사하려 하게 되자, 안팎으로 쇼팽의 입지는 급속히 좁아질 수 밖에 없었다. 다음 편에서는 쇼팽과 상드의 사이가 벌어지는 모습이 그려진다.

스톤웰 인베스트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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