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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모친상···조문도 화환도 없이 절제된 남천성당 사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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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권력자의 상가(喪家)는 더없이 조용했다. 긴 조문 행렬도 화환도 없었다. 청와대 관계자나 차량만 이따금 오갔고, 되려 먼발치서 지켜본 기자들 숫자가 많았다.

故 강한옥 여사 빈소 남천성당 3일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오전 부산 남천성당에 마련된 모친 고(故) 강한옥 여사의 빈소에서 생각에 잠겨있다. [사진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오전 부산 남천성당에 마련된 모친 고(故) 강한옥 여사의 빈소에서 생각에 잠겨있다. [사진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의 모친, 고(故) 강한옥 여사의 빈소 풍경은 이례적이고 독특했다. 고인의 장례는 부산 남천동 남천성당에서 29일부터 31일까지 3일장으로 치러졌는데, 가족과 친지·이웃에 그 초점이 맞춰졌다. 현직 대통령의 모친상은 이번이 처음이다. 장례 방식에 관심이 모였지만, 청와대의 뜻은 일찌감치 가족장으로 정해졌다.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만 고인을 추념토록 하겠다는 상주, 문 대통령의 뜻이 강했다. 문 대통령의 오랜 생각이자, 고인의 뜻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조문과 조화도 사양했다. 여권 인사들은 청와대에 조문 의사를 타진했지만 “오시지 말라”는 뜻을 전해 들었다. 그런데도 빈소로 발걸음한 이들은 성당 정문에서 돌아서야 했다. 문재인 정부 초대 행정안전부 장관이었던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김경수 경남지사, 오거돈 부산시장,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등이 그랬다.

문재인 대통령이 31일 오전 부산 남천성당에서 모친 고 강한옥 여사 장례미사에 참석해 성호를 긋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31일 오전 부산 남천성당에서 모친 고 강한옥 여사 장례미사에 참석해 성호를 긋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청와대 1기인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윤영찬 전 국민소통수석, 박수현 전 대변인, 권혁기 전 춘추관장 등도 부산을 찾았다가 성당 인근에서 조의를 표한 뒤 상경했다. 화환은 보낸 이가 누구든 반송됐다.

문 대통령이 조문객 모두를 되돌린 건 아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25분가량 빈소 앞에서 기다렸다는 보고를 받은 문 대통령은 상주로서 예를 갖춰 그를 맞이했다. 이후 자유한국당 황교안, 바른미래당 손학규, 정의당 심상정 등 다른 야당 대표들의 조문도 받았다. 이들도 빈소에서 정치 현안에 대한 대화를 삼가며 상주를 위로했다. 대부분 6·25 전쟁통에 흥남에서 피란 와 어렵게 자녀들을 기른 ‘헌신의 어머니’에 대한 경의, 그런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위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0일 오후 부산 남천성당에 마련된 모친 고 강한옥 여사의 빈소를 찾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0일 오후 부산 남천성당에 마련된 모친 고 강한옥 여사의 빈소를 찾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예외가 있었다면 31일 빈소를 찾은 홍문종 우리공화당 공동대표다. 홍 대표는 다른 정치인과 달리 조문 중 구속 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 이야기를 꺼냈고, 문 대통령은 소이부답(笑而不答)으로 응대했다. 여권 지지자들의 비난은 물론, 야당에서도 “‘문상’가서 ‘진상’만 부리고 온 꼴이다. 제발, 상식선에서 살자”(김정화 바른미래당 대변인)는 논평을 내놨다.

문 대통령은 정부에선 이낙연 국무총리 일행, 청와대에선 김상조 정책실장을 조의객으로 맞았다. ‘4강(미국·중국·일본·러시아) 대사’들도 각국을 대표하는 외교 사절인 만큼 예를 갖춰 맞이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31일 문재인 대통령의 모친 고(故) 강한옥 여사 장례 미사에 전한 조전 전문. [사진 주한 교황청대사관]

프란치스코 교황이 31일 문재인 대통령의 모친 고(故) 강한옥 여사 장례 미사에 전한 조전 전문. [사진 주한 교황청대사관]

이러는 동안 조전(弔電)도 도착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주한 일본대사 편에 위로전을 보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조전을 보내 “대통령님과 사랑하는 국민들, 그리고 장례를 엄수하기 위해 모인 모든 이들에게 위로와 영원한 평안의 서약으로서 사도적 축복을 내린다”고 전했다.

취임 후 네 번 만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같은 날 오후 판문점을 통해 조의문을 전했다. 이는 그날 오후 9시 37분, 빈소를 찾은 청와대 윤건영 국정상황실장을 통해 문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청와대 고민정 대변인은 “김 위원장은 고 강한옥 여사 별세에 대해 깊은 추모와 애도의 뜻을 나타내고 문 대통령께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고 말했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한 조문객들이 31일 오전 부산 수영구 남천성당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 모친 고 강한옥 여사의 발인 미사를 드리고 있다.   앞줄 오른쪽부터 문희상 국회의장,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임채정 전 국회의장, 김원기 전 국회의장, 정세균 전 국회의장,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유인태 국회 사무총장.   두번째줄 오른쪽부터 오거돈 부산시장, 송철호 울산시장,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연합뉴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한 조문객들이 31일 오전 부산 수영구 남천성당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 모친 고 강한옥 여사의 발인 미사를 드리고 있다. 앞줄 오른쪽부터 문희상 국회의장,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임채정 전 국회의장, 김원기 전 국회의장, 정세균 전 국회의장,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유인태 국회 사무총장. 두번째줄 오른쪽부터 오거돈 부산시장, 송철호 울산시장,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연합뉴스]

조문하지 못한 여권 인사들은 31일 오전 장례 미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예를 표했다. 미사에는 문희상·정세균·김원기·임채정·정의화 등 전·현직 국회의장, 유인태 국회 사무총장,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이종걸 의원, 조배숙 민주평화당 원내대표, 유성엽 대안신당(가칭) 의원, 청와대의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강기정 정무수석(청가회장), 전날 조문하지 못한 양정철 원장과 오거돈 시장 등이 참석했다.

이후의 모든 일정은 비공개였다. 고인은 소수의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문 대통령의 선친(1978년 별세)이 잠든 양산 하늘공원에 안장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31일 오전 부산 남천동 남천성당에서 열린 대통령의 어머니 고 강한옥 여사 장례 미사 뒤 고인이 운구차에 모셔지는 것을 바라보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31일 오전 부산 남천동 남천성당에서 열린 대통령의 어머니 고 강한옥 여사 장례 미사 뒤 고인이 운구차에 모셔지는 것을 바라보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뉴스1]

문 대통령은 안장식에서 “어머님께선 평소 신앙대로, 또 원하시던 대로 많은 분들의 기도 안에서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시게 됐다. 이제 아버지도 다시 만나시고, 못 가시던 고향에도 다시 가시고, 외할아버님·외할머님도 만나시고, 6남매 형제·자매들도 다시 만나시고 그러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례를 마친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 30분쯤 청와대로 복귀했다.

부산=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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