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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지우기 논란' 구미시장, 추도식 등장에 "X하네" 항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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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서 박 전 대통령 40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장세용 구미시장이 초헌관으로 나서 술을 올리고 있다. 구미=김정석기자

26일 오전 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서 박 전 대통령 40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장세용 구미시장이 초헌관으로 나서 술을 올리고 있다. 구미=김정석기자

박정희 전 대통령의 40주기 추도식이 26일 오전 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 전 대통령 생가에서 열렸다. 매년 박 전 대통령 기일마다 열리는 정례행사였지만 올해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장세용 구미시장이 처음 참석했다. 취임 후 보수단체로부터 ‘박정희 흔적 지우기’를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장 시장은 행사 내내 추모객으로부터 비난을 들었다.

26일 구미 박 전 대통령 생가서 추도식 열려 #민주당 소속 장세용 시장 최초로 초헌관 맡아 #추도사 하는 동안 일부 추모객 고함치며 항의 #'통합 위한 노력이었다' 평가하는 추모객들도

박 전 대통령 생가는 행사 시작 2시간 전부터 몰려든 추모객들로 북적였다. 행사장 안팎엔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추모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여러 장 내걸렸다. 추모객 300여 명이 몰린 가운데 진행된 추도식엔 장 시장과 전병억 박정희생가보존회 이사장, 김태근 구미시의회 의장, 이철우 경북도지사, 권영진 대구시장, 자유한국당 백승주·장석춘·강효상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국회의원이 참석했다.

장 시장은 추도식에 앞서 열린 추모제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초헌관을 맡았다. 초헌관은 제례에서 첫 술잔을 올리는 사람을 말한다. 김 의장과 전 이사장이 각각 아헌관과 종헌관으로 나섰다.

장 시장은 구미시장이 초헌관을 맡던 그간의 전통을 깨고 지난해 추모제에 불참했었다. 그의 추모제 불참은 ‘박정희 흔적 지우기’ 논란을 불렀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장 시장을 비판하는 현수막을 생가 주변에 내걸고 시위를 벌였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장 시장을 대신해 지난해 추모제 초헌관을 맡아 추도사를 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26일 오전 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서 박 전 대통령 40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장세용 구미시장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구미=김정석기자

26일 오전 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서 박 전 대통령 40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장세용 구미시장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구미=김정석기자

장 시장은 올해 입장을 바꾼 이유에 대해 “정치적인 부분을 떠나 올해는 구미공단 50주년이다. 공단 역사 등을 볼 때 박 전 대통령의 경제 살리기는 긍정적인 평가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을 보수 상징 같은 느낌으로만 봐서 안 된다. 지역사회 분열 측면을 넘어서야 한다는 의미다. 그분 역시 실용주의적인, 혁신가적인 면이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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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시장의 추도사에도 이 같은 입장이 명확히 드러나 있다. 그는 추도사에서 “저는 평소 지난 50년 대한민국의 경제를 이끌어온 구미의 오늘은 고인의 선구자적 결단, 구미와 상생해온 기업들, 노동자들의 헌신과 시민들의 봉사와 노력의 결과라고 강조해 왔다”며 “이는 국가 발전을 최우선에 두는 국가주의적 실용주의자이자 국토개발과 산업화를 이끌며 세상을 끊임없이 바꿔나간 혁신가인 박정희 대통령님이 고향에 베푼 큰 선물이었다”고 칭송했다.

하지만 추모객들 중 상당수는 장 시장이 추도사를 하는 가운데 욕설을 하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특히 장 시장이 “박정희 대통령님의 공과(功過)에 대한 평가는 우리 세대가 아닌 후대의 몫이자 역사의 몫”이라고 말할 때 일부 추모객들은 “왜 그걸 우리가 평가하지 못하느냐” “X랄하네” 등을 외치며 항의하기도 했다.

행사장 인근에도 장 시장을 성토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내걸렸다. 현수막엔 ‘위대한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를 장군이라 칭송해 야사를 역사로 바꾸려는 구미시장 장세용은 각성하고 즉각 사퇴하라!’고 적혀 있었다. 앞서 장 시장은 지난 5월 4일 구미시 선산읍 승격 40주년 기념행사에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을 ‘장군’이라고 칭해 보수단체의 반발에 부딪혔었다.

26일 오전 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앞에 장세용 구미시장을 규탄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구미=김정석기자

26일 오전 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앞에 장세용 구미시장을 규탄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구미=김정석기자

행사장에서 만난 이봉규(69)씨는 “장 시장이 올해 추도식에 참석한 이유는 내년 총선 때문”이라며 “대한민국을 건국한 박 전 대통령을 진심으로 추모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어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임춘호(61)씨는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세우고 발전시킨 분들인데 장 시장은 그들의 이름을 지우려고 한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반면 장 시장과 민주당 소속 김현권 의원이 이날 추도식에 참여한 것을 ‘통합을 위한 노력’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었다. 김성우(31)씨는 “정치적 이념이 다르다고 해서 대한민국 산업화에 기여한 박 전 대통령 추도식에 아예 참석하지 않는 것보다는 한 발짝 나아간 행보라고 본다”고 말했다.

구미=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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