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현장에서]北 “너절한 시설 싹 들어내라”는데…“방역협력” 운운한 당정

중앙일보

입력

2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한반도비핵화대책특별위원회 정책간담회에서 김연철 통일부 장관(오른쪽)과 심재권 위원장이 굳은 표정으로 참석해 있다. 이날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관영매체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금강산관광지구를 현지지도하고 금강산에 설치된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2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한반도비핵화대책특별위원회 정책간담회에서 김연철 통일부 장관(오른쪽)과 심재권 위원장이 굳은 표정으로 참석해 있다. 이날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관영매체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금강산관광지구를 현지지도하고 금강산에 설치된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23일 오전 7시 26분.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국회 간담회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 장관은 이날 더불어민주당 한반도비핵화대책특별위원회 초청으로 강연과 토론을 하러 여의도에 왔다. 주제는 ‘북미대화 현안과 남북관계’였다. 심재권 위원장과 김한정 간사를 포함해 박광온·서형수·설훈·신동근·홍익표 등 민주당 의원 7명이 참석했다.

간담회는 당초 예정된 행사였다. 하지만 예상보다 더 많은 기자가 이른 아침부터 간담회장에 모였다. 불과 1시간 30분 전인 오전 6시쯤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관영 매체가 일제히 “김정은 위원장이 금강산 관광지구 내 남한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는 소식을 전한 뒤라서다.

이날 북한의 대남 메시지는 직설적이었다. 선대(先代)의 정책을 부정하는 대목도 있었다. 통신은 김 위원장이 “손쉽게 관광지나 내어주고 앉아서 득을 보려고 했던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며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을 싹 들어내도록 하라”는 주문을 내렸다고 전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금강산관광지구를 시찰했다고 23일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이날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고성항과 해금강호텔, 문화회관, 금강산호텔, 금강산옥류관, 금강펜션타운, 구룡마을, 온천빌리지, 가족호텔, 제2온정각, 고성항회집, 고성항골프장, 고성항출입사무소 등 남조선측에서 건설한 대상들과 삼일포와 해금강, 구룡연일대를 돌아보며 자연경관을 훼손하는 시설물에 대해 엄하게 지적했다. [뉴시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금강산관광지구를 시찰했다고 23일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이날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고성항과 해금강호텔, 문화회관, 금강산호텔, 금강산옥류관, 금강펜션타운, 구룡마을, 온천빌리지, 가족호텔, 제2온정각, 고성항회집, 고성항골프장, 고성항출입사무소 등 남조선측에서 건설한 대상들과 삼일포와 해금강, 구룡연일대를 돌아보며 자연경관을 훼손하는 시설물에 대해 엄하게 지적했다. [뉴시스]

그런데 직후에 열린 당·정이었는데 아무런 메시지를 내지 못했다. 주무부처 장관 발언엔 현실감이 없었다. 김연철 장관은 모두발언에서 “남북관계는 (북·미 관계와 별도로) 남북관계의 공간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현안의 성격에 따라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 남북관계의 재개를 위해 정말 다양한 노력들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날 준비한 말을 그대로 읽은 듯했다.

‘비핵화’를 외쳐온 여당 의원들의 말에서도 책임감을 찾아보긴 힘들었다. 회의 후 대표로 기자브리핑을 한 김한정 의원은 ‘통일부가 금강산 철수를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나, 북한 의도가 무엇인지 논의했나’라는 질문에 “통일부 장관도 분석을 더 하고 판단을 해야 된다고 했다. 신중한 입장이었다”고 답했다. 통일부 장관 입장을 단순 대독(代讀)하는 수준이었다.

질문이 거듭되자 김 의원은 “금강산 얘기는 오늘 안 하는 게 좋겠다”며 “장관이 보기에도 ‘이 문제는 선대 정책에 대한 비판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좀 더 분석이 필요하다’고 했다”고 거듭 말했다. 특위 소속 의원들이 북한의 시그널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무슨 대책을 논의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23일 오전 김연철 통일부 장관(앞줄 오른쪽)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한반도비핵화대책특별위원회 정책간담회에 앞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3일 오전 김연철 통일부 장관(앞줄 오른쪽)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한반도비핵화대책특별위원회 정책간담회에 앞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북 문제는 민감한 이슈다. 정부 여당이 남북 관계 속사정을 실시간으로 언론에 노출할 필요와 의무는 없다. 공식 당·정 협의회가 아닌 간담회 차원의 메시지 표명이 조심스러울 만도 하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이날 오전 당·정이 낸 ‘딴소리’는 실망스러웠다.

김 장관은 비공개 간담회 중 “현재 남북관계 상황이 엄중하다. 결코 좋다고 볼 수 없다”면서도 “남북 간 방역협력이 시작돼야 한다. 방역협력은 축산협력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당장 야당에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김명연 한국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오전 논평에서 “북한 눈치 보느라 아프리카돼지열병 방역 공조에 실패해 확산 저지가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당·정도 최근의 대북관계 ‘빨간불’을 충분히 감지하고 있다. 심재권 위원장은 “얼마 전 평양 축구가 소위 무관객·무중계의 사상 초유 형태로 이뤄졌다”면서 “그게 지금 남북관계의 현주소”라고 시인했다. 김 장관은 간담회 시작 전 의원들과 김밥을 먹으며 “고난이 닥치면 저희들의 책임은 크다”는 말을 했다.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는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5대 국정 목표 중 하나다. 고난을 이기는 책임이 필요하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