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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장도 간당간당한데···文대통령 "우리 경제 견실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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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22일 국회 시정연설 가운데 경제 관련 발언에 대해서는 ‘기존의 자화자찬식 경제인식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는 반응이 나온다. 일각에서 기대했던 경제정책 전환에 대한 의지 표명도 나오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평가 순위, 3대 국제신용평가기관의 국가신용등급 등을 언급하면서 “우리 경제의 견실함은 우리 자신보다도 오히려 세계에서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했다. 또 “올해 2분기 가계소득과 근로소득 모두 최근 5년 사이에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며 “고령화의 영향으로 계속 떨어져서 걱정이던 1분위 계층의 소득이 증가로 전환됐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0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2019.10.22변선구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0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2019.10.22변선구 기자

문 대통령은 이어 “올해 9월까지의 평균 고용률이 66.7%로 역대 최고 수준이고, 청년 고용률도 12년 만에 최고치를 보였다”며 “연간 취업자 증가 수가 목표치 15만 명을 크게 웃도는 20만 명대 중반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소득여건이 개선되고” 있고, “일자리의 질도 개선되고 있다”는 게 문 대통령의 경제 진단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 경제는 기업 투자와 생산·소비가 부진하면서 외국계 기관을 중심으로 올해 성장률이 2%대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말에 약속했던 올해 성장률은 2.6∼2.7%였는데 정부조차 최근 연간 성장률 전망을 2.0~2.1% 수준으로 낮춘 상황이다. 수출은 지난해 12월부터 이달까지 11개월 연속 전년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며, 정부는 매달 내는 최근 경제동향에서 역대 최장기간인 7개월 연속 ‘경기 부진’ 판단을 이어가고 있다. 문 대통령은 청년층 고용률도 12년 만에 최고라고 했지만, 청년층 체감실업률(고용보조지표3)은 여전히 21%를 웃도는 등 젊은이들의 최악의 취업난은 여전하다.

주요 기관의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주요 기관의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하지만 문 대통령의 시정 연설에는 이런 한국 경제의 ‘그림자’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되려 “미·중 무역분쟁과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세계 경제가 빠르게 악화되고,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도 엄중한 상황을 맞고 있다”며 경제난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시각을 내비쳤다. 취임 이후 성과를 낸 일부 정책만 부각해 기존 정책 기조를 수정할 뜻이 없음을 내비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통계청장을 지낸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올해 고용 및 분배지표가 개선 흐름을 나타내는 것은 지난해 워낙 수치가 나빴던데 따른 기저효과가 가장 큰 원인"이라며 "현 정부 출범 때인 2017년과 비교하면 여전히 부진한 상황인데, '개선됐다'고 판단하는 것은 국민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인식차가 큰 부분"이라고 짚었다.

문 대통령은 “‘혁신의 힘’이 살아나고 있다”며 “지난해 신규 벤처투자가 사상 최대치인 3조4000억 원에 달했고, 신설법인 수도 지난해 10만 개를 돌파했고 올해 더 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수십 년 동안 못해왔던 우리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국산화와 수입 다변화에서 불과 100일 만에 의미 있는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잠재되어 있던 우리 과학기술이 기지개를 켰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인식도 산업계의 분위기와는 온도 차가 크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임원은 “일본 국적자의 노벨상 수상자는 25명으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수준과 격차가 큰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팩트”라며 “일본 수출규제에 따른 불확실성으로 많은 기업이 힘들어하고 있는데, 정부·여당이 저런 분위기이니 피해가 있어도 말을 꺼내기 어렵다”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 확대에 대한 보완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던 점도 아쉬운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문 대통령은 과거처럼 “근본적 성장세는 건전하다”, “경제는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식의 논란이 될 발언은 삼갔다. 대신 “기업투자에 더 많은 세제 인센티브를 부여하겠다”, “아직도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제조업과 40대의 고용 하락을 막아야 한다”면서 분발과 긴장감을 촉구하기도 했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단어도 연설에서는 사라졌다.

유경준 교수는 “최근 정부의 정책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의식한 언급이 있었고, 처음으로 ‘일하는 복지’를 꺼냈다는 점은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이 강조한 것은 재정 확대다. 문 대통령은 “재정이 적극적 역할을 해 대외충격의 파고를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고 경제의 활력을 살리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며 “지금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머지않은 미래에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재정 건전성을 우려하는 분도 계시다. 우리가 계속 관심을 갖고 중요하게 여겨야 할 점”이라면서도 “하지만 대한민국의 재정과 경제력은 더 많은 국민이 더 높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데 충분할 정도로 성장했고, 매우 건전하다”고 평가했다.

급증하는 국가채무

급증하는 국가채무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경제가 가라앉는 상황에서 재정 확대는 필요하지만,  급속히 진행되는 고령화에 따른 향후의 복지 수요도 감안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우리 경제가 커지는 속도보다 정부 씀씀이가 훨씬 빠르게 불어나는 것은 신경 써야 할 부분”이라고 짚었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대해 “대통령은 ‘우리 경제가 견실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지난 2년 반의 경제 난맥상을 재정투입에 따른 성과로 포장한다”며 “실상은 2018년 429조원, 2019년 470조원 등 역대 최대 규모의 초대형 예산을 연달아 쏟아붓고도 우리 경제는 2%대 경제성장률 달성도 어려운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재정확대의 불가피성을 강조하기에 앞서, 지난 2년간 잘못된 정책에 대한 반성과 불필요한 예산들을 정리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며 “그런 조치 없이 무한정 재정확대만 하겠다는 것은 경제를 계속 망치겠다는 선언”이라고 덧붙였다.

세종=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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