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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당 합의까지 깨고 "공수처만 우선 처리"···민주당의 변심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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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의 표결 시에는 선거법-공수처법-검·경수사권조정법 순으로 진행한다.”

지난 4월 22일 더불어민주당과 야3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이 선거제 개편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등 검찰개혁 관련 법안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키로 하면서 작성한 합의서의 문구다. 패스트트랙 안건을 한날 본회의에 상정하고 선거법부터 처리키로 약속한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 20일 이 같은 합의를 깨고 공수처법안을 우선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민주당이 정한 D데이는 29일이다.

21일 ‘4월 합의’를 이뤘던 야3당의 표정은 좋지 않다. 정동영 평화당 대표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공수처법 우선 처리는 불가하다”고 말했고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도 “절대 불가”라고 했다. 박원석 정의당 정책위의장 정도만 “4월 합의 주체들이 선거법 처리까지 가는 로드맵을 다시 합의한다면 우선 처리도 가능하다”고 했다. 이날 회동한 민주당·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등 교섭단체 원내대표들은 공수처 설치 법안 처리에 관해선 "우선 처리"(민주당 이인영),"절대 반대"(한국당 나경원),"선거법 동시 처리"(오신환)라는 이견만 확인한 채 돌아섰다.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발언하는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뉴스1]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발언하는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뉴스1]

왜 29일인가

29일 공수처법 처리에 강한 의지를 보이는 것은 이인영 원내대표다. 당 주류들 중에도 “상당 기간 ‘공수처 반대=반개혁’이라는 프레임으로 한국당을 몰고 다니는 게 유리하다”(친문재인그룹 중진 의원)는 의견이 있지만 이 원내대표만큼은 아니다. 그와 가까운 한 의원은 “학생운동 시절 검찰 수사를 받아 본 이 원내대표가 검찰에 대해 갖는 반감은 문재인 대통령 못지 않다”며 “29일 처리 주장이 다른 목적을 염두에 둔 '협상용'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 원내대표는 22일 열리는 의원총회에서 29일 우선처리 방침에 대한 당내 동의를 구할 예정이다.

당 지도부 차원에선 “우선 처리를 강력히 진행하는 것이 민의에 맞는 대응”(박찬대 원내대변인)이라고 본다. 이 원내대표도 20일 민주당 검찰개혁특위에서 “서초동에서 내려진 검찰개혁을 향한 국민의 명령이 마침내 국회로 전달됐다”고 말했다. 그가 처음 당내 검찰개혁특위(위원장 박주민)와 함께 29일 본회의 상정 가능성을 논의하기 시작한 것도 서울 서초동에 대규모 인파가 몰린 촛불집회(지난달 28일) 직후부터였다. 전략통으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조국 대전’ 국면에서 검찰 개혁에 동의하지만 조국에 반대하는 지지층이 이탈했고, 조국 사퇴 뒤 ‘조국 수호’를 외쳤던 지지층의 이탈이 감지됐다”며 “공수처 드라이브는 두 부류의 지지층을 동시에 회복할 수 있는 카드”라고 말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왼쪽),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21일 국회에서 교섭단체 원내대표 회동을 가졌다. 변선구 기자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왼쪽),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21일 국회에서 교섭단체 원내대표 회동을 가졌다. 변선구 기자

29일 처리 가능한가

패스트트랙에 합의한 야3당조차 ‘우선 처리’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본회의서 부결이다. 민주당의 핵심당직자는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지도부의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128석)이 믿는 건 공수처 설치에 찬성하는 압도적인 호남 여론이다. 공수처 법안만 떼어 본회의 의결을 시도하더라도 정의당(6석)·민주평화당(4석)은 물론 무소속 중 호남 기반의 의원들(12~13석)들도 반대하기 어렵고 바른미래당에서도 호남 지역구와 개혁 성향 의원들로부터 10표 이상의 찬성표를 얻어낼 수 있다는 게 민주당의 셈법이다. 민주당의 수도권 의원은 “선거법은 비례대표 숫자 확정 문제 등 수정이 불가피한 쟁점들이 많다”며 “묶어서 처리하면 검찰개혁이 불발될 가능성이 오히려 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수처법만 처리한다고 할 때 다른 당 의원들이 본회의에 참여할지 미지수다. 한국당은 물론 바른미래당·대안정치 등도 불참을 택한다면 의결정족수(과반 출석)에 못 미칠 수 있다. 민주당 원내사령탑의 정족수 관리 실력이 드러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낭패 본다면 검경수사권 조정안과 선거법은 물론 예산안 처리도 진통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한 마디로 '고위험'의 게임인 셈이다.

본회의 사회권을 쥔 문희상 국회의장의 선택도 변수다. 문 의장은 이날 조지아 트빌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과반인) 150표 이상이 필요하니 결국 일괄타결 밖에 답이 없다”며 “예산안과 사법개혁 법안, 정치개혁 법안 등 모든 것을 뭉뚱그려 (일괄타결)해야 한다고 예측한다”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공수처 법안 내용은 조정은 어디까지

이 원내대표는 2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방대한 권한을 가지고도 어떤 기관으로부터 견제받지 않는 검찰 권력의 분산을 이루는 것이 공수처 핵심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부여해 검찰 권력을 분산시킬 수만 있다면 일부 내용은 조정할 수 있다는 듯이 들린다. 하지만 실질적 조율은 어렵다고 한다.

패스트트랙에 동시에 올라와 있는 백혜련 민주당 의원 안과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 안의 핵심적 차이는 공수처장 임명 방식이다. '백혜련안'은 추천위원회가 후보 2명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그 중 1명을 지명하고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하는 방식이고 '권은희안'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임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자는 장관, 후자는 총리 방식이다. 그나마 야당의 비토권이 있는 건 후자다. ‘백혜련안’에선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 임명권도 대통령이 갖지만 ‘권은희안’에선 공수처장이 갖는다. 수사 대상도 민주당은 ‘전·현직 고위공무원과 그 가족(배우자와 직계존비속)’으로 하자는 입장이고 ‘권은희안’은 현직으로 제한해 살아있는 권력만을 겨누게 하고 있다. 기소권에 대해서도 권은희안은 기소심의위원회가 최종적으로 기소 여부를 결정해 공수처의 독주를 방지하도록 설계돼 있다. 민주당이 지금까지 수용의사를 밝힌 것은 기소심의위원회 아이디어뿐이다.

임장혁·윤성민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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