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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의 차이 나는 차이나] 정상회담만 다섯 번…김정은 어떻게 시진핑 마음 훔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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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북·중 혈맹은 ‘항미원조(抗美援朝, 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도운)’ 전쟁 즉 한국전쟁을 매개로 한다. 이를 기리는 기념관이 없을 수 없다.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의 잉화(英華)산에 1958년 10월 처음 문을 연 ‘항미원조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북한 속내 보여 중국의 신뢰 얻고 #홍콩 문제, 중국 대신 서방과 싸워 #뛰우기로 시진핑 권력 강화 기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6월 20일 북한 5.1 경기장에 운집한 10만 평양 시민에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시 주석 뒤를 따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발걸음은 '시 주석 띄우기'의 대표적 모습이다. [AP=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6월 20일 북한 5.1 경기장에 운집한 10만 평양 시민에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시 주석 뒤를 따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발걸음은 '시 주석 띄우기'의 대표적 모습이다. [AP=연합뉴스]

덩샤오핑(鄧小平)이 친필로 쓴 ‘항미원조기념탑’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2014년 확장 공사를 이유로 문을 닫았다. 단둥과 북한 신의주를 잇는 새로운 다리 ‘신압록강대교’는 2011년 공사를 시작해 2015년 완공됐지만, 아직 개통은 하지 않은 상태다.

당시 북·중 관계를 대변하는 책이 있다. 일본 언론인 곤도 다이스케(近藤大介)의 『시진핑은 왜 김정은을 죽이려 하는가』다. 섬뜩한 제목의 이 책은 2014년 일본에서 출판됐고 이듬해 국내에도 번역돼 화제를 모았다. 더는 나빠질 수 없는 북·중 관계를 보여준다.

지금은 상황이 딴판이다. 베이징 외교가에선 북한 대표단의 잇따른 방중으로 베이징 문지방이 닳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지난 두 달 동안 김완수 조국전선 중앙위 의장, 김성남 국제부 부부장, 강윤석 중앙재판소장, 연경철 인민무력성 대외사무국장이 중국을 찾았다.

북한은 지난 6월 20일 평양의 5.1 경기장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한 사람만을 위한 대형 마스게임을 선보였다. 북한과 중국 인민의 우의는 '불패'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북한은 지난 6월 20일 평양의 5.1 경기장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한 사람만을 위한 대형 마스게임을 선보였다. 북한과 중국 인민의 우의는 '불패'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지난해 3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격적인 방중 이후 시작된 변화다. 김 위원장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16개월 동안 다섯 차례 정상 회담을 가졌다. 분기에 한 번꼴인 셈이다. “시진핑이 김정은을 죽이려 한다”는 곤도의 주장은 이제 설 자리가 없다.

김 위원장과 시 주석은 찰떡궁합을 과시 중이다. 공동의 적 미국에 맞서는 등 국익에 기초한 상호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란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현재 북·중의 돈독한 관계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는 게 중국 내 한반도 전문가의 공통된 견해다.

시 주석 집권 이후 수직으로 추락했던 북·중 관계는 어떻게 회복됐나. 김 위원장이 시 주석의 마음을 훔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베이징의 정통한 북·중 관계 소식통은 말했다. 크게 세 가지 점이 주효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속내 보여 주기다. 중국은 의심이 많다. 문명이 오래됐다는 건 그만큼 교활하다는 말과 같다고 한다. 이런 나라의 신뢰를 어떻게 얻어야 하나. 가장 좋은 방법은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부인 펑리위안과 함께 지난 6월 20일 평양 5.1 경기장에서 펼쳐진 마스게임을 보며 박수를 보내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부인 펑리위안과 함께 지난 6월 20일 평양 5.1 경기장에서 펼쳐진 마스게임을 보며 박수를 보내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지난해 초 중국은 속이 탔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는데 중국만 ‘패싱’ 당하는 건 아닌지 다급했다. 3월 중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문재인 대통령 특사로 베이징을 찾아 설명했지만 시 주석의 궁금증을 풀어주기엔 부족했던 모양이다.

시 주석은 3월 말 1차 방중한 김 위원장의 말을 듣고서야 “이제야 상황을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이 한반도 상황과 북한의 구상을 솔직하게 전했고 이게 시 주석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이야기다.

두 번째는 띄우기다. 이는 시 주석 본인이 들어서 즐겁기도 하지만 중국 인민에게 보여주는 측면이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김 위원장은 “한반도 정세 변화를 정의상이나 도의적으로 시 주석에게 마땅히 알려드려야 하지 않겠나”라며 깍듯이 예를 차렸다.

또 “중요한 말씀을 해 주셔서 크게 깨달았다” “시 총서기는 우리가 매우 존경하고 믿는 위대한 영도자” 등 시 주석을 추켜세우는 김 위원장의 말은 차고 넘친다. 소식통은 이 같은 ‘시진핑 띄우기’ 발언이 가장 효과가 크다고 주장했다.

북·중 언론에 비친 김정은의 시진핑 찬양.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북·중 언론에 비친 김정은의 시진핑 찬양.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중국은 ‘애국주의’를 강조한다. 나라를 사랑하자는 이 캠페인은 국가를 이끄는 공산당, 그리고 당을 영도하는 지도자 시진핑을 사랑하자는 걸로 이어지는 논리 구조를 갖는다. 시진핑 1인 체제 강화가 목적인데 아부만큼 여기에 잘 부합하는 게 없다는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최대 관심사인 권력 공고화를 공략하는 치밀한 대중 전략으로 시 주석 집권 이후 추락했던 북중 관계를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중국 신화망 캡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최대 관심사인 권력 공고화를 공략하는 치밀한 대중 전략으로 시 주석 집권 이후 추락했던 북중 관계를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세 번째는 가려운 곳 긁어 주기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말이 있는데 김 위원장은 홍콩 시위로 서방의 비난을 받으며 체면을 구기던 시 주석을 위해 대신 총대를 메고 싸우는 모습을 보여 환심을 샀다고 한다.

우선 코너에 몰린 시 주석을 북한으로 초청해 ‘황제 의전’을 베풀었다. 특히 북한 노동당 정치국 위원과 후보위원 전원을 집합시켜 시 주석에 인사드리게 한 건 중국 언론으로부터 ‘특수 안배’란 말까지 낳으며 시 주석과 중국 인민에 감동을 줬다.

북한은 8월 11일 “홍콩은 중국의 홍콩”이라는 외무성 대변인 말에 이어 13일엔 노동신문이 “서방 세력이 중국 내부 문제에 이래라저래라 훈시질하며 불순분자의 난동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글을 싣는 등 중국을 대신해 서방과 싸웠다.

이 같은 김 위원장의 북·중 관계 복원 전략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중국을 움직이려면 중국에 뭐가 이득인가의 국익 차원 계산도 필요하지만, 지도자 시진핑 개인의 관심에 보다 초점을 둬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시 주석의 가장 큰 관심사는 뭔가. 자신의 권력 안정 나아가 공고화다. 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 방중 이후 시 주석의 답방이 아직 없다. 한·중 관계의 전면 회복 계기로 여겨지는 시진핑 방한도 이런 각도에서 접근하면 보다 쉽게 해법을 찾을 것으로 전망된다.

베이징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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