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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드 이후 한국 게임 견제…만리장성 벽 더 높아졌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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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7호 0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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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미국의 게임개발사인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홍콩인 프로 게이머인 ‘블리츠청(본명 청응와이)’에게 상금 몰수와 1년간 대회 출전금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인터넷을 통해 생방송으로 중계된 ‘하스스톤’ 게임 중계에서 “홍콩 민주화를 지지한다”고 밝혔다는 이유다. 론 와이든 미국 상원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블리자드가 중국을 기쁘게 하려고 기꺼이 굴복했다”고 비판했다.

LOL·클래시로얄 제작사 인수 등 #중국, 게임판 넘어 미디어까지 입김 #‘판호’ 막힌 국내 업체 사업 다각화 #“성장 한계점 판단한 것 아닌지 우려”

세계적인 게임업체들이 중국의 눈치를 보는 것은 그만큼 시장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7억 명에 달하는 중국의 게임 이용자가 올 한 해에만 365억 달러(43조5000억원)를 쓸 것으로 추정된다. 시장점유율이 24%에 달해 미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 중 하나다. 중국 업체들은 세계 시장에서도 큰손으로 통한다. 세계 1위 게임업체인 중국 텐센트는 ‘리그 오브 레전드(LOL)’로 승승장구하는 라이엇게임즈 지분 100%를 인수했고, 모바일게임 ‘클래시로얄’로 유명한 슈퍼셀 지분 84.3%와 언리얼 엔진 개발사인 에픽게임즈 지분 40%를 갖고 있다. 세계 5위인 액티비전 블리자드, 13위인 유비소프트 지분도 5%씩 보유했다.

국내 모바일게임 톱10 중 중국산 4개

그래픽=이정권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gaga@joongang.co.kr

블리자드의 개발자였던 마크 컨 레드5스튜디오 최고경영자(CEO)는 “중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로 폭발적으로 성장한 중국 게임회사가 미국 게임회사들을 계속 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공산당은 이제 게임판의 영향력을 넘어 세계 미디어를 조종하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검열하려 든다”고 비판했다.

시장규모 1위인 미국과 3위인 일본은 콘솔게임 비중이 큰 데 비해 중국은 한국과 함께 PC와 모바일게임 비중이 크다. 시장조사업체 뉴주에 따르면 올해 1521억 달러(180조원)로 추정되는 전 세계 게임시장에서 엑스박스와 플레이스테이션 등 콘솔게임은 60조원 규모다. 모바일게임(80조원)보다는 작지만 PC게임(40조원)보다는 규모가 크다.

한국은 PC 게임 분야에서 강점이 있다. 넥슨이 1996년 개발해 23년째 서비스하고 있는 세계 최장수 온라인게임 ‘바람의 나라’, 엔씨소프트가 98년 내놓은 ‘리니지’ 등은 여러 명이 함께하는 롤플레잉게임(MMORPG) 분야를 개척했다는 평을 받는다. 하지만 최근 급성장하는 모바일게임 분야에서는 중국에 밀리고 있다. 지난 7일 모바일게임 분석사이트 게볼루션이 발표한 국내 모바일게임 순위에 따르면 중국 4399네트워크의 ‘기적의 검’이 1위, 중국 릴리스게임즈의 ‘라이즈 오브 킹덤즈’가 2위를 차지했다. 상위 10개 게임 중 4개가 중국산이었다. 콘솔게임 분야에서는 미국과 일본의 아성에 도전하지 못하고 있다. 소니·마이크로소프트(MS)·닌텐도 등 게임기 제조업체와 반다이·코나미 등 게임 개발업체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 산업은 한국 콘텐트 수출의 근간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게임 매출 13조9335억원 가운데 해외매출은 7조6053억원에 달한다. 지난 5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등 한국 영화에 대한 평가가 높아지고 있지만 지난해 매출 5조5896억원 가운데 수출은 495억원에 불과하다. 방탄소년단(BTS) 등 K팝의 위세가 드높다고 해도 음악 관련 매출 6조4931억원 가운데 수출액은 6099억원에 그쳤다.

게임 수출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2016년 33억 달러 수준이던 국내 게임 수출액은 2017년 국내 중소 게임업체였던 블루홀(현 크래프톤)이 개발한 ‘배틀그라운드’ 열풍을 타고 59억 달러까지 급증했다. 네오플의 PC 온라인게임 ‘던전앤파이터’가 전 세계 매출 2위, 스마일게이트의 총싸움게임(FPS) ‘크로스파이어’가 5위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해 게임 수출은 64억달러를 기록했다. 콘텐츠진흥원은 “국내 콘텐트 매출 가운데 게임의 비중은 10%대 초반에 불과하지만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0%에 가깝다”고 밝혔다. 하지만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갈등 이후  ‘한류 제한령(限韓令)’에 따른 판호(版号) 금지조치로 수출 성장에 제동이 걸렸다. 업계 관계자는 “한한령 이후 중국 게임업체들의 기술과 매출이 급성장하자 시장 보호를 위해 한국 게임 서비스를 계속 막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던전앤파이터와 크로스파이어는 중국에서만 연 1조원 안팎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국내 업체들은 사업다각화로 눈을 돌리고 있다. 업계 2위인 넷마블은 지난 14일 웅진코웨이 지분 25%를 1조8000억원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넷마블 측은 “안정적인 캐시카우(현금창출원)를 확보해 신성장 동력으로 삼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넷마블은 지난해 4월 방탄소년단(BTS) 소속사인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지분 25%를 2014억원에 인수했다. 국내 1위 게임업체 넥슨의 지주사인 NXC는 2013년 레고 거래 플랫폼 브릭링크와 노르웨이 유모차 업체 스토케, 2017년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코빗 등 다양한 업체를 인수했다.

통신업체는 클라우드·VR 게임에 눈독

이에 대한 업계와 전문가들의 시각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한 투자자문사 관계자는 “브릭링크·스토케 지분을 갖고 있는 NXC 유럽법인은 지난해 379억원의 적자를 냈고, 웅진코웨이 인수를 통해 구독경제와 사물인터넷(IoT) 기반 스마트홈 사업으로 시너지를 내겠다는 넷마블의 설명도 명쾌하지 못하다”며 “과거와는 달리 게임이 아닌 분야에 투자하는 것은 게임 산업이 성장 한계가 왔다고 판단한 결과가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반면 구글·MS 등 IT업체와 SK텔레콤 등 통신업체들은 적극적으로 게임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초고속 5G 통신망을 활용해 PC와 콘솔용 게임을 스마트폰에서 즐길 수 있는 클라우드 기반 스트리밍 게임 서비스를 앞세운다. LG유플러스는 지난 9월부터 엔비디아와 손잡고 ‘지포스 나우’의 시범 서비스를 하고 있다. SK텔레콤은 MS와 함께 다운로드, 설치 없이 엑스박스게임을 스마트폰에서 즐길 수 있게 해주는 ‘프로젝트 엑스클라우드’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다. KT는 손노리·드래곤플라이 등과 협력해 5G 기반 가상현실(VR) 게임 제공에 나설 예정이다. 구글 역시 TV·PC·스마트폰 등 원하는 기기에서 별도의 다운로드 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스태디아’ 서비스를 다음달 19일 시작한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지난해 3억8700만 달러이던 클라우드 게임 시장 규모가 2023년에는 25억 달러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김창우 기자 changwo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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