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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기술 허덕, 셧다운 허들…‘돈 내야 이기는’ 방식 재탕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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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7호 0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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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6개월이면 새로운 결과물이 나오는 반면 우리나라는 1년에 하나도 나올까 말까 할 정도다. 게임업계도 정부 시책을 당연히 따라야 하지만, 산업 특성을 고려해 줬으면 한다.”

한국 게임산업 악재들 #국내 게임 매출 연 14조 수준에 #세계 1위 중국 텐센트는 20조 #성공한 게임 우려먹기에만 급급 #변신 카드에 수억원 쓰는 유저도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이달초 경기도 판교 사옥을 찾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게임업계의 생산성이 떨어져 고민이라는 것이다. 강신철 게임산업협회장도 “선진국에서도 특정 산업에 대해서는 1년 이상의 유예기간을 지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부터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기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제도가 시행되면서 넥슨·엔씨소프트 등 게임업체들은 자율 근무제, 근로시간 선택제 등을 잇따라 도입했다. 일과 삶의 균형과 효율적인 업무시간 활용으로 직원들의 업무 만족도를 높여 회사 경쟁력을 강화하는 선순환 구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게임업계 경영진은 효율성 하락을 우려한다. 게임 개발 막바지나 서비스 초기에는 소위 ‘크런치 모드(철야 작업과 추가 근무를 통해 자원을 최대한 투입하는 것)’가 필수적인데, 탄력근로제 없는 52시간 근무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한국 콘텐트 산업 현황

한국 콘텐트 산업 현황

개발자나 업계 전문가들의 시각은 좀 다르다. 52시간제보다 자본·인력 부족, 창의성 고갈, 각종 규제를 더 큰 문제로 본다. 덩치에서 밀리는 것은 국내 게입업체의 근본적인 문제다. 국내 게임 매출은 연 14조원 규모인데, 세계 1위 업체인 중국 텐센트만 20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린다. 시장조사업체 뉴주에 따르면 상위 10개업체 중 미국이 5개, 일본이 3개, 중국이 2개인 반면 한국 빅3는 12위(넥슨), 14위(넷마블), 17위(엔씨소프트)에 그쳤다. 중국 자본은 한국에도 상륙했다. 넷마블은 텐센트 자회사가 3대 주주고, 카카오게임즈는 텐센트 등으로부터 1400억원을 유치했다. 텐센트는 배틀그라운드를 개발한 비상장사 크래프톤에도 6000억원 이상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게임업체 관계자는 “온라인 롤플레잉게임 하나를 개발하려면 최소 3년에 300억원 이상 들어가는데 적극적으로 나서는 투자자들이 없다”며 “국내 게임업체들이 PC 게임 대신 모바일 게임에 집중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위험을 피하려다보니 새로운 형식의 게임을 만들어내기보다는 기존 인기 게임을 모바일로 내놓거나 비슷한 형식에 그래픽만 다른 ‘양산형’ 게임만 선보인다. 게임은 무료로 내려받는 대신 제대로 즐기려면 유료 패키지를 사야하는 형태다.

좋은 캐릭터나 아이템은 게임머니 등으로 ‘뽑기’를 통해 통해 구해야 한다. 2017년 출시된 리니지M의 경우 캐릭터를 강화하기 위해 변신 카드를 뽑아야 한다. 영웅등급 카드를 뽑으려면 100만~200만원, 전설등급 카드를 뽑으려면 수천만원이 든다. 지난해 업데이트된 신화등급 카드를 뽑기위해 수억원을 썼다는 유저도 있다. 지난해 이 게임 이용자들은 월 평균 20만원을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효중 가톨릭대 교수는 “자동사냥으로 레벨을 올리고 뽑기로 좋은 무기를 장착해 다시 더 강한 적을 자동사냥하는 ‘돈 내야 이긴다(pay to win)’ 식의 천편일률적인 비지니스 모델에서 벗어나는 것이 숙제”라고 지적했다.

게임 자체를 사회악으로 보고 규제에만 몰두하는 정부도 게임산업 고사에 일조하고 있다. 개인 개발자가 만든 무료 게임도 110만원을 내고 심의를 받아야한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다양한 게임을 내놓기 어려운 구조다. 자정부터 미성년자의 PC 게임을 막는 셧다운제도 실효성이 적고 모바일 게임으로 유도하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게임은 문화이자 여가생활인데 WHO 분류대로 질병으로 못박는 것은 옳지 않다”며 “정부는 2022년까지 콘텐트 모험투자펀드 조성 등에 1조원 이상을 지원할 예정인데, 당연히 이 중 많은 부분을 게임 산업에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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