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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야구, 무시 못하겠네

중앙일보

입력

지난 14일 아시아야구선수권 한국전에서 홈런을 친 중국의 양진(오른쪽). [사진 아시아야구연맹]

지난 14일 아시아야구선수권 한국전에서 홈런을 친 중국의 양진(오른쪽). [사진 아시아야구연맹]

이젠 무시할 수 없다. 중국 야구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2020 도쿄올림픽, 그리고 그 이후를 바라보며 성장하고 있다. 불똥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도 튀고 있다.

지난 14일 대만 타이중에서 열린 제29회 아시아야구선수권 조별리그 경기에서 한국은 중국에 3-4로 졌다. 7회까지 한국은 한 점도 뽑지 못했다. 0-3으로 뒤진 8회 초 강현우(유신고)의 적시타 등으로 동점을 만들었지만 승부치기로 진행된 연장 10회 말, 1점을 내주면서 패했다. 한국이 중국에게 진 건 2005년 이 대회 동메달 결정전(3-4 패) 이후 14년 만이다. 중국의 런치우거 감독은 "우리가 이겼지만, 그게 우리가 그들보다 강하다는 뜻은 아니다. 더 노력해서 올림픽을 향해 계속 전진할 것"이라며 기뻐했다.

한국이 이번 대회에서 최상의 전력으로 나선 건 아니다. 4년 전 대회에선 대학 선수를 중심으로 군복무중이거나 저연차 프로 선수들이 합류했다. 김상수(키움), 이용찬(두산), 오선진, 하주석(이상 한화) 김선빈(KIA), 조수행(두산) 등이 활약하며 우승했다. 그러나 올해는 대학생 20명, 고교생 4명만 선발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황정주 사무차장은 "중국을 무시하는 분위기도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 선수들의 기량이 예전보다 나아진 것도 맞다"고 했다.

야구를 '빵치우(봉구·棒球)'라고 부르는 중국은 '야구 불모지'다. 20세기 초엔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야구를 시작한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인들에 의해 야구가 보급됐다. '수류탄 투척 연습에는 야구가 좋다'는 이유로 장려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하지만 문화대혁명 이후엔 적국인 미국의 운동이라는 이유로 야구를 배척했다. 대만이 야구 강호라는 것도 정치적인 이유도 있었다. 황정주 차장은 "중국은 대만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 참가 신청을 했다가 기권하는 경우도 많았다. 실력 차가 크기 때문에 대만에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80년대 아시아야구연맹에 가입했지만 실력은 형편없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즈음엔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도 있었지만, 이어지지 않아 세미 프로형태 리그도 사라졌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열린 한국-중국전. 자카르타=김성룡 기자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열린 한국-중국전. 자카르타=김성룡 기자

중국 야구에 다시 활기가 돌기 시작한 건 2015년 국가적인 차원에서 스포츠를 육성하기 시작한 뒤부터다. 시진핑 주석은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 산업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2025년까지 10년 간 5조 위안(약 835조원) 규모로 키운다는 정책을 세웠다. 알리바바그룹을 비롯한 중국 기업들도 경기장 건설, 용품 개발 등에 투자하고 있다. 야구 역시 올림픽에 일시적으로 복귀한 덕분에 수혜를 누리게 됐다. 인구 숫자를 감안하면 적지만 중고교 팀도 수백 개가 창단됐다.

중국 야구의 목표는 단기적으로 2020 도쿄올림픽, 장기적으로 프로리그 창설이다. 그래서 실행한 게 대표팀 선수들의 '미국 독립리그' 진출이다. 중국 대표팀 선수들은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이란 독립리그 산하 텍사스 에어호그스 선수로 1년간 뛰었다. 올시즌 에어호그스 소속으로 1경기 이상 출전한 51명 중 24명이 중국 선수였다. 한국전 선발로 5이닝 무실점한 쿠이엔팅, 유격수 양진, 승리투수 장타오도 독립리그에서 뛴 선수들이다. 메이저리그보다는 수준이 낮지만 미국에서 체계적인 훈련과 실전 경험을 쌓아 기량을 끌어올렸다. 한국, 일본, 대만처럼 프로 리그가 없는 중국이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야구대표팀 코디네이터를 지낸 중국야구 전문가 김윤석 씨는 "미국에서 100경기 정도를 치르면서 중국 선수들의 기량이 올라갔다"고 전했다. 그는 "대만에서 열리는 이번 아시아선수권에 출전한 것도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중국 야구의 목표는 대만을 이기고, 한국·일본과 격차를 줄이는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은 지난해 아시안게임에서 역시 독립리그에서 기량을 닦은 간취안의 호투를 앞세워 대만과 0-1, 접전을 벌였다.

MLB도 전폭적으로 중국을 지원하고 있다. MLB는 중국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NBA를 벤치마킹 사례로 보고 중국야구협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창저우, 난징, 우시 등 세 곳에 MLB 발전센터를 설치해 어린 선수들을 육성하고 있다. 이미 마이너리그엔 10대, 20대 중국 선수들이 뛰고 있다.

중국의 성장은 한국에겐 위협이다. 당장 이번 대회만 해도 그렇다. 아시아선수권 상위 2개 팀(일본 제외)은 내년 3월 올림픽 세계예선 출전권을 획득한다. 프리미어 12에서 '김경문 호'가 도쿄행 직행 티켓을 따내지 못할 경우, 한국도 이 대회에 출전해야 올림픽 본선 무대에 나갈 수 있다. 일종의 '보험'인 셈이다. 4강에는 일본(A조 1위), 대만(A조 2위), 한국(B조 1위), 중국(B조 2위)이 진출했다.

문제는 한국이 조별리그에서 중국에게 발목을 잡혔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조별리그 1위를 차지했지만, 중국에게 졌기 때문에 수퍼라운드에선 1패를 안고 싸워야 한다. 일본과 대만을 모두 이겨야만 결승에 갈 수 있다. 일본이 결승에 간다면 최소한 3위는 해야 한다. 대표팀은 18일 일본과 수퍼라운드 첫 경기를 치른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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