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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 봄' 발원지 튀니지, 엄격 보수 '로보캅' 교수 대통령 확실

중앙일보

입력

튀니지 대선에서 승리가 확실한 카이스 사이에드 후보 [AP=연합뉴스]

튀니지 대선에서 승리가 확실한 카이스 사이에드 후보 [AP=연합뉴스]

 2011년 ‘아랍의 봄'의 발원지였던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대선 결선 투표가 치러졌는데,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법학 교수가 당선될 것으로 보인다. 사형제 찬성 등 사회적으로 보수적 입장을 가져 ‘로보캅'으로 불리는 이 교수는 경제난과 부패에 신물이 난 젊은 층에 몰표를 받았다.

정치 경험 없는 사이에드 법학 교수 #경제난과 부패에 젊은층이 몰표 줘 #사형 찬성하고 동성애 처벌 등 주장 #"법 엄격하게 집행할 사람으로 인식"

 AFP 통신 등에 따르면 13일(현지시간) 여론조사기관 시그마콩세이 등의 출구조사 결과 무소속 카이스 사이에드(61)가 77%가량을 득표해 승리할 것으로 예측됐다. 경쟁자인 언론계 출신 나빌 카루이(56)는 27%가량을 얻을 전망이다. 카루이는 민영 방송사 ‘네스마’를 소유하고 2017년 재단을 만들어 빈민지원 활동을 벌여왔다.

대선 결선 투표에 진출한 나빌 카루이 후보(왼쪽)와 사이에드 후보 [로이터=연합뉴스]

대선 결선 투표에 진출한 나빌 카루이 후보(왼쪽)와 사이에드 후보 [로이터=연합뉴스]

 이번 투표는 로보캅이라는 별명을 가진 신인 사이에드와 잘 알려진 언론계 인사 카루이의 대결이었다. 두 사람 모두 아랍의 봄 이후 정체된 경제와 높은 실업률, 빈곤한 공공서비스에 대한 유권자의 분노를 이해하는 입장을 보였다. 유권자들은 사이에드를 “법을 엄격하게 집행할 사람"으로, 카루이를 “가난한 사람을 돕는 사람"으로 인식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사이에드는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유권자들의 집을 방문하는 방식의 선거운동을 했다.

 사이에드는 당선이 확실해지자 “튀니지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가 시작됐다"며 “젊은 세대가 이번 선거 운동을 이끌었는데, 나는 그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사이에드는 정당에 속한 적이 없어 ‘아웃사이더'에 해당한다. 두 후보 모두 기성 정치권에 반대하는 인물로 여겨졌는데, 특히 사이에드가 엄격한 태도를 보이는 점에서 차이가 났다. 사회적으로 보수 성향인 그는 사형과 동성애 처벌에 찬성하며, 결혼하지 않은 커플이 공공장소에서 애정 행위를 하는 것을 처벌하자고 주장했다.

사이에드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되자 지지하는 인파가 거리로 몰려 나왔다. [EPA=연합뉴스]

사이에드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되자 지지하는 인파가 거리로 몰려 나왔다. [EPA=연합뉴스]

 미국 컬럼비아대 중동 및 북아프리카 담당 교수인 사프완 마스리는 가디언에 “아랍의 봄 이후에도 경제 개혁이 부족했다는 실망감이 튀니지 유권자들에게 퍼져 있다"며 “국방부 장관이나 총리 출신 대통령 후보들이 지지를 받지 못했는데, ‘우리가 지지해줬지만, 당신들의 약속은 실패로 끝났다'는 강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서구화하고 부패한 엘리트에 대한 반대 정서가 사이에드의 승리 요인으로 꼽혔다.

시그마콩세이의 출구조사에 따르면 18∼25세의 90%가 사이에드에게 표를 줬다. 60세 이상 유권자 중에서는 투표자의 49%만 그를 택했다. 튀니지는 2011년 아랍의 봄을 거치며 정치적 민주화에 성공했다. 8년 전 민중봉기로 독재자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당시 대통령을 축출한 이후 이번에 두 번째로 민주적인 대선을 치렀다.

'아랍의 봄' 혁명의 진원지인 튀니지는 두번째 민주적인 대선을 치렀다. [로이터=연합뉴스]

'아랍의 봄' 혁명의 진원지인 튀니지는 두번째 민주적인 대선을 치렀다. [로이터=연합뉴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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