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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영등포가 강남, 강남은 변두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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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6호 20면

책 속으로 

갈등 도시

갈등 도시

갈등 도시
김시덕 지음
열린책들

도시문헌학자 김시덕 새 책 #특별시와 변두리 갈등 주목 #서울시, 시간 지층 켜켜이 쌓여 #이주·재개발 애환 곳곳에 남아

‘서울 답사기’라고 하면 으레 떠올릴 수 있는 게 왕궁이니 성이니 하는 조선 왕조의 문화유산들일 것이다. 거기다 식민지 시대 독립운동이나 일제 강점기의 유산, 현대 한국의 발전상, 우리 구(區)의 충신이나 효자 같은 자랑거리로 치장될 것이다.

그런데 『갈등 도시』는 전편 격인 『서울 선언』(2018년 6월)과 마찬가지로 전혀 결이 다른 답사기를 보여 준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은 서울 시민과 주변 위성도시 주민들이 일상에서 겪는 갈등과 ‘전쟁’을 조명하는 데 주력한다. 그러면서 한양 도성을 현대 한국의 수도인 서울의 상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조선 왕조와는 질적으로 달라진 대한민국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심리에서 나온 것이라고 강조한다.

빈민촌이 해체되면서 도시 곳곳으로 스며들어 간 빈민의 이야기, 허름한 주거지가 철거되면서 집단 이주하게 되는 철거민들의 애환, 공장과 성매매 집결지, 한센인 정착촌이 서울 외곽으로 쫓겨나고 그 자리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는 답습들을 추적한다. 그동안의 여행관광안내서들에서 상대적으로 관심받지 못한 지역을 중심으로 ‘대(大)서울(Greater Seoul)’의 본질을 탐색했다.

저자는 문헌학자답게 각종 자료와 현장의 ‘도시 화석’들을 고고학자들처럼 캐내고 곱씹어 해석했다. 서울과 인천을 잇는 경인메갈로폴리스의 탄생과 발전, 오리지널 강남이었던 영등포권의 전개, 파주~독립문의 서북부권, 남양주~약수의 동북부권, 대서울의 한복판인 을지로와 종로, 해방촌 그리고 강남과 분당 등을 종으로 횡으로 달리면서 숨겨졌던 속살을 파헤쳤다.

을지로는 19세기 말~20세기 전·후기~21세기 초기까지의 다양한 시대가 켜켜이 시층(時層)을 쌓아 놓은 대표적 ‘삼문화 광장’이다. 저자는 도심 재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을지로의 다양하게 뒤엉킨 모습을 부수려고만 하지 말고 보존과 발굴에도 마음을 쓰자고 제안한다.

서울 세운 청계 상가에서 바라본 1호선 종각역 방향. 일대는 19세기 말, 20세기 전후, 21세기 초 가 중첩된 ‘삼문화 광장’이다. [사진 열린책들]

서울 세운 청계 상가에서 바라본 1호선 종각역 방향. 일대는 19세기 말, 20세기 전후, 21세기 초 가 중첩된 ‘삼문화 광장’이다. [사진 열린책들]

1936년 경성에 편입된 영등포엔 각종 비사가 얽혀 있다. 식민지 시대 말기에 이르러 늘어난 경성 인구를 수용할 목적으로 영등포~흑석 사이에 신도시가 조성됐는데 이 지역은 최초의 ‘강남’이었다. 상도동의 강남초, 대방동의 강남중 등 이 지역엔 지금도 강남이라는 이름이 붙은 시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73년 영등포구에서 분리된 관악구의 신림3동(조원동)에는 강남아파트가 세워졌다.

63년 서울에 편입된 현재의 강남은 반대로 ‘영동’이라 불렸다. 영등포의 동쪽이란 뜻이다. 영동대교, 영동대로 등에도 그 이름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손정목의 『서울 도시 계획 이야기』에 따르면 강남은 북한의 공격에 대비해서 강북 인구를 옮기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됐다고 한다. 압구정동 아파트단지에는 한강 남쪽을 지키기 위한 조준 사격시설이 설치됐다. 반포대교를 바라보는 서래공원 자리에도 북한군 남하를 저지할 목적으로 벙커가 설치됐으나 지금은 사라졌다. 서래마을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한강 변에 있었으나 큰 피해를 입은 후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서울 중구 광희동과 중림동에 남아 있는 다다미 가게들은 두 지역이 식민지 시대에 일본인들의 거주지로 형성되었음을 오늘에 전하는 도시 화석들이다. 명동은 일본·대만·한국의 머릿돌을 함께 볼 수 있는 드문 공간이다. 구파발 사거리에서 독립문 사거리를 잇는 의주로는 명나라와 청나라를 오가는 주요한 길이었지만 남북 분단 이후 경제적 중요성이 약해지고 군사적 의미가 커졌다.

해방촌은 식민지 시절 세워진 경성호국신사 부지에 조성됐다. 평안북도 선천군민회로 대표되는 월남민과 지방서 상경한 사람들 등 서울에 연고를 갖지 않는 사람들이 정착했다.

숱한 애환과 갈등이 씨줄과 날줄로 얽힌 서울은 물론 주변 지역에서도 재건축·재개발은 많은 상처를 남겼다. 생활환경을 현대식으로 바꾸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가운데 힘없는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밀려나는 일을 우리는 다반사로 목격해 왔다. ‘조화롭게’라는 아름다운 솔로몬의 해법이 있기는 하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지금도 서울과 그 이웃 도시의 한쪽에선 시층(時層)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

『갈등 도시』는 그 자체로 문헌학적 가치를 지닌다. 글과 함께 실린 많은 사진은 이 시대의 산증인으로 남을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이 책에 나온 내용을 꼼꼼히 읽다 보면 다양한 지역 정보를 쏠쏠하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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