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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편 타르틴·대추 까눌레…전통 한식과 미국 빵집이 만났을 때

중앙일보

입력

족편 타르틴, 육포 고추장 타르틴, 겨자채 샌드위치, 더덕 잣 소스 샌드위치…. 여기 심상치 않은 이름을 가진 메뉴가 있다. 옆에 곁든 디저트 메뉴도 볼만하다. 잣쉬폰 케이크, 대추카야 까눌레, 잡과병 티케이크, 두텁 파이.

한식과 베이커리 장인의 협업 #'온지음X타르틴 베이커리 팝업'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과 샌프란시스코 유명 베이커리 '타르틴'이 협업했다. [사진 온지음]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과 샌프란시스코 유명 베이커리 '타르틴'이 협업했다. [사진 온지음]

전통 한식과 미국 빵집이 만났다.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과 미국 샌프란시스코 대표 베이커리, 타르틴 베이커리가 협업해 내놓은 음식들이다. 이름만큼이나 맛도 비범하다. 시큼한 맛이 감도는 샤워 도우 위에 풍부한 맛의 족편을 올리고 겨자 소스를 더했다. 깊은 맛을 내는 육포 고추장을 마치 버터처럼 샤워 도우 위에 바르기도 했다. 먹음직스러운 샌드위치 속에는 당근과 우엉, 햇배가 버무려진 겨자채와 소고기가 듬뿍 들어있다. 도톰한 식빵 한가운데에 속을 파고 제주 흙 더덕을 활용한 더덕 잣 소스를 올렸다.

샤워도우 위에 겨자 소스와 족편을 올린 '족편 타르틴.' [사진 온지음]

샤워도우 위에 겨자 소스와 족편을 올린 '족편 타르틴.' [사진 온지음]

지난 9월 16일부터 서울 종로구 서촌의 온지음 사옥 1층과 타르틴 베이커리 도산·한남·도곡·합정에서 ‘온지음X타르틴 베이커리 팝업’이 손님을 맞고 있다. 온지음은 우리 전통문화에 담긴 가치와 정신을 계승하고 이를 현대화하는 작업을 공들여 하는 전통문화연구소다. 온지음 맛공방 연구원들은 전통 한식을 어떻게 하면 현대인의 식탁에 자연스럽게 올릴 수 있을까 늘 고민한다. 그러다 요즘 젊은이들이 식사대용으로 즐기는 ‘샌드위치’를 떠올렸다. 올해 3월 온지음이 타르틴 베이커리에 협업을 제안했고, 타르틴이 흔쾌히 받아들여 6개월의 개발 기간을 거쳐 나온 결과물이다.

지난해 1월 서울에 문을 연 타르틴 베이커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유명 베이커리다. 천연 발효균으로 만든 반죽을 구워 만드는 샤워도우가 시그너처다. 뉴욕 타임스가 ‘세계 최고의 빵’이라고 극찬했던 바로 그 빵이다. 온지음의 연구원들과 타르틴의 베이커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제철 재료를 가지고 메뉴를 연구했다. 특히 은은하게 시큼한 맛이 감도는 타르틴의 샤워도우는 한식 반찬과도 잘 어울렸다. 빵과 한식 재료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한식 샌드위치’의 가능성을 엿본 셈이다.

온지음 맛공방의 박성배 수석연구원은 “매일 타르틴의 빵을 받아서 마치 밥을 먹듯 한식 반찬과 먹어보며 메뉴를 구상했다”며 “빵에 김치, 진미채를 먹어보기도 하고, 육포 고추장을 더해 먹어보며 맛을 가늠했다”고 메뉴 개발 과정을 밝혔다.

육포를 가루내어 고추장과 섞은 육포 고추장을 빵 위에 바르고 리코타 치즈 등을 더해 만든 '육포 고추장 타르틴.' [사진 온지음]

육포를 가루내어 고추장과 섞은 육포 고추장을 빵 위에 바르고 리코타 치즈 등을 더해 만든 '육포 고추장 타르틴.' [사진 온지음]

‘한식 샌드위치’라는 말은 어색하지만, 맛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마치 원래부터 있었던 메뉴인 것처럼 빵과 한식 재료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빵 위에 올린 족편은 마치 버터처럼 부드럽게 으깨져 풍미를 돋우고, 육포 고추장은 리코타 치즈와 어우러져 감칠맛이 난다. 밥보다 빵이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인기 메뉴인 겨자채 샌드위치는 든든한 한 끼로 손색없다. 겨자채는 선조들이 가을부터 겨울까지 먹던 전통 냉채다. 겨자즙에 각종 채소를 버무려 만든다. 샌드위치에는 가을 즈음부터 맛이 올라오는 뿌리채소인 당근과 우엉, 햇배에 겨자를 버무려 만든 냉채를 더했다. 마찬가지로 따뜻한 성질의 재료인 소고기도 넣었다. 이번 팝업 메뉴를 내면서 가장 염두에 두었던 것은 제철 한식 재료를 활용한다는 것이었다. 추석 즈음해 가을과 겨울에 선조들이 먹던 음식들을 중심으로 개발했다. 족편과 겨자채, 더덕 등이 활용된 이유다.

'겨자채 샌드위치'와 아이스 라테. 매운 성질을 가져 가을과 겨울에 몸을 보하는 역할을 했던 겨자채와 소고기를 넣은 샌드위치다. [사진 온지음]

'겨자채 샌드위치'와 아이스 라테. 매운 성질을 가져 가을과 겨울에 몸을 보하는 역할을 했던 겨자채와 소고기를 넣은 샌드위치다. [사진 온지음]

곁들이는 디저트 메뉴도 주목할 만하다. 한식 샌드위치에 온지음이 공을 들였다면, 디저트에는 타르틴이 장기를 발휘했다. 찹쌀 반죽에 소를 넣고 겉에 팥고물을 묻혀 만드는 두텁떡은 찹쌀 반죽 대신 파이 반죽을 넣어 두텁 파이로 변형했다. 덕분에 쫄깃한 대신 폭신하고 부드러운 맛의 디저트가 나왔다. 가을에 먹는 잣 설기는 잣쉬폰 케이크로, 견과류 듬뿍 들어간 영양 떡인 잡과병은 파운드 케이크로 재탄생했다. 은은한 단맛이 도는 대추 잼을 반죽에 넣어 구워낸 까눌레도 일품이다.

찹쌀 반죽 대신 파이 반죽에 소를 넣어 만든 '두텁 파이', 대추카야 잼을 반죽에 섞어 구워낸 '대추카야 까눌레.' [사진 온지음]

찹쌀 반죽 대신 파이 반죽에 소를 넣어 만든 '두텁 파이', 대추카야 잼을 반죽에 섞어 구워낸 '대추카야 까눌레.' [사진 온지음]

이미 오픈한지 3주 정도 지난 ‘온지음X타르틴 팝업’의 반응은 뜨겁다. 한식 파인다이닝 위주로 진행되는 기존 온지음 맛공방에서는 잘 찾아보기 힘든 젊은 층이 움직였다. 이번 협업을 통해 온지음 사옥 1층의 팝업 공간이 북적북적해진 이유다. 이번 팝업은 온라인에서도 화제다. 전통 한식과 요즘 힙합 베이커리의 만남이라는 점 때문이다. 해시태그를 타고 지구 반대편 샌프란시스코의 타르틴 베이커리 팬들이 온지음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우하기도 한다.

'온지음X타르틴 팝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서울 종로구 서촌 온지음 사옥 1층 매장 전경. 벼와 밀을 묶은 장식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 유지연 기자

'온지음X타르틴 팝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서울 종로구 서촌 온지음 사옥 1층 매장 전경. 벼와 밀을 묶은 장식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 유지연 기자

팝업이 진행되는 온지음 사옥 1층의 천장에는 벼와 밀이 한데 묶인 장식물이 걸려있다. 전통 한식과 미국 빵의 만남을 형상화한 것이다. 한식 장인과 베이커리 장인이 만나 풍성한 가을의 먹을거리를 만들어냈다는 의미도 되겠다. 이번 팝업은 10월 18일까지 운영된다. 주중만 운영.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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