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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본인의 부고를 본 예술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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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호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호정 문화팀 기자

김호정 문화팀 기자

1999년 3월 28일 피아니스트 프리드리히 굴다는 본인의 부음을 통신사에 보냈다. 취리히 공항에서 팩스를 이용했다. 갑작스러운 죽음에 놀란 음악계는 그가 얼마나 좋은 피아니스트였는지 추모하기 시작했다.

1930년 오스트리아 빈 태생인 굴다는 독일 음악의 전통을 이으면서 재즈에도 뛰어들어 연주와 녹음을 남겼다. 행동은 독특했다. 연주회 곡명을 미리 알려주지 않거나, 권위 있는 상의 수상을 거부했고, 누드로 피아노를 친 적도 있었다.

부음이 가짜라는 건 곧 밝혀졌다. 사람들은 가짜 부음의 이유를 추측하기 시작했다. 그해 4월엔 굴다의 잘츠부르크 공연이 예정돼 있었고 제목이 ‘부활 파티’였다. 숨은 명곡을 발굴한다는 취지였는데 부고 사태 이후 티켓이 매진됐다.

평소 본인을 비평한 미디어 때문이었다는 추측도 나왔다. 그의 기행은 보수적 음악계가 받아들이기 힘든 면이 있었다. 하지만 죽음은 비판할 이유를 지워낸다. 추모 분위기 중에 굴다는 다방면에서 천재성을 발휘한 음악인으로 그려졌다. 살아서 자신의 부고를 본 굴다는 10개월 만에 정말로 세상을 떠났다. 가짜 팩스 내용과 똑같이 심장의 문제였다.

20년 만에 또 한번, 부음이 잘못 전해졌다. 지난달 19일 역시 오스트리아 빈의 피아니스트인 파울 바두라 스코다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트위터를 중심으로 퍼졌다. 그의 아내와 매니저가 부인했는데도 91세의 바두라 스코다를 추모하는 글과 영상은 계속해서 번졌다.

본인이 살아있는데 퍼지는 추모는 묘했다. 사람들은 예술가에게서 받았던 개인적 위로와 감동을 털어놓았고 한 시대가 저물어감을 탄식하기도 했다. 굴다 때와 마찬가지로 바두라 스코다가 살아있다는 공식 확인이 가짜 뉴스를 완전히 덮기 전까지 추모는 계속됐다. 그는 정확히 일주일 후 세상을 떴다.

가짜 뉴스라는 개념도 없던 시대에 위트를 발휘했던 굴다와, 현대의 대중이 뉴스를 받아들이는 경로를 여실히 보여준 바두라 스코다는 한 살 차이였고 20세기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로 늘 함께 꼽혔다. 이제 20년 간격으로 세상을 떠난 이야기마저 한 편의 작품처럼 남았다.

김호정 문화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