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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킨지 “디지털 혁신 도전 기업 70%가 실패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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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컴퍼니의 해리 로빈슨 트랜스포메이션 리더가 최근 서울 중구 한국사무소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컴퍼니의 해리 로빈슨 트랜스포메이션 리더가 최근 서울 중구 한국사무소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LG 구광모 회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그룹 사장단 워크숍에서 “근본적이고 새로운 변화를 위해 실행 속도를 한 차원 높여달라”고 주문했다. 지난해 그룹 총수에 오른 구 회장은 줄곧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디지털 전환)’을 강조해왔다.

해리 로빈슨 혁신 전문가 인터뷰 #과감한 목표 설정 못하고 #직원 참여 못 끌어내면 좌초 #“맥킨지도 시간당 자문료 대신 #성과 연동형 자문료로 혁신 중”

최태원 회장이 SK그룹 과제로 제시한 사업구조의 근본적 혁신 ‘딥체인지(Deep Change)’도 트랜스포메이션을 겨냥한다. 석탄에너지 사업으로 성장해온 SK이노베이션이 전기차 배터리를 만들고, 내수 통신시장 1위인 SK텔레콤이 글로벌 AI(인공지능) 기업의 길을 탐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글로벌 컨설팅업계에서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10년 전 트랜스포메이션 컨설팅을 시작한 맥킨지&컴퍼니는 지난해 이를 전담할 사업부를 따로 만들었다. 국내 한 대기업 요청으로 방한한 해리 로빈슨 맥킨지 트랜스포메이션 리더를 최근 만났다. 그는 “트랜스포메이션하려는 기업의 70%가 대략 네 가지 이유로 실패한다”고 말했다. 또 올해로 창업 93주년인 맥킨지는 데이터분석·디자인 기업들을 인수하거나 자문료를 시간당이 아닌 성과에 연동해 받는 등 변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랜스포메이션과 이노베이션은 뭐가 다른가.
“5~10년 전만 해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기업의 오래된 사업모델에 신기술을 적용하는 걸 의미했다. 하지만 일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은 채 기술만 덧붙이는 이노베이션으로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트랜스포메이션은 조직운영의 모든 과정을 완전히 바꾸고 디지털화한다는 점에서 더 총체적이다. 비즈니스의 핵심기술과 시장 접근방식, 고객과의 관계 등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성공을 판단하는 기준은.
“세 가지 기준이 있다. 우선 경제적 성과, 즉 재무 성과 없이는 성공했다고 하기 어렵다. 또 직원들의 역량이 향상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런 것들이 장기간 지속가능해야 한다.”
성패를 가르는 요소는 뭘까.
“분석해보니 도전하는 기업의 70%는 실패한다. 우선 (CEO가) 과감하고 명확한 목표를 잡지 못할 때 실패한다. 둘째로는 트랜스포메이션을 지속할 정도로 조직이 건강하지 않을 때다. 셋째는 트랜스포메이션에 맞게 경영 목표를 정립하지 못해도 실패한다. 마지막으로 직원들이 참여하고 주도하고 실행해야 하는데 이게 충분히 잘 되지 않을 때다. 이래서 상당수 기업이 ‘파일럿의 함정(pilot trap)’에 빠진다.”
파일럿의 함정이란.
“보통 기업들은 일부 사업부에서 트랜스포메이션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 파일럿 프로젝트가 끝날 때쯤 경영진이 착각한다. 한 번 해본 거로 기업의 트랜스포메이션이 끝났다고 보고 멈춰버린다. 그 수준을 뛰어넘지 못하고 방향을 잃어버리는 상태를 파일럿의 함정이라고 말한다.”

맥킨지 한국사무소에 따르면, 해외보다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 소규모 파일럿 형태로 트랜스포메이션하려는 선호가 더 많다. 유원식 파트너는 “오너의 영향력이 강한 한국의 지배구조에선 CEO에게 주어진 권한이 제한적이다 보니 전사적 혁신을 시도할 경우 부딪힐 반대를 CEO가 많이 걱정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CEO가 설정해야 하는 ‘과감한 목표’가 뭘까. 비용 절감인가.
“혁신을 통한 성장잠재력을 경영진이 잘 모를 때가 많다. 사실, 트랜스포메이션 컨설팅 초반에는 저희도 기업도 ‘비용절감’을 목표로 생각했다. 하지만 수천 건의 사례를 보니, 트랜스포메이션 기회의 60~70%는 ‘매출(top line)’을 키우려는 과정에서 나왔다. 가격 개편, 신제품 출시, 물량 확대 등이다. 매출·이익 증가를 목표로 하면 조직이 더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혁신 과정에서 직원들은 불안해하는데.
“직원의 동기부여 지점, 이들이 어떻게 일하고 싶어하는 지를 분석해야 한다. 우리가 매번 놀라는 것은 ‘직원은 금전적 보상이 아니라, 조직 내에서의 인정과 자부심, 회사의 혁신을 함께 이끌고 있다는 느낌을 원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역량을 혁신에 활용해야 한다.”
트랜스포메이션의 적정 기간이 있나.
“혁신이 끝나는 지점은 없다. 지속 가능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이루는 데 보통 18~24개월이 걸린다고 말할 수는 있겠다. 이때 첫 12개월의 모멘텀이 굉장히 중요하다. 성공 기업은 첫 12개월 안에 목표한 프로그램의 70% 이상을 실행한다. 이들은 그 성공을 기반으로 다시 목표치를 끌어올리곤 한다.”
맥킨지는 자신을 어떻게 혁신하고 있나. (※맥킨지는 1926년 설립)
“제가 입사한 25년 전에는 지금 회사 업무의 50%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수천 명의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일하는 데이터 분석 부문이 맥킨지에 생길 줄은 몰랐다. 가장 실질적인 변화는 우리가 자문료를 받는 방식이다. 이전엔 시간당 자문료를 받았지만 이젠 아니다. 특히 우리 사업부는 고객사인 기업이 트랜스포메이션을 통해 재무적 성과를 내야 자문료를 받는다. 사업부를 설계할 때부터 성과 연동형을 핵심 요소로 넣었다. 맥킨지 내 다른 사업부문으로 확산 중이다. 이렇게 할 때 우리 컨설턴트가 고객사의 입장에서 더 창의적으로 일한다는 걸 알게 됐다.”

박수련 기자 park.sury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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