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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칭] 엄마에게도 보모가 필요해, 툴리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툴리   [넷플릭스]

툴리 [넷플릭스]

[리드무비의 영화서랍] “당신의 첫 번째 기억은 무엇입니까?” 우연히 본 TV 예능프로그램 속 한 출연자가 물었다. 흥미로우면서 왠지 모르게 아련한 질문에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가장 오래된 기억을 더듬었다. 옛 사진첩을 뒤적이듯 삶이란 필름을 역재생하며 기어코 발견한 내 인생의 첫 프레임. 그 장면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엄마였다.

내 생애 첫 번째 기억은 동생을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굉장히 지친 모습으로 병실 침대에 앉아 계시던 엄마의 모습이었다. 기억의 렌즈를 좀 더 당겨 가까이 들여다 본 엄마의 얼굴에는 새 생명 탄생의 환희보단 지난 열 달간의 고단함과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대한 두려움이 더 짙게 서려있었다. 그때는 전혀 알 수 없었던 그 표정의 의미를 그 당시의 엄마 나이만큼 자라서야 뒤늦게 배워가는 요즘. 영화 <툴리>에서 그때 그 엄마의 얼굴을 만났다.

이런 사람에게 추천
현실을 반영한 공감도 높은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믿고 보는 배우’ 샤를리즈 테론의 새로운 연기를 보고 싶다면
육아에 지친 엄마들뿐만 아니라 다소 무신경했던 아빠들 역시 필람!

이런 사람에겐 비추천
TV 육아 예능이 보여주는 환상에서 깨지 않고 싶다면
현실적인 이야기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24시간이 모자라

영화 &lt;툴리&gt;의 한 장면.  [사진 IMDb]

영화 <툴리>의 한 장면. [사진 IMDb]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챙겨줘야 하는 첫째 딸에 정서불안 증세를 보이는 둘째 아들. 여기에 이제 막 태어나 24시간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막내딸까지. 하루 24시간을 온통 육아에 쏟고 있는 엄마 마를로(샤를리즈 테론)는 여유라고는 1도 없는 삶에 점점 지쳐간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돌아온 남편 드류(론 리빙스턴)가 틈틈이 애들 숙제도 봐주고 책도 읽어주며 나름의 아빠 역할을 하지만 새벽마다 깨서 우는 아기에게 젖을 먹이며 다독이는 건 엄마 마를로의 몫. 적당한 시간이 지나면 남편은 직장과 육아로부터 퇴근할 수 있지만 엄마 마를로는 그럴 수 없다.

그런 동생이 안타까웠는지 마를로의 오빠는 야간 보모 고용을 제안하지만 마를로는 야간 보모 시스템이 어딘가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져 망설인다. 이에 오빠는 믿을 만한 사람이 있다며 직접 보모를 추천하고, 그녀는 고민 끝에 오빠가 소개한 야간 보모 툴리(맥켄지 데이비스)를 부른다.

영화 &lt;툴리&gt;의 한 장면.  [사진 IMDb]

영화 <툴리>의 한 장면. [사진 IMDb]

툴리는 첫날부터 매우 자연스럽게 아기를 돌보며 마를로의 걱정을 덜어준다. 그저 새벽 육아에 그칠 줄 알았던 서비스도 기대 이상. 오래 방치한 마루 청소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 준비까지. 마를로가 잠든 사이 툴리가 부린 새벽의 마법은 둘 사이를 더 끈끈하게 만든다. 그렇게 마를로는 툴리 덕에 삶의 활기와 미소를 조금씩 되찾는다.

매일 반복되는 전쟁, 육아

내용과 의미를 짐작할 수 없는 제목에 성의 없게 느껴진 포스터. 영화 <툴리>의 첫인상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고른 이유는 단 하나, 일명 믿고 보는 배우 샤를리즈 테론의 선구안과 연기력을 의심치 않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그 선택은, 옳았다.

영화 &lt;툴리&gt;의 한 장면.  [사진 IMDb]

영화 <툴리>의 한 장면. [사진 IMDb]

영화는 홀로 삼남매를 키우는 엄마 마를로의 일상을 매우 가까이서 들여다본다. 그녀의 하루는 고장 난 알람시계처럼 그날그날 다른 막내딸의 울음소리로 시작된다. 반사적으로 젖을 먹이고 다독이며 아기를 다시 잠재우는 그녀는 정작 당신의 잠은 포기한 채 아침 이슬을 맞는다.

새벽 육아가 잠과의 사투라면 오전 육아는 아이들과의 전쟁이다. 이제 막 말을 배운 아이들은 어디서 단체로 약속이나 한 듯 하나같이 말을 안 듣기 마련. 요란하고 정신없는 등교 준비로 엄마의 진을 빼는 두 남매를 보면 ‘미운 7살’이란 말이 현실임을 새삼 자각한다.

끔찍한 건 이런 하루가 큰 오차 없이 매일 반복된다는 것. 그리고 이 모습이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즉, 마를로가 처한 상황은 영화적으로 특별히 가공된 설정이 아니라 엄마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일상의 장면이라는 얘기. 영화는 그렇게 보통 엄마의 삶을 통해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은 육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영화 &lt;툴리&gt;의 한 장면.  [사진 IMDb]

영화 <툴리>의 한 장면. [사진 IMDb]

엄마에게도 돌봄이 필요하다

공감도 높은 이야기는 실제로 세 아이를 키우는 작가의 경험담과 현실 엄마들의 인터뷰 내용을 통해 완성됐다. 여기에 엄마들의 바람을 담은 캐릭터 툴리가 더해지면서, 육아란 흑백의 그림이 영화 속 대사처럼 색깔을 갖기 시작했다.

툴리가 아기뿐만 아니라 엄마 마를로까지 세심하게 돌보며 그녀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응원하는 장면들은 늘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챙겼던 엄마도 사실은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이 간절한 사람이라는 걸 넌지시 알려준다. 이때 두 인물이 주고받는 대사의 울림도 상당한 편으로 감정선이 매끄럽게 이어지는데 일조한다. 더욱이 이 부분은 결말에 이르러 전혀 다른 감상과 해석을 가져오기에, 행복하면서 슬픈 장면으로 오래 기억된다.

영화 &lt;툴리&gt;의 한 장면.  [사진 IMDb]

영화 <툴리>의 한 장면. [사진 IMDb]

이 작품을 위해 20kg을 증량한 샤를리즈 테론은 단순히 체중만 늘린 것이 아니라 연기의 무게감도 더했다. 서두에 언급한 내 생애 첫 기억 속 엄마의 표정은 샤를리즈 테론이 분한 마를로의 얼굴에서 다시 발견할 수 있었다. 툴리 역의 맥켄지 데이비스 역시 당찬 연기로 존재감을 발휘했다.

글 by 리드무비. 유튜브 영화 채널 리드무비 운영. 과거 영화기자로 활동했으며 영화 팟캐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제목  툴리(Tully, 2018)감독  제이슨 라이트맨출연  샤를리즈 테론, 맥켄지 데이비스
등급  15세 관람가평점  IMDb 7.0 로튼토마토 86% 에디터 꿀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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