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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목줄 쥔 남자…우크라 前 검찰총장 루첸코는 누구?

중앙일보

입력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핵심 인물인 유리 루첸코 전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이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환심을 사려 했으나, 결국 사임을 면치 못하며 트럼프에게 등을 돌리게 됐다는 미국 언론의 보도가 나왔다.

우크라이나 스캔들 핵심 인물 루첸코 #"바이든 혐의 있다"며 트럼프 편 들었지만 #최근 돌연 입장 바꿔 "위법은 없었다" 주장 #포로센코 '낙하산'으로 검찰총장 올라 #측근 수사한 반부패조사국과 마찰도

뉴욕타임스(NYT)는 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핵심 인물인 루첸코 전 총장에 대해 "전문적 법 지식도 없을뿐더러 정치 싸움에 권력을 남용했던 전력이 있는 인물"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사람에게 도움을 받으려고 했다"고 루첸코와 트럼프를 동시에 비판했다.

루첸코는 이번 우크라이나 의혹에 불을 지핀 미국 내부 고발자의 고발장에 핵심 인물로 등장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인 루돌프 줄리아니가 스페인에서 접선했던 인물이 루첸코다.

우크라이나 전 검찰총장 유리 루첸코. [EPA=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 검찰총장 유리 루첸코. [EPA=연합뉴스]

법까지 바꿔가며 검찰총장 올라 

루첸코는 우크라이나 정계에서 오랜 기간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한때 정치범으로 수감 생활을 했던 그는 의원과 내무부 장관으로 정계에서 잔뼈가 굵었다. 그러다 페트로 포로센코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재임 중이던 2016년엔 검찰총장으로 눈을 돌렸다. 우크라이나 법엔 검찰총장 후보가 될 조건으로 '법학 관련 학위가 있어야 한다'고 적시돼있었으나 포로센코 전 대통령은 측근인 루첸코를 위해 의회를 동원, 관련 조항을 삭제시켰다.

검찰총장으로 취임한 뒤 루첸코가 내린 결정도 의혹을 불렀다. 2017년 루첸코는 우크라이나의 반부패조사국을 정면으로 겨냥한다. 이 조사국이 루첸코의 부패 혐의를 수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NYT는 현지 소식통들을 인용해 전했다. 루첸코는 반부패조사국 비밀 요원의 사진을 인터넷에 유포시켰고, 이들이 조사 중이던 이민국의 여권 불법 판매 의혹 조사는 미결로 끝났다. 우크라이나의 전 국방장관인 아나톨리 흐리첸코는 "비밀요원의 정체를 폭로한 것만으로도 감옥에 갈만한 사안"이라고 NYT에 밝혔다.

최근엔 권력 남용 혐의까지 받고 있다. 지난 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당국은 루첸코에 대해 형사 고발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불법 도박에 연루된 정치인 등과 관련해 그가 검찰총장으로서 권력을 남용했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이에 대해 루첸코는 "망상이다"라고 주장했고, 이후 영국으로 출국했다. 영국으로 간 이유에 대해 루첸코는 "영어 실력을 더 키우기 위해서"라고 밝혔다고 NYT는 전했다.

블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개최된 유엔총회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는 모습. 젤렌스키와 트럼프는 이 자리에서 자신들의 통화 내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EPA=연합뉴스]

블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개최된 유엔총회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는 모습. 젤렌스키와 트럼프는 이 자리에서 자신들의 통화 내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EPA=연합뉴스]

루첸코의 변심, 트럼프의 운명 바꿀까 

루첸코와 트럼프는 어떻게 엮이게 된 걸까. NYT는 루첸코와 트럼프가 서로에게 정치적인 도움을 기대하며 인연을 맺었다고 전했다. 루첸코는 자신의 정치적 동지이자 후원자였던 포로센코 전 대통령이 여론조사에서 현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크게 밀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대안을 물색할 필요를 느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적인 바이든 전 부통령과 그 아들의 우크라이나 유착 의혹을 파고들길 원했다. 루첸코의 보신, 트럼프의 정적 제거라는 관심사가 맞아떨어졌다는 게 NYT의 분석이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젤렌스키와의 통화에서 루첸코를 칭찬하며 그를 유임시킬 것을 권유했으나, 루첸코는 8월 끝내 사임했다.

루첸코의 사임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도 오래 가지 못했다. 루첸코가 돌연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불리한 증언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루첸코가 지난달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바이든 전 부통령의 아들 헌터 바이든이 "우크라이나 법의 관점에선 어떠한 위법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바이든이 아들의 비리를 덮기 위해 권력을 남용했다는 트럼프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측 줄리아니 변호사는 NYT에 "루첸코는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다.

루첸코가 돌연 입장을 바꾼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검찰총장직을 내려놓은 뒤 사실상 정치적 '사형 선고'를 받으면서 심경의 변화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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