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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제도는 공정성뿐 아니라 교육적 타당성도 확보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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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대입 제도가 다시 수술대에 올랐다. ‘조국 사태’를 겪으며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공정성에 대한 회의가 한층 깊어졌기 때문이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대입 제도의 근본적 재검토를 주문했으니 어떻게든 대안을 내놓는 건 불가피할 듯싶다. 다만 대입 제도를 당장 대폭 손질하긴 어려울 것이다. 적잖은 사회적 비용을 치르며 2022년 대입 개편 방안을 확정한 게 불과 1년 전 아닌가. 미봉책의 한계 때문인지 2022년 대입 개편 방안에 흡족해하는 국민이 별로 없긴 하다.

암기 치중하는 수능 비중 높여선 #4차 산업혁명시대 인재 양성 요원

지난주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11월까지 ‘대학 입시 공정성 강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당장은 공정성 강화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수긍이 간다. 이젠 그것과는 별개로 대입 제도의 근본적 개혁을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 긴 호흡으로 접근해야 할 대입 제도 개편이 담아내야 하는 사항 몇 가지를 제안하면 이렇다.

먼저 공정성 못지않게 교육적 타당성을 담보하는 대입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누군가의 삶에서 운명적 변곡점이 될 수도 있는 대학 입시에서 공정성을 확보하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공정성만 강조하는 시험은 교육적 타당성이 취약할 공산이 크다. 시빗거리를 남기지 않는 단편적 지식을 측정하는 시험일수록 더욱 그렇다. 객관식 선다형으로 출제되는 현행 수능의 치명적 한계이기도 하다.

수능은 암기 위주 교육의 폐해를 없애고자 도입됐다. 하지만 현재 수능은 암기식 교육을 유발하고 학생들을 줄 세우는 데 유용한 과거의 학력고사로 회귀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절실히 요구되는 창의력이나 비판적 사고능력의 배양을 돕기 어려운 시험인 셈이다. 따라서 대입에서 수능 비중을 확대하려면 서술형 문항을 도입해 수능의 시대 적합성과 교육적 타당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정시 확대가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결과를 피할 수 있다.

수능의 장점이라는 공정성에 대해서도 냉철하게 반추할 필요가 있다. 현재 대입 전형 관련 여론 지형을 살펴보면 학종에 대한 성토 일색이다. 반면 수능 위주 정시 비율을 높이자는 목소리엔 힘이 잔뜩 실렸다. 학종보다는 수능이 훨씬 공정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학종에 비해선 정도가 덜하나 수능 또한 금수저에게 유리한 시험인 건 검증된 사실이다.

출발선에 선 학생들의 조건은 제각각이다. 그런데도 학생들의 다양한 변화와 성장의 과정은 무시한 채 최종 결과만 따지는 수능을 공정한 시험이라 할 수 있을까. 모든 학생이 한날한시에 같은 시험을 치른다는 점에서 기계적 공정성은 담보될지언정 실질적 공정성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 아닌가.

새로운 대입 제도는 모든 학생의 다양한 재능과 잠재력을 발굴하고 계발하는 데도 일조할 수 있어야 한다. 대다수 학생을 들러리로 전락시킨 채 상위 10% 학생 중심으로 돌아가는 학교 교육을 지지하기 위한 대입 제도는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렇게 보면 현행 학교생활기록부, 내신, 수능은 문제점을 대폭 보완하여 핵심 전형요소로 존치하는 게 바람직하다. 여건이 무르익으면 대학별 고사도 허용해야 한다. 대학은 이런 전형요소들을 적절히 조합하여 자율적으로 학생을 선발하면 된다.

끝으로 새로운 대입 제도는 우리 교육 전반에 변화를 가져오는 교육개혁의 기폭제이자 완결판이어야 한다. 대입 제도는 복잡계적 속성을 지닌다. 연관된 다른 교육 제도는 그대로 둔 채 대입 제도만 손을 봐선 안착이 쉽지 않다. 대입 제도 개편을 졸속으로 추진해선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새로운 대입 제도가 내신 성취평가제, 고교학점제, 수능 절대평가제 등과 조화롭게 맞물려 기능하도록 사전에 충분한 정지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