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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OECD 자살률 1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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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송인한 하버드대 객원과학자 연세대 사회복지학 교수

송인한 하버드대 객원과학자 연세대 사회복지학 교수

지난 24일 발표된 2018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에 복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3년 이후 OECD 1위를 지속했던 우리나라 자살률이 지난해 2위로 내려간 것은 우리보다 자살률이 높았던 리투아니아가 지난해 OECD에 가입했기 때문이었다. 국가 간 비교를 위해 연령 표준화된 최근 통계를 볼 때 리투아니아의 자살률(2017)은 전해보다 2.3 감소해 인구 10만 명당 24.4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24.7(비표준화 26.6)로 증가해 올해 순위가 바뀐 것이다.

국가적 노력에도 자살률 높아져 #예방정책 실효성 있게 실행해야

2018년 자살 사망자는 전년 대비 9.7% 증가한 1만3670명으로,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6.6명으로 9.5% 상승했다. 가장 큰 문제였던 노인 자살은 80대 이상에서 감소하는 등 노인 자살 예방 사업 효과가 있었다고 보이나, 그 외 전 연령에서 자살이 증가하였고 특히 10대에서 22.1% 상승한 것이 충격적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10~30대 사망 원인 1위가 사고사인데 우리의 경우 자살인 것도 특징이다. 높은 여성 자살률도 발견된다. 여성 자살률이 인구 10만 명당 10명을 넘는 나라가 없으나 우리나라만 15명에 육박할 만큼 심각한 실정이다.

우리 자살률이 원래부터 높은 것은 아니었다. 90년대 초반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낮은 나라 중 하나였으나 90년대 후반부터 경제 위기가 촉발한 사회문화적 변화, 의료와 복지 사회안전망 미비 등으로 급격하게 치솟아 2003년부터 OECD에서 가장 높아졌고 2011년에는 최고점(31.7)에 이르기도 했다.

그 이후 다양한 범국가적 노력이 시작되어 2011년 자살 예방 및 생명 존중 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 제정, 2018년 정부 국정 운영 100대 과제 포함, 보건복지부 자살예방정책과 설립 등이 이뤄져 왔다. 예산도 2011년 연 14억원에 불과했던 것이 2020년 정부안 289억원으로 증가하였다. 문제는 정책을 실효성 있는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데 있다.

첫째, 전문 인력 확충이 시급하다. 중앙부처에 전담 부서가 생겼으나 실제로 사업을 맡아야 하는 광역·지자체 단위에서는 전담 인력은 거의 전무하며 기타 정신건강 업무와 겸하는 실정이다. 둘째, 통합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의료와 복지 현장에서 자살 고위험군을 발견하고 적정 서비스로 연계하는 제도의 마련이 시급하다. 응급실과 1차 의료기관에서 자살 시도자 및 고위험군을 정신건강 서비스로 연계하는 사후 관리, 자살 유가족을 위한 보건복지 통합서비스 등도 보완되어야 한다.

셋째, 과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콘트롤타워 기능을 맡는 중앙자살예방센터와 자살자 전수 조사를 하는중앙심리부검센터가 실효성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는 제도·인력·예산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통계청이 구축할 국가 자살 동향감시체계가 실시간 동향을 파악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있다. 끝으로 자살률 1위를 수치나 오명으로 부르지 말 것을 당부드린다. 이 말에 들어있는 편견과 낙인이 유가족을 힘들게 만들고 정신의학적 치료에 걸림돌이 되며 자살 문제에 정확하게 접근하는 것을 방해한다.

다시 OECD 자살률 1위가 된 것을 계기로 생명의 소중함과 지속적 자살 예방의 노력이 필요함을 재확인한다. 자살률과 출산율은 각각 현재와 미래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살만한 곳인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숫자다. 특히 자살률은 국민 정신건강과 의료 접근성의 현황, 경제 상황과 사회안전망의 수준뿐 아니라 공동체 결속과 사회적 신뢰·포용의 깊이, 스트레스·차별·불평등의 심각성, 생명의 무게와 미래 희망의 밝기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모습을 반영한다. 자살률은 마치 온도계처럼 우리 사회의 상태를 드러내는 것이다. 온도계에 입김을 불어 임시방편으로 온도를 올리는 방법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세상의 온도를 높여야 한다.

송인한 하버드대 객원과학자·연세대 사회복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