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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아베정권 영화 탄압 거세졌다"

중앙일보

입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6일 부산 해운대구 신라스테이에서 본지와 인터뷰 하고 있다. 부산=송봉근 기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6일 부산 해운대구 신라스테이에서 본지와 인터뷰 하고 있다. 부산=송봉근 기자

“일본에서 (영화에 대한) 정부의 정치적 압력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습니다. 방송은 이미 정부권력에 조종당해 원래의 기능을 잃고 있습니다. 영화 역시 제작 보조금 정책을 규제해 정부 비판적인 영화가 제작되기 어렵게 하려는 경향이 보입니다. 그럴수록 저는 우리 영화의 독립을 위해 맞서려 합니다. 영화를 만들기 힘들어진다 해도 싸울 것입니다.”

 세계적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57) 감독이 자국 일본의 우경화 현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새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을 들고 찾은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다.

신작 ‘파비안느...’로 부산국제영화제 초청 #한일정세 속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 #신작은 처음 일본 벗어나 프랑스서 올로케 #스타 줄리엣 비노쉬?카트린 드뇌브 모녀 연기 #“10년전 배두나와 먼저 언어 넘어 영화 협업”

"정부 탄압에 맞서는 법, 한국 영화인에 배우겠다" 

개막 나흘째인 6일 해운대 호텔에서 본지와 만난 그는 5년 전 부산영화제가 세월호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을 두고 정치적 탄압을 받은 것을 돌이키며 아베 정권에 맞선 저항의 방법을 “당시 영화제를 지켜낸 한국 영화인들에게 배울 것”이라고 했다.

“부산영화제가 개최에 어려움을 겪을 때 저도 전 세계 영화인들과 함께 미력하게나마 연대의 목소리를 냈다”면서 “이후 정권이 바뀌고 문재인 대통령이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겠다’는 명쾌한 선언을 하며 영화제가 정상화에 이르렀다. 일본은 지금 이런 기본적인 전제조차 돼 있지 않다”고 토로했다.

5일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을 수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오른쪽). 이날 그의 새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상영과 함께 열린 시상식엔 맨 왼쪽부터 이용관 이사장, 전양준 집행위원장이 함께했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5일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을 수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오른쪽). 이날 그의 새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상영과 함께 열린 시상식엔 맨 왼쪽부터 이용관 이사장, 전양준 집행위원장이 함께했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한일관계 악화 속 영화제 참석한 이유 

그러면서 “영화의 힘을 믿는다”고 강조했다. 한일관계가 악화한 상황에서도 그가 이번 영화제에 참석한 이유다. 지난해 좀도둑 가족의 비극을 통해 일본사회의 그늘을 짚어낸 영화 ‘어느 가족’으로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그에게 올해 부산영화제는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여했다. 5일 시상식에 앞선 기자회견에서 그는 최근의 한일 정세 속에 참석이 어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해외 영화인들과 교류하다 보면 평소 내가 소속된 국가보다 훨씬 크고 풍요로운 영화라는 공동체 안에 있다는 걸 실감합니다. ‘민족주의’와 전혀 무관한 지점에서 영화를 통해 가치관을 공유하고 연대할 수 있는 경지를 느꼈을 때 정말 행복하고, 인간으로서도 성장하게 되죠. 그런 영화의 힘을 믿는 사람들이 저를 포함해 지금 이 자리에 와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어 수상 소감에선 “한국영화 100주년에 의미 있는 상을 받아 더욱 기쁘다”면서 “저 역시도 많은 대립이나 간극을 넘어 서로를 이어줄 수 있는 그런 영화를 만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줄리엣 비노쉬가 프랑스서 협업 제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프랑스에서 촬영한 새 영화 '파비엔느에 관한 진실'. 왼쪽 두 번째부터 프랑스 스타 배우 줄리엣 비노쉬와 카트린 드뇌브가 모녀로 호흡을 맞췄다. [사진 티캐스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프랑스에서 촬영한 새 영화 '파비엔느에 관한 진실'. 왼쪽 두 번째부터 프랑스 스타 배우 줄리엣 비노쉬와 카트린 드뇌브가 모녀로 호흡을 맞췄다. [사진 티캐스트]

지난달 베니스국제영화제 개막작 상영에 이어 부산에서 아시아 최초로 공개된 신작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이 어쩌면 그 첫걸음이다. 1996년 1회 부산영화제에도 초청됐던 극영화 데뷔작 ‘환상의 빛’ 이래 열네 번째 장편이자, 그가 처음으로 일본을 벗어나 찍은 영화다. 10년 넘게 친분을 쌓아온 프랑스 배우 줄리엣 비노쉬의 제안으로 비노쉬와 프랑스 영화사의 산 역사 카트린 드뇌브가 주연을 맡아 그가 프랑스에서 촬영했다.
주인공은 새 연인과 전남편, 매니저 사이에서 여왕처럼 군림하던 프랑스 스타 파비안느(카트린 드뇌브). 거짓과 허구를 뒤섞은 자서전을 갓 펴낸 그는, 미국에서 작가 일을 하는 딸 뤼미에르(줄리엣 비노쉬)가 일주일여 고향 집에 찾아온 걸 계기로 자신의 진짜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할리우드 배우 에단 호크가 뤼미에르의 남편이자 미국 B급 배우 행크 역으로 함께했다.

"언어 넘어선 소통은 10년 전 배두나와 먼저 경험했죠" 

모녀가 화해하는 과정이 주가 된다는 점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특유의 가족영화 분위기가 가득하다. 연기란 무엇인가, 허구와 진실은 어떤 관계인지 등 오랫동안 영화를 찍어오며 느낀 여러 철학도 대사와 장면을 통해 녹여냈다.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딸 뤼미에르 역 배우 줄리엣 비노쉬가 10여년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친분을 쌓으며 먼저 협업을 제안한 것을 계기로 성사됐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딸 뤼미에르 역 배우 줄리엣 비노쉬가 10여년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친분을 쌓으며 먼저 협업을 제안한 것을 계기로 성사됐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그는 “10년 전 배두나 배우와 영화 ‘공기인형’을 찍을 때도 느꼈지만, 촬영을 거듭하다 보면 현장에서도 언어를 뛰어넘어 서로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것이 영화의 재미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예매 시작과 동시에 좌석이 순식간이 매진됐을 만큼 올해 부산에서 가장 뜨거운 화제작에 등극했다. 이달 일본 개봉에 이어 한국에선 12월 개봉한다.

"1회 부산영화제 땐 상영 중 필름 불탔죠" 

1996년 1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됐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데뷔작 '환상의 빛'. [사진 씨네룩스]

1996년 1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됐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데뷔작 '환상의 빛'. [사진 씨네룩스]

“23년 전 왔던 1회 부산영화제에선 제 영화(‘환상의 빛’) 상영 중에 필름이 갑자기 불타버렸어요(웃음). 저와 데뷔 이래 줄곧 같은 세월을 걸어온 영화제죠. 지금처럼 성숙한 영화제는 아니었지만, 당시 모든 스태프가 새로운 활기로 가득했습니다.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걸 감사하고 귀중한 행운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신작을 들고 부산영화제를 찾아온 그의 말이다.
“요즘 들어 명예로운 수상 기회가 부쩍 늘었습니다. 슬슬 경력의 마무리 단계라고 바라보시는 건 아닌가, 불안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카트린 드뇌브씨에 비하면 저는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죠. 지금껏 걸어온 25년보다 더욱더 긴 길을 관객과 함께 걸어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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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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