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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이었다"면 처벌 못해?···리벤지 포르노에 뿔난 영국인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영국 정부가 리벤지 포르노 유포자를 형사 처벌할 수 있도록 현행법을 재검토하기로 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리벤지 포르노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 없고 기소율도 낮아 #英 정부 "현행법 재검토 해야" #美 뉴욕주는 피해자에 '삭제권' 보장

가디언은 지난달 22일 "탈출구 없는 리벤지 포르노 피해자의 삶"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리벤지 포르노와 관련한 법을 재검토하기로 한 정부의 최근 결정은 현존하는 법 조항으로는 빠르게 진화하는 범죄에 대응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데 따른 것"이라고 전했다.

스코틀랜드 정부가 배포한 '리벤지 포르노' 방지법 홍보 포스터. [출처=BBC 온라인]

스코틀랜드 정부가 배포한 '리벤지 포르노' 방지법 홍보 포스터. [출처=BBC 온라인]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에서 동의 없이 성적인 영상이나 이미지를 배포하는 행위는 여전히 '성범죄'가 아닌 초상권 침해 등으로 분류돼 기소율이 극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디언은 현행법의 구멍에 대해 "성범죄임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유포자가 이미지를 유포함으로써 피해자에게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려는 명백한 의도'가 있었음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하며, 따라서 "가벼운 장난으로 여겼다"고 주장하면 처벌을 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또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포르노에 일반인의 얼굴을 합성해 유포하는 행위는 초상권 침해나 명예훼손으로도 처벌할 수 없다.

영국 경찰에 신고된 리벤지 포르노 피해 건수는 2015년 이후 4년간 2배 이상 늘었지만, 신고 자체를 꺼리는 피해자도 다수 있어 피해 규모를 정확히 추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영국에서는 리벤지 포르노를 불법화하려는 입법 노력과 함께 포르노 사이트 운영자에 대한 규제책도 논의되고 있다.

리벤지 포르노 피해를 겪은 뒤 자신과 같은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웹사이트를 만든 영국의 미카일라 몬순(23)이 BBC 방송과 인터뷰하는 모습. [BBC 캡처]

리벤지 포르노 피해를 겪은 뒤 자신과 같은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웹사이트를 만든 영국의 미카일라 몬순(23)이 BBC 방송과 인터뷰하는 모습. [BBC 캡처]

가디언은 리벤지 포르노 피해를 겪은 뒤 여러 차례 심한 우울증을 이겨내고 ‘리벤지 포르노를 리벤지(복수)하라’는 뜻의 피해자 지원 웹사이트 리벤지 온 리벤지 포르노 닷컴(revengeonrrevengeporn.com)을 설립한 미카일라 몬순(23)의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몬순은 자신의 웹사이트를 통해 포르노 사이트 운영자가 영상을 등록하기 전에 영상 속 인물들에게 게시 동의를 받도록 의무화하는 법 개정 청원 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도 주 정부를 중심으로 사이버 성범죄를 형사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뉴욕타임즈(NYT)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뉴욕주는 지난달 21일부터 리벤지 포르노 유포자 등 사이버 성범죄자에 최대 징역 1년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효했다. 뉴욕주의 법안은 유포자에 대한 처벌 뿐 아니라 법원이 웹사이트 운영자에 '영상 게시 금지'를 명령할 수 있게 하는 등 피해자 구제 방안을 법제화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뉴욕주에서는 그동안 사이버 성범죄를 처벌할 수 있는 법 조항이 없어 형사 기소가 기각돼 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는 지난 2004년 뉴저지를 시작으로 최근 뉴욕주에 이르기까지 총 45개 주가 점진적으로 사이버 성범죄를 처벌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NYT는 미국 싱크탱크인 데이터 앤 소사이어티 리서치를 인용해 미국 내에만 1000만명에 가까운 리벤지 포르노 피해자가 있다고 보도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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