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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돈 받았냐” 장기기증 모욕한 네티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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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정종훈 복지행정팀 기자

정종훈 복지행정팀 기자

‘가족이 장기기증 결정한 것이지 본인 선행은 전혀 없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수술대 올라가 장기 빼가는 거 생각하면 무섭다’….

지난달 21일 심장·간·신장 등을 7명에게 기증하고 하늘로 떠난 중학교 3학년 임헌태(15)군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검사가 돼서 착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던 임군은 불의의 사고로 뇌사(腦死) 판정을 받은 뒤 가족들과 이별했다. 많은 사람이 ‘명복을 빈다’는 등 임군의 숭고한 희생에 공감을 표했다. 하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달랐다. 이들은 장기기증에 나선 가족들이 대단할 뿐 기증자 본인 역할은 없다고 깎아내렸다. 기증 자체를 끔찍하다고 보는 시각도 꽤 있었다.

하지만 뇌사자 장기기증 결정은 엄격한 절차에 따라 이뤄진다. 부모·자녀·배우자 등 가족 동의 하에 의료진의 최종 뇌사 판정이 나와야 비로소 기증이 시작된다. 생전에 기증자가 장기기증 희망 서약을 했더라도 재차 가족 동의를 받아야 한다. 기증자 가족도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만큼 짧은 시간에 엄청난 고민을 한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접고 어려운 결정에 나섰더라도 마음의 짐은 평생 갈 수밖에 없다.

가족이 기증을 결정할 때 뇌사에 빠진 자녀의 평소 뜻과 품성을 존중한다. 아들을 먼저 보낸 임군의 아버지는 “평소 착했던 아들 헌태가 착한 일 하고 가자는 생각에 장기기증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돈 받고 기증했냐’는 식의 날선 댓글, 주변 사람들의 부주의는 가슴을 후벼판다. 2015년 아들의 장기기증을 결정한 이봉화(60)씨는 “기증한 가족들은 사고 났을 때 한번 상처를 받고 기증 후 기사 댓글을 보면 두 번째 고통을 겪는다. 선의로 기증을 결정했기에 수혜자들이 행복하기만 비는데 악성 댓글을 볼 때마다 서운하다”고 했다.

장기기증은 최고의 희생이자 사랑이다. 아직도 그렇게 여기지 않는 일부 시선이 안타깝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1일 공개한 국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뇌사자 장기기증은 449명에 그쳤다. 가뜩이나 선진국보다 부족한 상황에서 4년 만에 500명 선이 무너졌다. 지난해 질병관리본부의 생명 나눔 인식조사에선 장기기증 의향이 없는 이유로 ‘인체 훼손 거부감’(33%), ‘막연한 두려움’(30.4%)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장기기증 희망자와 가족의 기증 동의율은 해마다 떨어진다. 이런 분위기라면 잠재적 기증자들이 더 망설이지 않을까 우려된다.

피해는 결국 환자 몫이다. 남 의원에 따르면 장기이식 대기자는 2015년 2만7444명에서 올해 6월 3만8977명으로 크게 늘었다. 이식을 기다리다 숨진 환자도 2015년 1811명에서 지난해 2742명으로 증가했다. 주변의 가족·친구가 언제든지 이렇게 될 수도 있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관계자는 “국민이 장기기증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는데 금연, 자살과 달리 TV 공익광고는 한 번도 나간 적이 없다. 정부에서 민간단체들에 대국민 교육·홍보를 의존하는 형태라 전국 단위 캠페인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개인의 ‘선의’에만 기대기보단 꾸준하게 알리고 교육하며, 제도를 개선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제2, 제3의 헌태가 나와 많은 이들에게 새 생명을 선물할 수 있다.

정종훈 복지행정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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