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질 난다" 혹평 받은 베르디 최고의 오페라

중앙일보

입력 2019.10.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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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교향악의 선율에 귀기울이곤 한다. 때론 그 음악을 기억했다가 시간을 내 다시 듣기도 한다. 음악이 함께하는 삶은 아름답다. 음악평론가가 선곡한 명곡과 그 곡에 얽힌 이야기를 담았다. 느리게, 여유있게 클래식 속으로 들어가 보자. <편집자>

영화 &#39;라 트라비아타&#39; 스틸.

영화 &#39;라 트라비아타&#39; 스틸.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고급 매춘부와 순수한 청년의 사랑을 담은 작품이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고급 매춘부의 삶을 살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여주인공이 가련하다. 이 오페라의 원작은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소설 『동백아가씨』다. 이 소설은 실제로 겪었던 사랑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작품으로 지금도 많은 사람이 즐겨 보는 걸작이다.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는 소설 『삼총사』를 쓴 프랑스의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사생아다. 아버지는 매정하게도 사생아에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이름을 갖게 됐다. 아들은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피스는 ‘아들’이라는 뜻이다)라는 명칭으로 아버지와 구분됐다. 아들은 법적으로 자손으로 인정받기는 했으나 거의 10살이 될 때까지 문맹이었으며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했다. 이처럼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불우한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았으며 성장해서는 아버지처럼 소설가가 됐다. 사생아였지만 아버지의 재능은 물려받은 것이다.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 [사진 Wikimedia Commons]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 [사진 Wikimedia Commons]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는 자신의 경험들을 작품 속에 담곤 했다. 사생아로서의 경험이나 불행한 미혼모에 대한 묘사 등이 그의 작품 속에서 나타났다. 그런 면에서 보면 소설 『동백아가씨』는 그의 가치관과 경험이 낳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소설이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원작이 된다. 소설은 1848년에 출판됐다.

소설에서는 마르그리트 고티에라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그는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동백꽃을 들고 나타나는 고급 매춘부다. 한 달의 25일간은 흰 동백꽃, 나머지 5일간은 빨간 동백꽃을 들고 나타나는 사교계의 명사다. 실제로 존재했던 마리 뒤플르씨스(1824~1847)라는 여인이 모델이다. 마리 뒤플르씨스는 실제로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와 만나 열렬하게 사랑을 나눴던 여인이다. 파리의 서쪽 노르망디 지방에서 가난하게 태어난 여성이었으며, 후에 파리로 올라와 호색적인 귀족들과 부유한 한량들을 상대로 부나비 같은 인생을 살았다.

마리 뒤플르씨스는 파리의 밤 문화에서 화려한 생활을 했지만, 실제로는 남자들의 노리개에 불과했다. 그는 귀족들과 부유층을 상대하기 위해 수준급의 교양을 쌓았으며, 그를 만나본 사람들은 그의 외모와 재치 있는 말솜씨에 반했다고 한다. 화려한 밤 문화에서 인기를 누렸지만 2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주세페 베르디의 초상화, 조반니 볼디니 그림, 1886년 (National Gallery of Modern Art, 로마). [사진 Wikimedia Commons]

주세페 베르디의 초상화, 조반니 볼디니 그림, 1886년 (National Gallery of Modern Art, 로마). [사진 Wikimedia Commons]

작곡가 베르디는 소설 『동백아가씨』가 발표됐을 때 파리에 살고 있었다. 이때는 그의 두 번째 부인이 된 주세피나 스트레포니와 나름대로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베르디는 베니스 시로부터 카니발 때 공연할 새로운 오페라를 작곡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며 이 때문에 오페라의 새로운 소재를 찾고 있었다. 베니스 시는 행사의 하이라이트로 베르디의 새로운 오페라를 부각할 계획이었다.

베니스 시를 위한 오페라는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베르디는 십 개월 동안이나 작품을 구상해 보았으나 마땅한 소재와 내용을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소설 ‘동백아가씨’를 읽고 감명을 받았다. 작곡가는 여주인공의 애달프면서도 짧은 생애에 연민을 느꼈으며 그녀의 삶을 애잔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사랑의 감정을 정화하는 오페라가 시작된 것이다.

2016년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된 오페라 &#39;라 트라비아타&#39;. [사진 세종문화회관]

2016년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된 오페라 &#39;라 트라비아타&#39;. [사진 세종문화회관]

이제 새로운 오페라로 만들기로 한 베르디는 자신의 콤비인 프란치스코 마리아 피아베에게 대본을 맡겼다. 베르디와 피아베는 상 아가타에 있는 베르디의 농장에서 함께 작업을 진행해 약 3개월 만에 오페라가 완성됐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불치병에 걸린 고급 매춘부와 순수한 청년의 순애보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오페라는 특유의 사실주의적 접근으로도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는데 작품의 소재와 줄거리가 세인들에게 호감을 준 것만은 아니었다. 이 작품에 대해 어떤 성직자들은 규탄의 설교를 했으며 ‘더 타임스’에선 ‘구역질나고 소름끼치는 공포’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그렇지만 규탄의 소리가 역으로 광고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 오페라에 열광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작품의 진가는 더욱 빛을 발했다. 베르디의 오페라 중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라 트라비아타‘는 이렇게 세상에 태어났다. 지금도 세계의 오페라 무대에서는 여주인공 비올레타가 가련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이석렬 음악평론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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