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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만에 또 '두개의 광장'···文 뛰어들자 격해진 길거리 전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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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다시 두 개의 광장이 작동하고 있다.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 이후 흩어졌던 ‘촛불’과 ‘태극기’ 진영이 2년 반 만에 거리에서 맞붙기 시작했다. 지난달 2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자유한국당의 장외투쟁에 수만 명이 몰리면서 점화된 거리의 정치는 지난 28일 열린 ‘검찰 개혁 촛불문화제’(사법적폐청산 범국민시민연대 주최)를 거치며 달아오르고 있다. 민주당은 이 집회 참석 인원을 “200만 명”(이재정 대변인)이라고 주장한다. 같은 날 부산·대구·울산 그리고 경남 창원 등지에서 '조국 파면' 촉구 집회를 연 자유한국당과 보수진영은 10월 3일 서울 광화문 광장으로 예고된 ‘범국민투쟁대회’에 총력을 쏟을 계획이다.

“여야 모두 장외서 해결하려 해 #남은 건 의회정치 실종 악순환”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서초역 사거리~누에다리 구간)에서 열린 검찰개혁·사법적폐 청산 집회(왼쪽)와 같은 날 오후 대구 동구 동대구역 광장에서 열린 ‘조국 법무부 장관 파면 촉구 대구·경북 합동집회’. [뉴스1]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서초역 사거리~누에다리 구간)에서 열린 검찰개혁·사법적폐 청산 집회(왼쪽)와 같은 날 오후 대구 동구 동대구역 광장에서 열린 ‘조국 법무부 장관 파면 촉구 대구·경북 합동집회’. [뉴스1]

 29일 더불어민주당은 ‘촛불’의 흐름을 좇기에 바빴다. 전날 집회 현장에는 이종걸(5선)·안민석(4선)·민병두(3선)·박홍근·윤후덕·이학영(이상 재선) 등 7~8명의 소속 의원들이 개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현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윤석열 퇴진”을 외친 것은 이종걸 의원뿐이었지만 다른 의원들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검찰개혁을 완수해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감을 이를 악물며 새기는 순간”(박홍근),“검찰개혁은 또 하나의 시민혁명”(이학영),“다음 주에는 세상이 바뀔 정도로 많은 시민이 모일 것”(민병두) 등의 글이 페이스북에 올랐고 안민석 의원은 “촛불 시즌 2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집회 현장에 가지 않았던 이인영 원내대표는 “10만 개의 촛불이 켜진다고 전했던 저의 말이 많이 부족했음을 사과드립니다. 국민의 뜻은 훨씬 더 단호하고 분명하셨습니다”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남겼다.

 자신들의 예상을 넘는 인파가 집결하게 된 계기를 민주당은 지난 22일 조국 법무부 장관 자택 압수수색과 문재인 대통령의 “검찰의 성찰” 주문과 검찰의 반박 등에서 찾고 있다. 익명을 원한 여권 핵심관계자는 “조 장관 임명에 비판적이던 시민들도 집회에 대거 참가했다”며 “조 장관이 무너지면 대통령이 위험하다는 문 대통령의 열성 지지자들의 위기의식에 압수수색 이후 확산된 ‘검찰이 너무한다’는 여론이 더해진 결과”라고 해석했다.

 민주당은 당 차원에서 촛불집회에 결합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조국 수호, 검찰 개혁’을 주장해 왔던 지도부의 목소리는 한층 강경해질 전망이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검찰개혁을 위한 국회의 시간이 앞당겨지고 있음을 직감한다. 주저없이 임하겠다”라는 말을 썼다. 28일 집회 전까지만 민주당 내에는 조 장관 부인 정경심씨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를 분기점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결단해야 한다는 ‘탈(脫)조국’ 주장이 존재했지만 쑥 들어갔다. 한때 조국 정국 출구전략을 고민했던 한 의원은 “검찰개혁을 찬성하더라도 조 장관 임명에는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제 하나가 됐다”며 “더 이상 조 장관의 거취를 논하기도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또 한 번의 충돌을 예상되는 이인영 더불어민주당·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뉴스1]

또 한 번의 충돌을 예상되는 이인영 더불어민주당·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뉴스1]

자유한국당은 촛불 집회의 파장을 축소하는 한편 거리에서의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이날 서초구청장 출신인 박성중 자유한국당 의원은 “시위 참가자는 많아야 5만 명”이라고 지적했다. 이만희 원내대변인은 “민주당은 조국 비호 집회의 숫자까지 터무니없이 부풀리며 국민의 뜻 운운한다”며 “같은 반포대로에서 열린 서리풀 축제 관람객을 감안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원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측근은 “청와대의 지시 아래 여권이 일사불란하게 장외집회를 동원했기 때문에 야당 입장에서도 무언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10월 3일 장외집회에 총력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원외 인사인 황 대표는 스스로 시작한 장외투쟁에서 성과를 올리면 대권 후보 이미지를 확고히 하겠지만 물러나면 ‘조국 퇴진’으로 결집한 지지층의 분노를 뒤집어쓸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광장’은 대개 선명성을 요구한다. 여든 야든 타협보단 투쟁을 요구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이미 그런 조짐이 보인다. 여권의 한 핵심관계자는 “공수처 설치법 등 검찰개혁법안의 상임위 처리 시한이 임박했다”며 “타협 없는 입법에 성공하라는 게 촛불의 주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은 “대통령이 앞장서 검찰을 흔들어대는 모습은 여권이 주장하는 검찰개혁이 얼마나 진정성 없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조국발 검찰개혁은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여야가 다 장외에서 뭔가를 보여줘야겠다고 하는 상황에서 남은 건 의회 정치 실종의 악순환이 심화되는 것 뿐”이라며 “선거를 앞둔 시점이어서 더욱 그렇고 거리 민심에 맞서 타협을 이끌 여야의 리더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고 말했다.

 임장혁·하준호·성지원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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