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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친구와 끈끈해지는 기쁨, 당구 아니었으면 가능했을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인근의 당구오디세이(15)

K군과 나는 대학 동창이지만 알게 된 지는 얼마 안 됐다. 학교를 함께 다닌 적은 없었는데 이제라도 알게 되었으니 인연이라 할 수 있겠다. [사진 pxhere]

K군과 나는 대학 동창이지만 알게 된 지는 얼마 안 됐다. 학교를 함께 다닌 적은 없었는데 이제라도 알게 되었으니 인연이라 할 수 있겠다. [사진 pxhere]

K 군은 나와 대학 동창인데 서로 알게 된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나는 대학을 마치고 군대 갔다가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K 군은 1학년을 마치고 군대 다녀와서 복학하고 나서 우리 과로 전과한 경우이다. 이렇다 보니 평생 모르고 지낼 수도 있었고 또한 더 이상의 새로운 만남이 쉽지 않은 은퇴 후에 알게 된 친구이니 소중한 인연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비록 각별한 만남이었다 하더라도 환갑을 넘긴 나이에 만난 나와 K 군의 관계가 돈독해지기가 쉽지 않은데 우리 사이를 끈끈하게 강화해준 연결 고리가 바로 당구였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나름대로 고수의 위치를 견지하고 있던 나에게 K의 출현은 다름 아닌 새로운 강자의 도전으로서 평온한 무림에 팽팽한 긴장감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K 군은 사실 4구의 강자였으며, 4구의 경우 나는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이러한 점을 알아차린 나는 3구를 제안했으며 3구를 많이 쳐보지 않았던 K 군과 이제 겨우 아슬아슬하게 승부를 겨뤄가고 있다.

내게 K 군을 연결해준 J 군의 말로는 대학 복학생 시절 만난 친구 중에서 당구, 바둑 둘 다 자기보다 하수였는데 두 종목 다 자기를 넘어선 유일한 양반이 K이라고 한다. 당구를 칠 때 보면 K 군은 집중력, 승부욕, 포기를 모르는 투지 등등 그야말로 승부사적 기질이 다분하다.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는 쉽게 대충 치는 편인데 나 또한 포기는 하지 않는다. 다만 그 포기를 하지 않는 이유가 단순히 내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서 포기를 하지 않을 뿐 투지로 이어지는 경우가 없으니, 결과는 항상 낙관론자의 실패로 귀결된다. 나의 이런 점을 잘 모르는 친구들은 나의 당구가 늘 긴장하지 않고 부드럽고 유연하다고 하니 실속은 없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다.

K 군과 자주 어울려 일 합을 겨룬 후에는 소주를 곁들인 저녁을 하면서 당구 얘기 뿐 아니라 인생 얘기를 하며 서로를 알아 가고 있다. K 군도 나와 같은 강원도 출신이다. 양양, 간성, 양구를 거치며 잔뼈가 굵었고 고등학교는 춘천에 올라와 명문고에 상위 입학을 하였다. 허우대도 좋아서 초등학교 때는 배구 선수도 했다는데 어쨌든 키 작은 나보다 머리통 하나 더 붙어 있다. 심지어 족대 질을 잘 하여 한 번은 몸을 날려 팔뚝만 한 잉어를 족대로 잡았다고도 한다.

여름에는 친구들과 계곡에 갔다왔다. 사진은 강원도 홍천의 인제 미산계곡. [중앙포토]

여름에는 친구들과 계곡에 갔다왔다. 사진은 강원도 홍천의 인제 미산계곡. [중앙포토]

이번 여름에는 K를 포함한 친구들과 강원도 계곡에 가서 천렵을 즐겼는데 내가 K에게 잉어 잡던 족대 솜씨를 보여 달라고 성화했더니 비록 팔뚝만 한 잉어는 아니었지만 여러 잡고기를 잡아 와서 매운탕을 끓여 먹으며 즐거운 한 때를 같이 할 수 있었다.

K 군의 인생 약력은 이러하다. 소싯적 시골에서 수재 소리를 들으며 집안의 기대를 받으며 자랐고 서울에 있는 대학까지 다니게 된다. 졸업 후 처음에는 직장 생활을 하다가 이러 저러한 이유로 뛰쳐나와 사업을 시작한다. K 군은 회사를 세 번 차렸는데 세 번 모두 접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주의로부터 많은 기대를 받고, 대학을 나오고, 자신 있게 시작한 사업들이 몇 번이나 실패했을 때 그는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을지,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 있다. 그런 후에 K 군은 소위 잠수를 타면서 주변 사람들과의 연락을 오랫동안 끊었다가 얼마 전부터 조금씩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한 것이다.

K 군은 분명 오랜 질곡의 시간을 버텨왔을 터인데도 꿋꿋하고 곧다. 자기 형편이 시원치 않음에도 더 힘들어 보이는 친구에 대한 배려가 세심하다.
술을 마셔도 흐트러지지 않고 즐겁게 마실 줄 안다. 많이 힘들었을 것이고 현재도 만족스러울 리 없는데도 세상을 탓하지도, 남을 탓하지도, 자신을 탓하지도 않는다.

나는 K 군이 남들 못지않은 총명함과 열정 그리고 투지를 가지고 시작한 사업들이 어떻게 세 번이나 망하게 되었는지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적어도 K 군은 최선을 다했을 것이고 결과가 좋지 않았더라도 자신에게 부끄럽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K 군은 당구를 칠 때도 최선을 다한다. 나는 당구 칠 때 그다지 열심인 편이 아니지만 K 군과 게임을 할 때는 신중 모드로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한다. 그렇지 않으면 K 군과의 게임에서 이길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K 군에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예의이기 때문이다.

당구 덕분에 은퇴 후에도 이렇게 새로운 인연을 가져갈 수 있음에 감사하고 나는 앞으로도 좋은 친구들과 당구 치며, 즐기며, 오랫동안 같이 어울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우리 친구들의 뒷모습에는 모두 하나둘쯤 아스라한 아픔들이 묻어 있다. 나는 그저 마음속으로 그들의 등을 두드려 주고 싶다.

당구 TIP

쿠션을 향해 보낸 큐볼은 튕겨 나온다. 이때 큐볼이 쿠션을 향해 진행한 각을 입사각이라고 하며 충돌 후 퉁겨져 나오는 각을 반사각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무회전 당점으로 친 큐볼의 입사각과 반사각은 동일한가 ? 답은 대략 45도 이하로 보냈을 경우 입사각과 반사각은 거의 동일하지만 45도 이상으로 보냈을 경우 입사각보다 반사각이 커지게 된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당구공의 모양이 동그랗기 때문이다. 즉 당구공이 쿠션과 충돌할 때 정면에서 때리면 큐볼의 바로 앞쪽이 접점이 되지만 옆에서 때리면 큐볼의 옆면이 쿠션과의 접점이 되게 된다, 이처럼 입사각에 따라 당구의 전진력 방향과 큐볼의 접점이 차이가 작을 수도 있고 많을 수도 있는데, 입사각이 커질수록 접점은 멀어지게 되며 반사각은 더욱 커지게 된다. 충돌 에너지가 정면 충돌을 회피하면 회피 할수록 전진력의 방향성이 유지 되기 때문이다.

큐볼을 아주 세게 보내면 반사각이 줄어들게 되는데(흔히 공이 꺾인다라고 표현을 하는데) 이는 고무 쿠션의 반발력 때문이다. 반발력은 충돌 에너지가 가장 큰 쪽으로 작용하는데, 큐볼의 진행방향 쪽에서 전달되는 에너지가 가장 크며 따라서 진행방향과 역방향으로의 반발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아라의 당구 홀릭 3 에서 발췌)

이인근 전 부림구매(주)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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