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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장수 브랜드]⑥ 불량품 10만개 불태웠다…중국 사로잡은 초코파이 승부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의 장수 브랜드⑥] 오리온 초코파이

외신에서 보도한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당시 러시아 대통령). 찻잔 옆에 초코파이가 놓여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외신에서 보도한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당시 러시아 대통령). 찻잔 옆에 초코파이가 놓여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차 마시는 메드베데프 대통령.’

로이터통신이 지난 2011년 9월 28일 보도한 사진기사 제목이다.

이 통신사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러시아 대통령(현 총리)이 모스크바 인민우호대학을 방문했을 때 사진을 촬영했다. 사진이 국내 식품업계의 화제를 모은 건 대통령의 찻잔 옆에 놓인 초코파이 때문이었다.

이처럼 오리온 초코파이는 전세계 60여 개 나라에서 판매 중인 글로벌 인기 제품이다. 60개국서 연간 4150억원어치가 팔린다.

‘곰팡이 초코파이’ 불태워 전화위복

오리온 초코파이는 전 세계 60여개국에서 연간 20억 개 이상 팔린다. 사진은 한국에서 팔리는 오리온 초코파이 포장지. [사진 오리온]

오리온 초코파이는 전 세계 60여개국에서 연간 20억 개 이상 팔린다. 사진은 한국에서 팔리는 오리온 초코파이 포장지. [사진 오리온]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오리온 초코파이는 우연한 기회에 만들어졌다. 1970년대 초 식품공업협회(현 식품산업협회) 주관으로 오리온 연구소 직원은 미국 등 선진국을 순회한다. 여기서 방문한 한 카페테리아에서 우유와 함께 나온 초콜릿 코팅 과자를 맛보다가 이들은 신제품 아이디어를 얻었다. 약 2년간 실험·개발을 통해 1974년 4월 초코파이가 탄생했다.

출시 이후 45년 동안 초코파이는 식품을 넘어 한국인의 마음을 위로하는 매개체로 활약했다. 정(情) 캠페인 광고 덕분이다. 오리온은 1989년부터 총 20여 편의 초코파이 정 시리즈 광고를 선보였다. ‘이사가는 날’, ‘삼촌 군대가는 날’, ‘할머니댁 방문’ 등 현대인들이 잊고 지내던 정서인 가족·이웃간의 정을 떠오르게 하는 광고다. 이와 같은 캠페인의 일환으로 1994년부터 1998년까지 책걸상 교체 캠페인을 벌이며 2만여 조의 초등학교 책걸상을 교체했다.

또 2017년에는 건군 69주년 국군의 날을 맞아 국군장병에게 초코파이 선물세트 1만박스를 전달했다. 직경 70cm, 높이 20cm, 무게 21kg이 넘는 초대형 초코파이가 건국 69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 사용되기도 했다.

중국 현지에서 팔리는 오리온 초코파이 매장 모습. [사진 오리온]

중국 현지에서 팔리는 오리온 초코파이 매장 모습. [사진 오리온]

초코파이가 한국을 넘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있었다. 1995년 중국 현지 생산 공장을 건설하던 당시 초코파이에서 곰팡이가 발견됐다. 그 해 여름 중국 남부지역에서 발생한 장마 때문이다. 당시 초코파이는 한국보다 고온다습한 현지 기후를 잘 견뎌내지 못했다.

이에 오리온은 생산 제품 전량을 리콜하고, 수거된 제품 10만 개를 한데 모아 태웠다. 상당한 손실이었지만, ‘초코파이를 불로 태웠다’는 소문이 중국 전역으로 퍼지면서 오히려 오리온은 중국 소비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초코파이 소각 사건은 오리온 본사가 곰팡이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였다. 1996년 초코파이 개발팀은 1년여 동안 신제품을 출시하지 않고 초코파이에 매달렸다. 최적의 수분 함량을 찾기 위해 수술용 메스를 이용해서 정교하게 파이를 분해했다. 수분의 함량(10~15%)을 조절하며 미생물의 번식 상태를 연구했다. 꼬박 1년간을 매달린 끝에 최적 수분 함량(13%)을 찾아냈다. 덕분에 방부제·알코올을 전혀 쓰지 않고도 초코파이는 혹한의 러시아부터 열사의 땅 중동까지 6개월간 변함없는 품질을 유지할 수 있었다.

60개국서 年 4150억원 팔려

덕분에 오리온 초코파이는 전 세계 60여개국에서 연간 20억 개 이상 팔린다. 오리온은 초코파이가 팔리는 국가를 개척하면서 이를 ‘파이로드(Pie Road)’라고 부른다. 중국이 서역과 무역하면서 교역길을 개척한 것처럼, 초코파이가 세계 공통의 교통로가 되고 있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중국에서 팔리는 오리온 초코파이. 하오리요우파이(好麗友·좋은친구)라고 불린다. [사진 오리온]

중국에서 팔리는 오리온 초코파이. 하오리요우파이(好麗友·좋은친구)라고 불린다. [사진 오리온]

한국인에게 정(情)이 각별한 것처럼, 중국인이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시하는 가치가 바로 인(仁)이다. 오리온은 이 점에 착안해 2008년 말부터 하오리요우파이(好麗友·좋은친구·초코파이의 중국명) 포장지에 인(仁)자를 삽입하고 있다. 2016년 8월에는 차를 즐겨 마시는 중국인들의 특성에 맞춰, 말차(찻잎을 곱게 갈아 가루를 내 물에 타 마시는 차로)맛을 담은 ‘초코파이 말차’를 출시했다. 초코파이는 4년 연속 ‘중국 브랜드 파워지수(C-BPI)’ 파이 부문 1위다.

베트남에서는 초코파이를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으로 활용한다. [사진 오리온]

베트남에서는 초코파이를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으로 활용한다. [사진 오리온]

베트남에서는 2009년부터 현지어로 정(情)을 의미하는 ‘Tinh’이라는 단어를 활용한 마케팅 활동을 전개했다. 일부 베트남인은 제사상에 올리는 제사음식으로 초코파이를 애용한다고 한다.

러시아는 가족·친구들이 모여 차와 함께 초콜릿·케이크·비스킷 등을 곁들이는 문화가 발달했다.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러시아인 성향에 주목한 오리온은 다 같이 초코파이를 나눠먹는 단란한 모습을 광고에서 연출했다.

러시아 현지에서 광고 중인 초코파이와 초코보이. [사진 오리온]

러시아 현지에서 광고 중인 초코파이와 초코보이. [사진 오리온]

이밖에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 문화권 국가에서는 초코파이에 우피 젤라틴을 사용해 할랄(halal·무슬림이 먹고 쓸 수 있는 제품) 인증을 받고, 힌두교를 믿는 인도에서는 해조류에서 추출한 식물성 젤라틴을 원료로 사용하면서 인기 제품으로 부상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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