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권, 이스라엘 존재 자체를 인정 안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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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은 아랍과의 본격적인 갈등의 발단이 됐습니다. 서구 열강의 지원 속에 팔레스타인 내에 이스라엘이 들어선 것은 '전쟁의 씨앗'이 뿌려진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48년, 52년, 67년, 73년 네 차례나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아랍권은 무참히 패배했습니다. 특히 67년 3차전쟁에서는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 가자지구, 요르단강 서안, 시리아의 골란 고원이 이스라엘로 넘어갔습니다.

거주할 땅마저 잃어버린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점령지나 주변국 난민촌에 흩어져 무장투쟁에 나서게 됩니다. 주로 테러를 감행했습니다. 국제사회의 무관심, 미국의 일방적인 이스라엘 지지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었죠. 유엔 안보리 결의안 242호(67년)에 명시된 점령지 철수를 수용치 않는 이스라엘에 대한 투쟁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테러가 발생할 때마다 이스라엘은 안보를 명분으로 점령지 고착화를 더욱 강력히 추진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영토분쟁은 민족적.종교적.정치적 반감과 증오를 확대.재생산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팔레스타인 문제가 없었다면 반미 감정도 지금처럼 거세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러한 반감은 대부분 아랍 이슬람 국가에 뿌리 깊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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