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11연속 '왕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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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9단이 19세 도전자 이영구 5단을 3대 0으로 완파하고 왕위 11연패를 달성했다. 이 9단은 19일 한국기원에서 벌어진 제40기 KT배 왕위전 도전 5번기 3국에서 146수 만에 백으로 불계승하며 3대 0으로 가볍게 승부를 마무리지었다. 이로써 이창호 9단은 1996년 유창혁 9단에게서 왕위 타이틀을 넘겨받은 이래 11년 동안 조훈현 9단.유창혁 9단.서봉수 9단.이세돌 9단.옥득진 2단에 이어 신흥강자 이영구 5단까지 6명의 도전자를 모두 물리치며 왕위 11연패에 성공했다.(스승 조훈현 9단과는 네 번, 이세돌 9단과는 두 번의 도전기를 치렀다)

이창호 9단은 국후의 인터뷰에서 "기록에 대한 의식은 없었다. 40년 역사의 왕위전은 애착이 가는 기전이라 성적을 내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결과가 좋아 기쁘다"고 말했다. 또 "오늘 바둑은 포석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이영구 5단이 너무 긴장한 탓인지 평상시 바둑을 두지 못했다"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세계 최강을 자랑해 온 한국바둑이 올해 들어 중국 바둑에 밀리고 있는 데 대해선 "중국이 자신감을 회복하며 몇 차례 우승했고 흐름을 타고 있다. 그러나 앞을 내다본다면 한국과 중국이 패권을 놓고 어려운 접전을 펼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대국에서 이창호 9단은 대세력을 펼치며 중앙을 크게 에워싸는 '우주류'를 선보였다. 위험요소가 높은 이 우주류는 흑의 이영구 5단에게도 좋은 기회였다. 네 귀의 실리를 독차지한 흑이 중앙 백진만 잘 삭감하면 모처럼 1승을 챙길 수 있는 국면이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삭감 과정에서 완착이 나왔고 백은 그 틈을 타 단번에 형세를 리드했다. 이후는 백의 독무대였다. 굳히기에 능한 이 9단은 단 한번의 틈도 주지 않고 흑을 밀어붙여 중반 KO승을 이끌어 낸 것이다.

도전자 이영구 5단은 촉망받는 신예기사로 패기 있게 정상 진입을 노렸으나 생애 처음 맞이한 도전기에 너무 긴장한 나머지 본인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결국 이창호의 벽을 넘어서기엔 아직 이르다는 판정 속에서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이창호 9단은 현재 왕위.국수.10단.전자랜드배.KBS바둑왕.춘란배까지 6관왕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하이라이트>

이창호 9단이 백△들로 중앙에 장벽을 쌓았다. 오랫만에 보는 이창호의 우주류. 네귀를 차지한 이영구 5단이 43으로 삭감을 시작했다.

인터넷 생중계를 맡은 루이나이웨이(芮乃偉) 9단은 ‘포석은 흑 성공’이라고 말했는데 이영구도 그점을 알았기에 얕게 삭감해 간 것. 44부터 백이 서서히 공격할 때 흑의 완착이 등장했다.

바로 53. 언제나 선수라고 믿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냥 A로 뛰어나갔으면 팽팽한 국면이었다. 54가 이창호 다운 두터운 수이자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요소여서 여기서부터 백의 우세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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