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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없으면 조퇴하고 휴식? 교사 연수 기준 시도별 제각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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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지 외 연수'를 악용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교육부가 현장의 혼란을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해당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뉴스1]

'근무지 외 연수'를 악용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교육부가 현장의 혼란을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해당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뉴스1]

서울의 한 초등학교 A교장은 지난 8월 여름방학 때 가족들과 2주 동안 아프리카로 패키지여행을 가면서 ‘근무지 외 연수’를 신청했다. 전년도 1월에 태국으로 가족여행을 갈 때도 연수 핑계를 댔다. 수업이 없는 방학을 이용해 교사들이 지난 학기를 점검하고 새 학기를 준비하라고 만든 ‘근무지 외 연수’를 휴가처럼 사용한 것이다.

A교장은 최근 복무관리규정 위반 여부에 대해 서울시교육청의 조사를 받고 있다. 교원이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방학 때 해외연수를 가는 것은 허용되지만, 관광 등이 목적인 가족여행은 여기 해당하지 않아서다. 시교육청이 “가족여행 등은 연가를 사용해야 한다”고 지적하자 A교장은 “아프리카 여행으로 견문을 넓혔다. 교사 대부분이 해외여행 갈 때 연수를 활용하니 문제가 없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사들이 ‘근무지 외 연수’를 개인적인 용도로 악용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교육당국이 혼란을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근무지 외 연수는 교사들이 방학을 이용해 교과 지도와 교재 연구 등을 할 수 있게 마련됐다. 교육공무원법 제41조(연수시간 및 근무장소 외에서의 연수)는 교원이 수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학교를 벗어나서 연수를 받는 게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학기 중에 조퇴하기 위해 ‘근무지 외 연수’를 신청하는 경우도 있었다. 서울 고교의 B교장은 2017, 2018년 12월에 각각 집안의 제사에 참석하거나 건강검진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근무지 외 연수’를 사용했다. 서울 중학교의 C교사도 지난 4월 중간고사 기간에 연수를 신청해 일찍 퇴근하고 자녀와 시간을 보냈다.

문제는 교육청별로 ‘수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 대한 해석이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교육부는 이를 방학이나 재량휴업일 등 학생들이 수업하지 않는 날로 한정한다. 하지만 오전 중에 일과가 마무리되는 시험 기간이나 수업이 비는 시간을 ‘수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로 해석하는 교육청도 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이 25일 공개한 ‘시‧도별 41조 연수 사용 기준’에 따르면 경기‧부산‧전남 등 15개 시‧도교육청은 교육부 지침대로 휴업일에만 연수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서울‧대전은 시험 기간이나 수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연수를 허용하고 있었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지난 7월 15일 오후 서울시교육청교육연수원에서 열린 '2019 초등ㆍ특수학교 교감 자격연수'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지난 7월 15일 오후 서울시교육청교육연수원에서 열린 '2019 초등ㆍ특수학교 교감 자격연수'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지역은 중등 교사에 한해 시험 기간 부서별로 계획서를 제출하면 조기 퇴근이 가능했다. 대전은 유·초·중등 교사 모두 수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근무지 외 연수’를 신청할 수 있었다. 연수계획서와 보고서 제출은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교사들이 어떤 활동을 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근무지 외 연수를 시험 기간에 사용하면 안 된다는 법적 근거가 없다. 교사들이 교재개발이나 교과연구에 힘쓸 수 있게 허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전교육청 관계자는 “2017년 교육부로부터 ‘연수가 조기 퇴근을 위해 악용되지 않는 경우 학교장이 판단해 결정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후 이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와 교육청의 기준이 다르다 보니 내부에서 의견이 엇갈리는 일도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2월 ‘시험 기간이나 체험학습 날 연수를 사용할 수 없다’는 공문을 보내고 일주일 뒤 ‘시험 기간에 사용이 가능하다’고 안내해 현장의 혼란을 키웠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 강북의 한 일반고 교장은 “교육청 방침이 일주일 간격으로 오락가락하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더라. 현재까지는 휴업일에만 연수를 허용하고 있는데 ‘왜 안 되느냐’고 따지는 교사들도 있다”고 전했다.

교육부는 현장의 혼란을 방치하고 있다. 당초 7월 말까지 현장 의견을 수렴해 연수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키로 했으나 현재도 답보 상태다. 교육부 관계자는 “시도교육청 의견을 수렴했지만 별다른 결론을 내지 못했다”며 “교육공무원법 제41조에 따른 근무지 외 연수는 휴업일에 실시한다는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교육부의 방침을 시도교육청에 다시 한번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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