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뉴스분석] 정부는 금융 규제 풀고, 기업은 결제+부가서비스 늘려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5면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가 전 세계 1·2위, 미국 뉴욕이 3위, 다시 중국 도시인 광저우·선전이 4·5위. 중국 도시들이 전 세계 상위권을 휩쓰는 분야가 있다. 바로 핀테크(Fintech) 경쟁력이다.

IT강국 한국 핀테크 선진국 전략은 #한국서 막 시작한 규제 샌드박스 #영국 등 주요국 수년 전부터 운영 #새 기술 도입 쉽게 제도 안 고치면 #수년 내 캄보디아에 추월당할 수도

영국계 컨설팅업체 지엔그룹과 중국 싱크탱크인 중국종합개발연구원(CDI)이 최근 함께 발표한 ‘국제금융센터지수(GFCI) 26호’ 보고서에서 핀테크 순위는 이같이 매겨져 있다. 20위까지 공개된 도시명에서 정보기술(IT)의 세계적 강국인 한국의 서울·부산 등은 아예 이름을 올리지도 못했다.

세계에서 가장 앞선 통신망과 가장 높은 스마트폰 보급률(95%·세계 1위)을 자랑하는 한국이 유독 핀테크 분야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국내에서 손꼽히는 핀테크 전문가인 윤완수 웹케시 대표, 법무법인 린의 구태언 테크앤로 부문 변호사와 함께 분석했다. 웹케시는 ATM기, 인터넷뱅킹 등을 국내에 처음 도입한 업체로 올 초 국내 핀테크 기업 가운데 1호 상장 업체가 됐다.

신용카드 높은 보급률이 혁신 장애물

윤완수

윤완수

윤 대표는 “핀테크의 흐름을 정확히 알려면 소비자 금융인 B2C와 기업 금융인 B2B로 나눠 들여다 봐야 한다”며 “한국의 경쟁력이 크게 뒤처지는 쪽은 B2C 분야”라고 진단했다. 그는 “결제란 실물이나 서비스 거래를 뒷받침하는 돈의 흐름인데, 각종 상행위가 결제와 개별적으로 결합하는 게 B2C 분야의 세계적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결제라는 행위가 일일이 사람 손을 거치지 않고 스마트폰을 통해 개별 앱상에서 해결된다는 의미다.

그는 차가 통과하면 알아서 돈이 빠져나가는 하이패스, 앱으로 불러서 타고 가서 목적지에 그냥 내기리만 하면 이미 결제가 끝나 있는 카카오택시 등을 예로 들었다. 구 변호사는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상거래가 일일이 소비자의 손을 거치지 않고 결제 기능이 ‘임베디드(embedded·내장형)’된 앱상에서 바로 진행된다는 게 스마트시대 B2C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핀테크 시장 규모(거래가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세계 핀테크 시장 규모(거래가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윤 대표는 돈의 흐름을 물에, 결제를 빨래에 비유해 알기 쉽게 설명했다. “과거엔 빨래하려면 일일이 물을 길어와야 했다. 그러다 수동 세탁기가 등장했고, 이어 수도꼭지를 아예 자동세탁기에 연결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과거 ATM기에서 돈을 찾아 현금을 쓰다가, 카드로 결제하는 방식으로 진화했으나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결제 기능이 각각의 상거래가 일어나는 앱에 장착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B2C 분야에서 한국의 발전이 더딘 이유를 금융 인프라에서 찾았다. 중국은 모든 상행위에서 주문과 결제를 스마트폰으로 한 번에 해결한다. 음식점만 해도 QR코드를 찍어서 앱상에서 메뉴를 고르고 결제까지 끝낸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신용카드 결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스마트 결제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카드 보급 안돼 급속히 스마트화

구태언

구태언

구 변호사는 “중국은 신용카드 보급률이 2%도 안 됐을 때, 즉 기존 인프라가 없는 상황에서 곧바로 스마트기기 기반의 핀테크가 삽시간에 확산한 것”이라며 “한국은 (신용카드라는) 기존 인프라가 새 혁신의 도입을 늦추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금융 후진국에서 핀테크 확산이 오히려 쉽다. 몇 년 뒤면 우리나라 핀테크 수준이 캄보디아에도 뒤진다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윤 대표는 “B2C 핀테크 확산을 위해 금융 인프라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며 ‘제로페이’ 얘기를 꺼냈다. 그는 “제로페이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이 많다”며 “서울시가 만드는 ‘결제 솔루션’이 아니라 정부가 추진하는 스마트폰 기반의 핀테크 금융 인프라”라고 설명했다. 네이버페이나 카카오페이같은 결제 솔루션이 아니고, 어떤 페이도 결제할수 있게 하는 스마트결제인프라라는 것이다. 소상공인들이 이런 결제 인프라를 갖춰야 향후 카드 사회에서 스마트폰 기반 결제 사회로 나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신용카드라는 물리적 물질에는 다른 부가 서비스를 장착할 수 없지만, 핀테크는 소프트웨어로 결제하는 것이어서 향후 각종 서비스와 융합하기 쉽다”고 설명했다.

국내 핀테크 기업 유형.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국내 핀테크 기업 유형.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B2C 결제가 각종 상거래와 결합해 임베디드 형태로 진화한다면 B2B 결제는 기업의 업무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기업 간 금융거래가 은행을 통하지 않고 각 회사의 업무 시스템에서 곧바로 처리된다는 의미다. 실제 최근 세계적 ERP(전사자원관리) 업체인 SAP는 웹케시와 업무 협약을 맺었다. 삼성전자, 현대차 등 국내 기업 대부분이 SAP가 만든 업무 소프트웨어를 사용 중인데, 여기에 금융결제 솔루션이 같이 들어가는 것이다. 부품이나 자재 구매 대금을 은행에 가지 않고 회사 내 시스템에서 바로 처리할 수 있게 됐다.

윤 대표는 “B2C에 비해 B2B 핀테크가 그나마 급속도로 성장하는 것은 기업들이 지난 10여년간 ERP 같은 업무 시스템을 대부분 도입해 금융과 업무를 융합할 수 있는 IT 환경을 갖췄기 때문” 이라고 설명했다.

핀테크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제도와 인프라, 두 측면에서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구 변호사는 “영국 등 주요 국가들은 우리가 이제 막 시작한 금융 분야 규제 샌드박스를 수년 전부터 운영 중”이라며 “금융이 새로운 기술을 수용하기 쉽게 제도를 정비하는 노력을 우리 정부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스마트 기반 가맹 인프라 구축에 나서고, 핀테크 업체들은 편한 결제와 다양한 부가 서비스를 결합하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