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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칭] 올해 에미상을 휩쓴 이 코미디, 플리백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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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백   [사진 아마존 프라임]

플리백 [사진 아마존 프라임]

요즘 제일 끌리는 인물 중 하나는 피비 월러 브리지다. 피비 월러 브리지에 대해 국내에 자세히 소개된 적은 거의 없는 듯하다. 피비 월러 브리지를 소개하는 데 있어서 가장 먼저 나올 수 있는 커리어는 그가 〈킬링 이브〉를 제작하고 각본을 쓴 인물이며, 내년에 공개될 새로운 007 영화 〈본드 25〉에 공동 각본으로 참여했다는 것이다.

나 또한 피비 월러 브리지를 알게 된 시작점은 〈킬링 이브〉다. 어떻게 이토록 매력적인 두 여성 캐릭터가 탄생했을지 너무 궁금했고, 그 뒤에 크리에이터 피비 월러 브리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배우이기도 하다고? 재능이 출중한 사람이다 싶어 전작들을 찾아보다가 〈플리백〉이라는 코미디를 보기 시작했는데,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이 재능 넘치는 크리에이터가 각본에 제작 그리고 주연까지 맡은 〈플리백〉은 피비 월러 브리지가 어떤 사람인지 더 알고 싶을 때 그 관문으로 삼기에 딱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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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백>의 주인공 피비 월러 브리지. [사진 IMDb]

<플리백>의 주인공 피비 월러 브리지. [사진 IMDb]

〈플리백〉의 주인공 이름은 플리백(피비 월러 브리지)이다. 하지만 극 중에서 한 번도 이 이름은 불리지 않는다. 엔딩 크레디트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fleabag’은 ‘행색이 초라하고 불쾌한 사람’ 또는 ‘싸고 더러운 호텔’을 뜻하는데, 이미 제목에서 주인공이 어떤 캐릭터일지 많은 것을 알려준다. 사실 플리백은 이름이 아니라 닉네임이다. 실제로 피비 월러 브리지 가족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라고 한다.

플리백은 뭐 하나 제대로 풀리는 게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일도 연애도 인간관계도 죄다 덜컹거리고 위태위태하다. 함께 카페를 운영하며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었던 절친은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로 죽었고, 카페를 유지하기 위해 신청한 은행 대출은 여성 사업자라는 이유로 퇴짜를 맞는다. 관계 중독, 섹스 중독인 플리백은 자기파괴적인 행동에 탐닉하느라 남자들과의 관계를 늘 망치고, 심지어 남자친구가 버젓이 옆에 있는데 자위하다가 이별을 통보받는다.

&lt;플리백&gt;의 한 장면. [사진 IMDb]

<플리백>의 한 장면. [사진 IMDb]

정반대 성향의 언니와는 만나면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말다툼으로 번지기 일쑤고, 아버지한테도 나이 들어서까지 칠칠치 못한 말썽꾸러기 딸일 뿐이다. 아버지와 사이가 이럴진대 새어머니와 사이가 좋을 리 만무하다. 이 두 사람은 겉으로는 웃지만 틈틈이 서로에게 무례하게 굴 타이밍을 엿본다. 플리백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여러모로 파산한 상태라는 것을. 그래서 자기 자신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끔찍하다는 것을.

플리백은 자신이 처한 겹겹의 난관을 돌파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건 히어로물이 아니다. 삶은 손바닥 뒤집듯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카메라를 보며 속마음 털어놓는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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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백>의 한 장면. [사진 IMDb]

플리백은 지금껏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기 힘든 새로운 감각의 여성 캐릭터다. 그는 스스로가 “탐욕스럽고, 이기적이고, 무신경하고, 냉소적이며 타락한 데다가 페미니스트인 척도 할 수 없을 만큼 파산한 상태”라는 걸 직시하는 인물이다. 이게 이 사람 인생의 디폴트인 셈이다. 〈플리백〉의 각본을 쓰고 주연을 맡은 피비 월러 브리지는 죄책감과 자기혐오라는 복잡한 심리 상태 속에서 허우적대는 주인공을 능청스러우면서도 냉소적인 유머로 풀어간다.

〈플리백〉의 가장 큰 특징은 주인공이 시도 때도 없이 카메라를 쳐다보고 말한다는 것이다. 즉 ‘제4의 벽’을 허물며 시청자와 눈을 마주친다. 시청자가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놔도 되는 친구라도 되는 듯 시청자를 극 속에 적극적으로 개입시킨다. 시청자는 이 픽션을 보는 관객인 동시에 극 밖에 머물며 주인공과 깊이 교감하는 친구가 되는 셈이다. 피비 월러 브리지는 이 작품을 2013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1인극으로 상연할 목적으로 썼다고 한다. 그 후 드라마로까지 만들어진 것인데, 그래서인지 이러한 연극적인 장치가 극 속에 녹아 있다.

리얼해서 소름 끼치게 웃긴 자매애

&lt;플리백&gt;의 한 장면. [사진 IMDb]

<플리백>의 한 장면. [사진 IMDb]

〈플리백〉은 피비 월러 브리지가 안 나오는 장면이 거의 없을 정도로 카메라 독점력이 매우 높지만, 그에 못지않게 출연하는 모든 배우들의 열연을 구경하는 재미가 크다. 여동생으로 출연하여 현실적인 자매애를 보여주는 시언 클리포드, 정말 얄미운 새어머니 역할을 출중하게 해내는 올리비아 콜맨, 플리백과 전쟁을 치르듯 싸우는 여동생의 남편 브렛 겔맨, 그리고 시즌 2에서 플리백과 금기의 러브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사제 역할의 앤드루 스콧까지, 모든 캐릭터가 생생하게 제 몫을 한다.

그중에서도 플리백과의 케미가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여동생이다. 〈플리백〉에서 이 자매의 관계는 정말 진저리날 만큼 리얼해서 소름 끼치게 웃긴다. 두 사람은 결코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그리는 관계지만 결국 서로 가장 필요로 할 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플리백〉에서 유일하게 건강하고 희망적인 관계는 위선 떨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도 서로를 보듬는 이 자매애뿐이다.

&lt;플리백&gt;의 한 장면. [사진 IMDb]

<플리백>의 한 장면. [사진 IMDb]

〈플리백〉은 올해 에미상 코미디 부문을 완전히 휩쓸었다. 여우주연상, 각본상, 연출상, 작품상 4개를 수상했다. 새로운 감각의 여성서사와 시니컬한 영국 코미디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이다. 올해의 크리에이터는 무조건 피비 월러 브리지니까.

글 by 녹색방 영화를 좋아하는 북에디터


제목  플리백(FLEABAG)
제작  피비 월러 브리지 외
감독  해리 브래드비어, 팀 커크비
출연  피비 월러 브리지, 시언 클리포드, 올리비아 콜맨, 브렛 겔맨, 빌 패터슨
시즌  1(2016), 2(2019)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평점  IMDb 8.6 에디터 꿀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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