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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4년째 줄던 자살률 지난해 9.5% 증가...“경기 악화ㆍ유명인 자살 영향”

중앙일보

입력

서울 마포대교에 설치된 '생명의 전화'[뉴스1]

서울 마포대교에 설치된 '생명의 전화'[뉴스1]

2013년 이후 4년째 줄어들던 자살률이 지난해 9.5% 늘어났다. 자살(고의적인 자해)는 지난해 숨진 한국인 사망 원인 5번째로 기록됐다.
통계청은 이러한 내용을 담은 2018년 사망원인통계를 24일 공개했다. 2018년 자살 사망자는 1만3670명으로 2017년보다 1207명 증가했다.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26.6명으로 2017년 24.3명에 비해 9.5% 늘었다.

김진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자살은 베르테르 효과라고 유명인 자살의 영향을 받는다. (2013년 이후) 그간 정부의 자살예방정책이 효과를 내고 유명인 자살이 줄었던 것이 자살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2018년에는 유명인 자살이 늘면서 영향을 줬다고 본다”라며  “(자살률)이 가장 많이 늘어난게 지난해 1ㆍ3ㆍ7월인데 그 시기에 유명인 자살이 있었고 상반기에 집중됐다. 자살률은 3월에 가장 많이 증가했고 그 이후 지속 감소해서 평년 수준을 되찾은 것을 볼 수 있다. 원인을 말하기엔 한계가 있고 유명인 자살이 있었던 달에 자살이 늘어난 것으로 봐서 유명인 자살이 영향을 주지 않았나 추정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는 이와 관련해 “2018년 자살 사망률이 가장 높았던 때는 전년 대비 35.9% 증가한 3월로, 이후 하향 추세를 보였으며 8월 이후 전년 대비 증가율이 2.5% 정도로 낮아졌다”라며 “2019년 1~7월 2018년 동기간 대비 약 8% 내외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밝혔다.
복지부는 “올해 3~5월 중 자살 고위험군 선별 등 적극적인 예방 노력과 함께 2018년 이후 추진되고 있는 자살예방 국가행동계획이 정책적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영진 복지부 자살예방정책과장은 지난해 자살률이 갑자기 뛰어오른데 대해 “자살은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나 한두 가지 요인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지난해 심리부검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자살사망자 1인당 평균 3.9개의 생애 스트레스 사건(직업, 경제적 문제, 건강 문제 등 심각한 스트레스를 주는 사건)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것으로 나타났다”라면서도 “다만 지난해 가수ㆍ배우ㆍ정치인 등 유명인의 자살 사건이 다수 발생하면서 이에 따른 모방 자살 효과도 영향을 미친것으로 추정된다”라고 설명했다.

2015년 삼성서울병원 연구팀이 2005~2011년 우리나라에서 자살로 숨진 유명인 13명의 모방 효과를 분석한 결과 하루 평균 6.7명이 유명인 자살 사건의 영향으로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인이나 운동선수보다는 배우나 가수의 영향이 더 컸다. 유명인에 따라 모방 효과가 하루 최대 29.7명까지도 나타났다.

다시 증가한 자살률.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다시 증가한 자살률.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백종우 중앙자살예방센터장(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2017년 12월 유명 가수의 자살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 직후인 2018년 1월 자살 사건이 매우 늘었고 특히 10대의 자살이 많이 늘었다”라며 “또 2018년 3월 유명 연예인과 7월 정치인의 자살이 있었고 30~40대의 극단적 선택이 크게 늘었다. 베르테르 효과로 불리는 유명인 자살의 모방 효과를 우려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백 교수는 “국내 언론의 자살 보도에 대해서도 돌아봐야 한다. 숨진 가수의 경우 해외에서도 인지도가 높아 해외 언론에서도 그의 사망 사실이 보도됐다. 한데 해외 언론에선 자살 수단에 대해서 보도한 곳이 한 곳도 없었다”라고 지적했다. 당시 국내 일부 언론에서 자살 도구를 자세히 보도해 논란이 됐던 점을 언급한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1월 자살예방 국가행동계획을 발표했다. 2022년까지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을 17명까지 줄이겠다는 목표를 잡았다. 자살률이 가장 높았던 2011년(31.7명)의 절반 수준으로 낮춘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자살률이 오히려 오른 것으로 나타나면서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정부의 자살예방정책 예산은 2017년(99억원)에서 올해 218억원, 2020년 정부안 기준 289억원으로 최근 크게 늘었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의 2.5% 수준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취업률 저하 등 경제 상황이 나빠진 것도 극단적 선택 증가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동우 인제대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경제적인 요인이 많이 작용했을거라고 본다. 최근 정권들이 진보ㆍ보수를 가리지 않고 경제 문제를 풀지 못했고 안 좋은 상황이 오래가고 있다. 그 영향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라며 “또 감정 조절이 잘 안되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만연한 분노 범죄나 헤이트 스피치(혐오 발언) 등은 국민들이 감정조절이 안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감정조절 불능이 밖으로 표현되면 분노 범죄가 되고, 본인에게 돌려지면 자살에 이를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양두석 안실련 자살예방센터장(가천대 겸임교수)는 “자영업자 도산이나 구조조정 기업 등에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늘면서 자살률 증가의 큰 원인이 되지 않았나 싶다”라며 “정부가 취약계층이나 위험 지역을 중심으로 좀 더 적극적인 자살예방정책을 펴야 한다. 자살예방 예산을 늘리고 국무총리 주재 자살예방정책위원회를 상설화해서 매일 점검하고 대책을 보완해 나가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상담전화 1393,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으로 전화하세요.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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