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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 빈말이 내 꿈 뺏었다" 세계정상들 혼쭐낸 16세 소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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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각국 정상과 산업계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한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스웨덴의 10대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연설하고 있다.[EPA=연합뉴스]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각국 정상과 산업계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한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스웨덴의 10대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연설하고 있다.[EPA=연합뉴스]

"저는 여기 위가 아니라, 바다 반대편 학교에 있어야 합니다. 당신들은 빈말로 내 어린 시절과 내 꿈을 앗아갔어요"

스웨덴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6)는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기후 행동 정상회의에서 세계 지도자들을 향해 책임을 추궁했다.

이날 정상회의는 2021년 파리 기후변화협정 시행을 앞두고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각 국가와 민간 부문의 행동 강화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다.

툰베리는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배를 타고 스웨덴에서 미국 뉴욕까지 건너왔다. 그는 이날 3분 연설을 통해 "환경오염이 심각하다"고 과학자들이 경고했음에도 탄소배출량이 최고치를 기록했다며 열변을 토했다.

그는 정상회의에서 만난 각국 정상과 정부 대표들을 향해 "생태계 전체가 무너지고, 대규모 멸종의 시작을 앞두고 있는데 당신은 돈과 영원한 경제 성장이라는 꾸며낸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스스로를 "그나마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표현한 툰베리는 "사람들이 고통받고 죽어가고 있다"며 심각성을 호소했다.

툰베리는 이어 환경오염의 위급성을 이해한다는 지도자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는 "당신들이 정말로 이해하고도 행동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당신이 악하다는 의미"라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50% 감축한다는 일반적인 목표는 장기적으로 1.5℃의 지구 온도 상승을 피할 확률을 50% 감소시킨다는 의미에 불과하다며 "우리는 50%의 위험성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당신들은 우리를 실망시켰고, 우리는 당신들의 배신을 깨닫기 시작했다"며 "미래 세대의 눈이 당신을 향해 있다. 만약 우리를 실망시키는 쪽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AFP통신은 툰베리의 유엔 연설에 대해 "배를 타고 미국에 온 뒤로 대중 행사에서 말을 아끼고, 별로 유명하지 않은 운동가들에게 마이크를 넘겨 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도록 했던 툰베리가 이날 밤만큼은 그렇지 않았다"면서 "가공되지 않은, 감정적인 연설이었다"고 평가했다.

툰베리는 정상회의 직후 12개국 출신 청소년 15명과 함께 독일·프랑스·브라질·아르헨티나·터키 등 5개국이 '아동권리조약'에 따른 의무사항을 지키지 않았다며 유엔에 제소했다.

해당 국가들이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적절한 행동을 취하지 않음으로써 자신들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해당 국가들이 기후 변화로 인한 "치명적이고 예측 가능한 결과를 막기 위해" 그들이 가진 자원을 활용하지 않으며 문제 해결을 위해 다른 국가와 효율적으로 협력하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삶이 기후 변화에 영향을 받았다며 해당 국가들이 기후 변화의 목표를 즉각 변경하고, 다른 국가들과 공조할 것을 요구했다. 금전적 보상은 요구하지 않았다.

툰베리와 청소년들이 지목한 5개국은 유엔의 사법권을 수용한 44개국 중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국가들이다. 하지만 CNN은 세계 최대 이산화탄소 배출국인 미국과 중국이 이 명단에서 빠졌다고 지적했다.

툰베리는 기자회견서 "지긋지긋하다는 것이 우리가 전하려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툰베리는 지난해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 국회의사당 앞에서 매주 금요일 기후변화 대책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여 전 세계 주목을 받았다. 8세 무렵 처음으로 기후변화 문제를 깨달았지만 아무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 충격을 받고 말문을 닫았다. 병원은 자폐증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 진단을 내렸다.

툰베리는 이후에도 꾸준히 환경 캠페인을 벌였고 지난 3월 노벨평화상 후보로 거론됐다. 이번 유엔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항공기 대신 18m 길이의 태양광 소형 요트를 타고 대서양 4800㎞를 횡단했다. 항공기의 오염물질 배출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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