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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당 '1일 1삭발 챌린지'···비아냥 당해도 계속된다,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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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6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반발하며 삭발을 한뒤 안경을 쓰고 있다. 변선구 기자 20190916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6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반발하며 삭발을 한뒤 안경을 쓰고 있다. 변선구 기자 20190916

전례 없는자유한국당의 삭발 릴레이가 계속되고 있다.
18일 전·현직 국회부의장인 심재철·이주영 의원에 이어 19일엔 김기현 전 울산시장도 삭발식을 예고했다. 11일 박인숙 의원을 시작으로 황교안 대표(16일), 김문수 전 경기지사, 강효상 의원(17일)이 이어나갔다.
한국당 의원들의 삭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올해만 해도 4월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지정에 항의해 박대출 의원을 시작으로 김태흠·성일종·윤영석·이장우 의원이 집단 삭발을 했다. 하지만 대개 일회성 행사에 그쳤고 파급력도 제한적이었다.

박인숙→황교안→김문수ㆍ강효상 이어 #18일 심재철ㆍ이주영, 19일 김기현 #"이벤트 아닌 콘텐트도 승부봐야" 비판도

반면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를 요구하며 진행되는 최근의 삭발식은 10일 이언주 무소속 의원을 시작으로 ‘1일 1 삭발’의 형태로 지속한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일각에선 “다음 차례를 지명만 하지 않을 뿐 ‘아이스버킷 챌린지’와 흡사하다”며 ‘삭발 챌린지’라는 말도 나온다.

일각에서 ‘구태’라는 비아냥과 비판도 이어지고 있지만 당분간 한국당에서는 삭발 릴레이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당이 이처럼 삭발에 뛰어드는 이유는 뭘까.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18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삭발식을 마친 이주영 국회부의장, 심재철 의원과 함께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뉴스1]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18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삭발식을 마친 이주영 국회부의장, 심재철 의원과 함께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뉴스1]

①‘조국 정국’ 동력 지속=삭발은 소수 정파의 극단적 선택으로 여겨지곤 했다. 최초의 여성 의원 삭발도 2013년 11월 헌법재판소의 정당 해산 결정에 반발한 통합진보당 소속 김재연·김미희 전 의원이었다.

이 때문에 100석이 넘는 의석을 보유한 한국당이 삭발에 나섰을 때 정의당 등 정치권 일부에선 부정적인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17일 “삭발·단식은 약자들이 신념을 표현하는 최후의 투쟁방법인데 (한국당은) 제1야당의 막강한 권력과 수많은 정치적 수단을 외면하고 약자 코스프레를 한다”고 비난했다. 박지원 무소속 의원도 이날 “삭발은 20세기 구정치”라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당에서 삭발을 강행한 것은 ‘조국 정국’을 이어가는 실효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당의 초선 A 의원은 “당내에서도 ‘쇼로 보일 것’ ‘단발성 효과에 그친다’라며 부정적 의견이 있지만 어쨌든 조국 법무부 장관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키는 효과가 있는 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통합진보당 오병윤 원내대표를 비롯한 김선동, 김미희, 김재연, 이상규 의원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민주주의 수호 통합진보당 사수 결의대회를 마친 뒤 삭발을 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오병윤 원내대표를 비롯한 김선동, 김미희, 김재연, 이상규 의원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민주주의 수호 통합진보당 사수 결의대회를 마친 뒤 삭발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 순위’다. 조국 정국에서 친여 지지층의 화력 선전장으로 이용된 실검 순위는 최근 조 장관에 대한 응원 구호보다 한국당 삭발 관련 단어가 주요 순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②당 전열 재정비=우여곡절 끝에 어렵사리 진행된 6일 인사청문회 직후 한국당은 ‘맹탕 청문회’라는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결정적 ‘한 방’이 없고, 오히려 조 장관의 해명 기회만 만들어 줬다는 비판이 당 지지층 사이에서도 쏟아져 나왔다. 홍준표 전 대표도 페이스북을 통해 당 지도부의 ‘전략 부재’를 지적하며 흔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삭발식은 한국당에 일종의 전열 재정비의 기회를 줬다는 자체 평가다. 한국당 지도부의 한 관계자는 “이미 공은 검찰로 넘어가 더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데다 비판여론도 겹치면서 자칫 정국의 동력을 잃을 수도 있었다”며 “그런 와중에 황 대표까지 삭발 대열에 동참하면서 다시 추스르는 기회를 가졌다”고 했다. 실제로 황 대표가 삭발한 16일 홍 전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후속 조치를 기대한다. 잘해달라”며 이례적으로 응원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무소속 이언주 의원이 10일 오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철회와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삭발하고 있다. [연합뉴스]

무소속 이언주 의원이 10일 오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철회와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삭발하고 있다. [연합뉴스]

③시선 집중=삭발이 무작위 릴레이 방식으로 이어지면서 다음 차례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면도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정청래 전 의원도 16일 페이스북에 황 대표의 삭발을 언급하며 “그럼 나경원은?”이라고 글을 올렸다. 나 원내대표를 자극하려는 의도였지만 한편으로는 여권 인사들도 한국당의 삭발 이슈에 끌려들어 가는 모양새가 됐다. 다만 대중의 관심이 쏠리는 나 원내대표는 17일 “많은 분이 원치 않는다”며 일단 선을 그은 상태다.
한국당 입장에선 의외의 ‘성과’도 있었다. 황 대표의 삭발 중 노출된 일부 사진이 ‘황교안 투 블럭’이라는 명칭으로 다양하게 재가공되면서 온라인상에서 관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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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총선을 앞두고 의원들로선 인지도를 높일 기회로 여기는 측면도 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의 삭발 장면을 합성한 사진 [SNS 캡처]

황교안 한국당 대표의 삭발 장면을 합성한 사진 [SNS 캡처]

하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당내 우려의 목소리도 여전하다. 야당이 싸워야 할 장소는 거리가 아닌 국회란 점에서다. '이벤트'가 아닌 '콘텐트'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미다. 수도권의 한 중진의원은 ”과거 유승민 의원이 원내대표 취임 연설을 통해 얼마나 큰 민심의 호응을 얻었나. 주 전공은 팽개치고 부전공에서 만회하려고 매달리는 건 정도(正道)는 아니다”라며 “조만간 삭발식은 마무리하고 대정부질문이나 국정감사 준비에 충실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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