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박한 덴마크 식탁에서 첨단 트렌드 '휘게'를 배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덴마크에서 가장 흔히 먹는 음식은 스뫼레브뢰, 즉 오픈 샌드위치다. 두툼한 호밀빵 위에 해산물이나 고기를 얹고 채소를 올린 뒤 이와 어울리는 드레싱을 내준다. 사진은 푸드투어 코스 중 들른 '아만스 델리 앤 테이크 어웨이'에서 맛본 스뫼레브뢰. 최승표 기자

덴마크에서 가장 흔히 먹는 음식은 스뫼레브뢰, 즉 오픈 샌드위치다. 두툼한 호밀빵 위에 해산물이나 고기를 얹고 채소를 올린 뒤 이와 어울리는 드레싱을 내준다. 사진은 푸드투어 코스 중 들른 '아만스 델리 앤 테이크 어웨이'에서 맛본 스뫼레브뢰. 최승표 기자

덴마크는 북유럽에서도 미식 문화를 선도하는 나라다. 세계에서 가장 예약하기 힘든 식당이라는 ‘노마’를 비롯해 18개 레스토랑이 미쉐린 별 22개 보유하고 있다. 별이 없는 훌륭한 식당도 물론 많다. 비싼 물가가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의외로 싼값에 맛난 음식을 즐기는 방법도 있다.

먹으며 걸으며 - 푸드 투어

덴마크의 미식 트렌드를 알고 싶다면 푸드 투어가 제격이다. ‘뉴 노르딕 퀴진(New nordic cuisine)’을 주제로 한 4시간짜리 푸드 투어에 참여해봤다. 가이드 마리아는 “2004년 북유럽의 내로라하는 셰프들이 코펜하겐에 모여 ‘새로운 노르딕 음식’에 공동 선언문을 발표한 뒤 미식 트렌드가 크게 바뀌었다”며 “제철 식재료와 유기농을 활용하고 동물 복지까지 챙기는 문화가 이때부터 확산했다”고 설명했다.

푸드 투어는 전통시장 토르브할렌(Torvehallerne)에서 시작해 맛의 거리로 떠오른 ‘미트패킹 디스트릭트’까지 이어졌다. 아만스 델리 앤 테이크 어웨이(Aamanns deli & take away)에서 먹은 ‘스뫼레브뢰(Smørrebrød)’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덴마크 정통 오픈 샌드위치인데 호밀빵과 짭조름한 고기, 신선한 채소, 진득한 드레싱이 출중한 조화를 이뤘다. 애덤 아만스 셰프가 2000년대 들어 스뫼레브뢰 유행을 선도한 주인공 중 하나다.

오픈 샌드위치는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 새우를 얹은 샌드위치도 많이 먹는다. 최승표 기자

오픈 샌드위치는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 새우를 얹은 샌드위치도 많이 먹는다. 최승표 기자

 푸드투어에 참여한 여행객들이 전통시장에서 치즈를 맛보고 있다. 최승표 기자

푸드투어에 참여한 여행객들이 전통시장에서 치즈를 맛보고 있다. 최승표 기자

‘미트패킹 디스트릭트’는 원래 대형 축산시장이었다. 2000년대 들어 천지개벽했다. 도축장과 정육점 대부분이 지방으로 떠났고 그 자리에 벤처기업, 미술 갤러리, 식당이 들어섰다. 우중충했던 동네 분위기도 싹 달라졌다. 푸드투어에서는 유기농을 표방한 비스트로와 수제 아이스크림 가게를 들렀다. 4시간 동안 쉼 없이 먹었는데 배가 금방 꺼졌다. 건강식이어서일까, 3만 보 이상 걸어서일까.

코펜하겐에서도 새롭게 뜨고 있는 미식 거리인 '미트패킹 디스트릭트'. 대형 도축장들이 지방으로 빠져나가면서 식당, 갤러리 등이 빈 자리를 채웠다. 최승표 기자

코펜하겐에서도 새롭게 뜨고 있는 미식 거리인 '미트패킹 디스트릭트'. 대형 도축장들이 지방으로 빠져나가면서 식당, 갤러리 등이 빈 자리를 채웠다. 최승표 기자

덴마크의 평범한 밥상 

현지인과 어울려 식사를 하는 기회도 있었다. 옛 교회 건물을 활용한 일종의 사교장인 ‘압살론(Absalon)’에 매일 저녁 180명이 모인다. ‘소셜 다이닝’ 혹은 ‘커뮤니티 디너’라고도 하는 식사를 즐기기 위해서다. 코펜하겐에 사는 마리아, 조세핀과 한 테이블에 앉아 샐러드와 빵, 토마토 양념에 절인 소고기 요리를 먹었다.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는데 몇 가지 숫자가 기억에 남았다. 덴마크 법정 노동시간은 주 37시간, 한 해 휴가는 최소 25일이란다. 괜히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선진국이 아니다.

덴마크 사람들은 어울려 식사하는 걸 좋아한다. 압살론에 모여 '커뮤니티 디너'를 즐기는 사람들. 최승표 기자

덴마크 사람들은 어울려 식사하는 걸 좋아한다. 압살론에 모여 '커뮤니티 디너'를 즐기는 사람들. 최승표 기자

압살론의 가장 큰 매력은 가격이다. 코펜하겐 음식값은 만만치 않다. 오픈 샌드위치 하나에 음료 한 잔 마시면 보통 170크로네(3만원)가 훌쩍 넘는다. 오죽하면 코펜하겐 관광청도 홈페이지에서 ‘가성비 맛집’과 ‘저렴한 음식’을 따로 소개할 정도다. 압살론 저녁 식사는 50크로네(약 8800원)로 부담 없다. 맛도 훌륭한데 친구까지 사귈 수 있다. 압살론을 만든 주인공은 한국에도 있는 생활용품점 ‘플라잉 타이거’의 창업자 ‘레너트 라보쉬츠’로, 돈벌이보다 사회 공헌 차원에서 압살론을 운영한다. 주민들은 압살론에서 탁구, 요가도 즐긴다.

외국인 관광객이 덴마크 현지인 집에서 저녁을 먹는 프로그램을 만든 애넷 웨버(오른쪽)와 그의 남편 토마스. 최승표 기자

외국인 관광객이 덴마크 현지인 집에서 저녁을 먹는 프로그램을 만든 애넷 웨버(오른쪽)와 그의 남편 토마스. 최승표 기자

다음 날 저녁은 현지인 가정집에서 먹었다. ‘밋 더 데인스(Meet the danes)’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했다. 2001년 이 프로그램을 만든 창업자 아넷의 집에 가봤다. 애피타이저인 버섯 볶음부터 타르트 디저트까지, 덴마크 가정식은 과연 건강한 맛이었다. 무엇보다 아늑한 분위기에서 낯선 이를 환대해준 웨버 부부의 마음씨 덕에 잊지 못할 밤을 보냈다. 3년 전부터 한국서도 유행한 ‘휘게(아늑함, 편안함을 뜻하는 덴마크어)’가 대단한 게 아니란 걸 알았다. “휘게란 양초를 켜고 비싼 덴마크 디자인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 좋은 감정을 나누는 모든 것”이란 아넷의 말이 계속 생각난다.

아넷의 집에서 먹은 저녁 식사. 레몬을 얹어 오븐에 구운 닭고기 말고는 아주 친숙한 맛이었다. 삶은 옥수수, 찐 흑미, 신선한 채소로 만든 샐러드는 아주 건강한 맛이었다. 최승표 기자

아넷의 집에서 먹은 저녁 식사. 레몬을 얹어 오븐에 구운 닭고기 말고는 아주 친숙한 맛이었다. 삶은 옥수수, 찐 흑미, 신선한 채소로 만든 샐러드는 아주 건강한 맛이었다. 최승표 기자

관련기사

 코펜하겐(덴마크)=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