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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추석 밥상머리, 두 개의 민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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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강민석
강민석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민석 정치에디터

강민석 정치에디터

어떤 추석 밥상머리 얘기다. 일 년에 이때 아니면 모이기 어려운 동창 모임에 갔더니, A의 눈빛이 꼭 ‘뭐든 물어주겠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지금 상황에서 언론에 있는 친구에게 물어볼 말이야 뻔한 것 아닌가. “조국 장관 얘기하기 없기. 물어도 할 말 없음.”

리스크 안고 가는 ‘조국 임명’ #가장 큰 리스크는 국민 분열 #상처 치유와 통합이 절실한 이유

선수를 친 이유가 있었다. 여러 명이 모인 그 자리에는 A와 정치성향이 반대인 B도 있었기 때문이다.

A는 보수, B는 진보이면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였다. 친구끼리라도 요즘 같은 분위기엔 낯붉히기 십상 아닌가. 서로 조심하려는 표정은 역력했지만, 그래도 그 주제를 끝까지 피할 순 없었다.

이 얘기, 저 얘기 하다 A가 유튜브에서 봤다면서 ‘사노맹’(사회주의 노동자 동맹) 활동을 했던 조국 법무부 장관이 ‘주사파’라고 주장했다. “사노맹과 주사파는 ‘족보’가 다른 건데?” 아뿔싸. A가 하는 말에 끼어들고 말았다. 이로써 둑이 무너졌다. 그는 문 대통령의 조국 장관 임명에 화를 냈다. 도덕성을 상실한 진보도 진보냐면서. 그런데 왜 감싸고 도냐면서. “검찰 개혁 때문 아니겠냐”고 했더니 A는 “검찰 개혁이 대통령에게 얼마나 절실한 것일지 몰라도 나 같은 국민한테는 한가한 소리”라고 열을 올렸다. 조 장관 임명에 화가 나는 것이 결국은 ‘경제’ 때문이라고 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 몰라? 먹고살 만하면 왜 문제겠어. 먹고 살기 힘든데 강남좌파 얘기를 들으니 더 화가 나는 거지.”

서소문 포럼 9/17

서소문 포럼 9/17

A는 대기업에 하청을 하는 제조업체 사장이다. 종업원은 30명 정도. 최저임금 인상으로 매달 1000만원, 1년에 1억2000만원 지출이 늘었다고 한다. 소기업 사장 입장에선 오롯이 개인 지갑에서 나가야 하는 돈이다. 회사 매출은 경기가 좋지 않아 전년 대비 30% 정도가 줄었다고 한다. 그는 “나는 내가 중도보수쯤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극우라 불러도 좋다”고 서슴없이 말했다. 불만이 아니라 반감이었다. 그런 A가 정운찬 전 동반성장위원장이 지난 2011년 제시한 ‘이익공유제’라는 개념을 현장에서 느낀 해법으로 꺼냈다. 이익공유제란 것이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면서도 그는 “대기업이 하청업체와 이익의 10%든 15%든 좋으니 평가해서 나누고, 그걸 하청업체 사장이 갖는 게 아니라 근로자의 최저임금 인상분으로 쓰게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스스로 극우라는 A가 이익공유제 같은 진보정책을 얘기하니 얼마나 역설적인 현실인가. 지지부진하긴 해도 사실 문재인 정부는 국정과제로 ‘협력이익 공유제’를 추진하고 있다. A는 그 사실을 몰랐다.

B는 시종 A의 말을 묵묵히 듣기만 했다. B의 생각을 물어봤다. 그는 의외로 "만약 나한테 ‘조국 후보자가 법무부 장관에 적합하냐’고 묻는 여론조사 전화가 걸려왔으면 ‘아니다’라고 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조국 장관 임명에 찬성하냐 반대냐고 묻는다면 찬성”이라고 했다. “임명 전이라면 모를까, 문 대통령이 임명을 한 이상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문 대통령이 조 장관을 임명한 게 지난 9월 9일이다. 하루 전인 9월 8일, 몇몇 여권 인사에게 문 대통령의 결정에 관해 물어봤다. “지금은 다들 고(go)하는 분위기지만, 하루하루 나오는 것이 심상치가 않다.” “(임명은) ‘부담스럽지 않은가’ 하는 얘기를 많이 하던데….” 표면과 이면은 분명 달랐다. 어떤 인사는 거꾸로 내게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할 것 같냐”고 되물었다. 검찰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게 사실상 ‘자결용 칼’을 들이대는 듯한 상황이라 문 대통령이 물러설 것 같지는 않았다. “임명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나도 그래서 걱정”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마치 그와 같은 무거운 공기를 B에게서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무거운 공기의 정체는 곧 위기감일 것이다. 위기가 기회라고들 하지만, 위기는 피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조 장관을 임명하면서 ‘리스크를 안고’ 간다. 작금의 ‘조국’(검찰개혁) 대 ‘윤석열’(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의 대결 구도 자체가 리스크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문 대통령 스스로 진단한 “임명 찬성과 반대의 격렬한 대립”과 그로 인한 “자칫 국민 분열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 가장 큰 리스크일 것이다. 리스크를 방치하면 진짜 위기가 올 수 있다. 상처 입은 이들에 대한 ‘치유’와 갈라진 사람들의 ‘통합’이 시급한 이유다. 검찰은 검찰이 해야 할 일을, 장관은 장관이 해야 할 일을 해 나가는 것처럼, 여권은 여권이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지금의 혼돈이 ‘성장통’으로 끝나길 바라서 하는 소리다.

강민석 정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