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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소노믹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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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최지영 기자 중앙일보
최지영 산업2팀장

최지영 산업2팀장

1억5100만여명. 글로벌 1위 인터넷 동영상서비스(OTT) 업체인 넷플릭스의 전 세계 구독자 수다. 넷플릭스는 광고 없이 구독료만으로 올 2분기 매출액 49억2000만 달러(약 5조8700억원)를 벌어들였다.

넷플릭스 구독자 중 60% 이상은 미국을 제외한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도 넷플릭스발 태풍의 중심권에 진입했다. 오리지널 콘텐트가 강하고, 케이블 시청료가 미국보다 훨씬 싸 국내에선 ‘찻잔 속의 태풍’에 지나지 않을 거란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간 지 오래다. 리서치 전문업체 닐슨코리아클릭에 따르면 올 7월 기준 넷플릭스 국내 유료 가입자 수는 186만 명으로 일 년 만에 4.4배 늘었다. 반면 국내 7개 OTT 유료 가입자는 1274만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오히려 10.4% 줄었다.

넷플릭스는 ‘승자 독식 시스템’을 추구한다. 누적 채무는 85억 달러에 달하지만, 경쟁사들이 따라오지 못하게끔 한해 80억 달러(약 8조80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투자비를 오리지널 콘텐트 제작에 퍼붓는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6월 30일자 특집기사로 이런 넷플릭스의 사업 방식을 다루면서 이를 ‘넷플릭소노믹스’(Netflixonomics, Netflix+economics)로 불렀다. 하나의 경제현상이란 의미다. 넷플릭스가 콘텐트 제작·구매·배급을 수직계열화하고 저렴한 가격에 이를 글로벌 소비자에게 유통하는 새로운 경제 생태계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넷플릭스발 태풍은 글로벌 경쟁 업체들까지 바꿨다. 디즈니가 디즈니+를 오는 11월 미국·캐나다·네덜란드 등에서 출시하고, 하드웨어가 주력이었던 애플도 같은 달 100여 개국에 애플 TV+를 선보인다. “넷플릭스가 아니었으면 애플이 애플TV+를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외신들의 진단이다. 아마존·페이스북·애플·구글 등 글로벌 IT 거인 대부분은 자신들의 출발지가 어디였던지 상관없이 OTT 시장에서 넷플릭스와 한판 뜨려고 하고 있거나 이미 뜨고 있는 중이다.

넷플릭스는 한국에 동전의 양면이다. 콘텐트 제작자들에겐 넷플릭스의 등장이 반가울 수 있다. 제작의 자율성을 극도로 보장하는 데다 제작비까지 넉넉하게 주는데, 콘텐트를 글로벌 시장에 태울 채널까지 확보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이달 초 한국 영화 115개를 추가했다. 현재 10편 이상의 한국발 오리지널 콘텐트 제작 및 공개를 앞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결국엔 종속을 우려하는 전망이 우세하다. 넷플릭스는 콘텐트 공급업자에겐 독점권을 요구해 2차 판권 시장을 파괴한다. 망을 까는 통신사는 막대한 트래픽 부담을 짊어진다.

이런 넷플릭스만 해도 무서운데 애플TV+도 연내에, 디즈니+도 내년 한국에 상륙한다. 글로벌 OTT 공세에 한국 시장이 종속될 것을 염려한 토종 OTT가 잇따라 결성 소식을 알렸다. 16일 출범식을 한 SK텔레콤과 지상파 3사의 연합체 ‘웨이브’에 이어, CJ ENM과 JTBC가 연합한 OTT도 내년 초 설립과 서비스를 시작한다.

분명한 것은 넷플릭소노믹스가 미디어·통신 산업에만 태풍을 몰고 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소비자의 시간을 잡고, 소비자를 잡는 플랫폼인 때문이다. 글로벌 IT 거인들이 너도나도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쇼핑몰의 경쟁자는 야구장, 테마파크’라고 말한 것처럼, 소비자의 시간을 누가 차지할지를 놓고 미디어·통신산업뿐 아니라 국내 내수 산업 전체가 넷플릭소노믹스의 영향을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지영 산업2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