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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편만 보려하는 조국의 검찰 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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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원배 사회 부에디터

김원배 사회 부에디터

추석 연휴 책장을 정리하다 책 한 권을 찾았다. 첫머리에 이런 내용이 나왔다.

“과거 자신의 말과 기준을 180도 바꾸면서 권력 유지·행사에 올인하는 후흑한(厚黑漢·두꺼운 얼굴과 시커먼 마음을 지닌 사람) 들이 기세등등하게 완장을 차고 설친다. 민주주의를 다수결 주의로 환치시키고 반대파와 비판자를 법치의 대상으로 파악하는 이들은 다음과 같이 당당하게 말한다. ‘지난 선거에서 다수가 우리를 뽑았잖아. 우린 임기 동안 우리 편끼리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억울하면 다음 선거에서 이겨서 너희 마음대로 하면 될 거 아냐. 물론 너희가 이기게 놔두진 않을 거지만…’”

조국 법무부 장관이 2010년 서울대 교수 시절 출간한 『진보집권플랜』에 나오는 대목이다. 당시엔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9년이 지났지만 문재인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야권이 사용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2010년의 조국’이 ‘오늘의 조국’을 보면 과연 무슨 소리를 할까.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는 검찰 개혁을 외쳤지만 역설적으로 적폐청산을 담당한 검찰의 힘은 더 커졌다. 수사를 받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도 여럿 나왔다. 당시에도 피의사실 공표, 인권침해, 과잉 수사 논란이 일었지만 적폐청산이란 명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이를 주도한 특수통 검사들은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지난달 초 검찰 인사에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동부지검의 몇몇 간부들은 좌천돼 사표를 냈다.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댄 결과가 어떻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수사를 맡았던 주진우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장은 사직 의사를 밝히며 검찰 통신망에 “정도를 걷고 원칙에 충실하면 진정성을 알아줄 거라는 믿음, 능력·실적·신망에 따라 인사가 이뤄진다는 신뢰, 검사로서 명예와 자긍심이 엷어졌단 느낌을 받았고 공직관이 흔들렸다”는 글을 올렸다.

조 장관은 검찰 개혁이 소명이라고 했다. 하지만 부인이 사문서위조 혐의로 기소됐고 5촌 조카가 체포됐다.

조 장관은 취임하면 일가 수사와 관련한 보고를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김오수 법무부 차관과 이성윤 법무부 검찰국장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배제한 독립수사팀 구성을 대검 간부들에 제안한 사실이 드러났다. 조 장관은 “몰랐다”고 하고 있지만, 법무부가 장관 호위 조직으로 전락했다는 의심을 사기 충분하다.

조 장관은 취임 후 특정 검사를 콕 집어 의견을 들으라고 했고, 내부 감찰 강화를 지시했다. 이어 검찰의 조직 문화와 승진 제도를 바꾸겠다고 했다. 하지만 주진우 전 부장검사가 검사로서의 명예와 자긍심이 엷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살피지는 않으려는 것 같다.

조 장관은 일본과의 갈등 국면에서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의 저서 『반일종족주의』의 주장에 동조하는 세력을 친일·매국 세력이라고 규정해 논란이 일었다. 인사청문회에선 “거친 표현”이라고 물러섰지만, 그런 편가르기식 사고로 검찰 개혁을 추진한다면 엄청난 분란이 생길 것이다.

그는 『진보집권플랜』에서 “검찰을 쪼갠다고 하면 검사들이 반발하겠죠. 그러면 ‘너 나가라’고 하면 되는 거예요”라고 적었다. 이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면 인사권을 최대한 행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적 개편을 통해 내 편엔 인권 수사, 비판자에겐 엄정 수사를 하는 조직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죽은 권력을 단죄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살아 있는 권력의 잘못된 점을 밝혀 그 권력이 타락하지 않게 하는 것도 검찰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런 걸 훼손하는 조치는 검찰 개혁이라고 할 수 없다.

김원배 사회 부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