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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는 무너졌다, TV로 향하는 영화감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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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600만 흥행 영화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은 JTBC ‘멜로가 체질’(왼쪽)로 처음 드라마 극본·연출에 나섰다.

1600만 흥행 영화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은 JTBC ‘멜로가 체질’(왼쪽)로 처음 드라마 극본·연출에 나섰다.

올해 초 1600만 관객을 동원한 코미디 영화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은 지난달 시작한 JTBC 16부작 ‘멜로가 체질’로 드라마 극본·연출에 도전했다. 서른 살 여성들의 일과 삶을 코믹한 대사에 실어 매니어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천만 감독 잇따라 드라마 데뷔 #‘극한직업’ 이병헌은 ‘멜로가 …’ 연출 #‘부산행’ 연상호는 ‘방법’ 극본 맡아 #촬영·미술도 충무로서 대거 이동

지난달 31일 처음 방송한 OCN 주말 시리즈 ‘타인은 지옥이다’. 지난해 저예산 스릴러 영화 ‘사라진 밤’으로 흥행을 거둔 이창희 감독이 동명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연출한 드라마다. 갓 상경한 작가 지망생(임시완)이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득실대는 싸구려 고시원에 살게 되는 이야기다. 드라마 ‘구해줘’의 정이도 작가가 극본을 쓰고, 나머지 제작진은 대부분 영화 스태프로 꾸렸다.

영화 ‘수상한 그녀’의 황동혁 감독은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극본·연출을 맡았다. 100억 상금이 걸린 서바이벌 게임에 나선 사람들을 그리는 드라마다. 앞서 영화 ‘터널’의 김성훈 감독은 넷플릭스 좀비 사극 ‘킹덤’을, 박찬욱 감독은 영국 BBC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을 연출했다.

최근 방영을 시작한 OCN 시리즈 ‘타인은 지옥이다’는 영화 ‘사라진 밤’의 이창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사진 각 방송사]

최근 방영을 시작한 OCN 시리즈 ‘타인은 지옥이다’는 영화 ‘사라진 밤’의 이창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사진 각 방송사]

◆영화같은 드라마로 차별화=영화감독의 드라마 연출이 크게 늘고 있다. 드라마 제작 편수가 한해 150여 편으로 급증하고, 완성도 높은 드라마 제작이 늘면서 두드러지고 있는 현상이다.

장르물 전문 채널 OCN이 올해 출범한 ‘드라마틱 시네마’는 이런 흐름의 선두에 있다. 이 프로젝트는 지난 2월 박신우 감독이 연출한 ‘트랩’을 필두로 후속작 ‘타인은 지옥이다’까지 충무로 인력을 대거 기용했다. 책임 프로듀서를 맡은 OCN 스튜디오 한지형 팀장은 “기존 16부작 드라마의 문법을 파괴한 이야기와 제작방식을 찾다 보니 ‘안시성’의 남동근 촬영감독, ‘인랑’의 박재현 미술감독 등 연출 외에도 영화계 스태프가 많이 합류했다”고 말했다.

다만 “TV 매체는 극이 너무 늘어지거나 어두우면 시청자가 기다려주지 않기에 이야기를 푸는 방식과 리듬을 고민하며 모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OCN은 ‘드라마틱 시네마’ 시리즈로 내년에 4편 이상, 내후년 6편을 선보일 계획이다.

◆이젠 플랫폼보다 이야기=영화 제작 방식이 필름에서 디지털로 바뀌고, 드라마 제작 규모가 커지면서 두 현장의 촬영 장비 및 기법의 격차가 줄어든 것도 인력 교류가 원활해진 배경이다. 지난해 ‘킹덤’ 공개 당시 만난 김성훈 감독은 “2시간에 담지 못한 서사가 분명 있다”면서 “드라마 산업이 성장하면서 창작자 입장에선 놀이터이자 일터가 새롭게 늘었다”고 했다.

이병헌 감독. [연합뉴스]

이병헌 감독. [연합뉴스]

‘멜로가 체질’의 이병헌 감독은 “이제 어떤 플랫폼인지보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가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멜로가 체질’은 한집에 사는 드라마 작가(천우희), 애인을 잃은 다큐멘터리 감독(전여빈), 워킹맘 마케터(한지은)의 고충을 사려 깊게 그렸지만, 대사의 밀도가 높아 오히려 진입장벽이 높다는 지적도 받는다. 이 감독은 “올 한해 1600만(‘극한직업’ 관객 수)부터 1(‘멜로가 체질’ 시청률)까지 다 경험했다”면서 “극본·연출을 겸하는 모험이 쉽지 않았다. 제가 하고 싶은 것과 대중이 원하는 것의 간극을 어떻게 좁혀나갈지, 매일매일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TV는 처음, 연출은 베테랑=지상파가 아닌 채널들이 주도권을 쥐게 된 것도 영화감독의 드라마 진출을 부추겼다. 이들 채널은 공채 PD를 육성하는 지상파 방송국과 달리 외부 베테랑 연출가를 전략적으로 기용하고 있다.

연상호 감독

연상호 감독

CJ그룹 산하 드라마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은 지난해 tvN 단막극 ‘드라마 스테이지’ 수록작 10편 중 5편에 ‘로봇, 소리’의 이호재, ‘마돈나’의 신수원,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안국진 등 영화감독을 기용했다. 내년엔 천만 영화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의 드라마 극본 데뷔작으로 tvN에서 ‘방법’을 방영한다. 국내 최대 IT기업의 비밀을 파헤치는 기자와 특별한 능력을 지닌 소녀가 만난 미스터리 스릴러로, 영화 ‘챔피언’의 김용완 감독과 한동환 PD가 각각 연출과 제작 프로듀서를, ‘곡성’의 임민섭 프로듀서가 제작총괄을 맡았다.

◆스크린 경계 사라진다=내년 넷플릭스에선 영화 ‘특별시민’의 박인제 감독이 메가폰을 이어받은 ‘킹덤’ 시즌2, ‘비밀은 없다’의 이경미 감독이 연출하는 초능력 미스터리 액션물 ‘보건교사 안은영’ 등을 190개국에 공개한다. 이들 시리즈에 영화감독을 기용한 데 대해 넷플릭스 관계자는 “작품에 맞는 최선의 감독과 함께 한다”고 답변했다. 더는 영화·드라마 경력을 구분하는 것이 의미 없다는 얘기다.

원소스멀티유즈에 대한 관심도 경계를 더욱 허물어뜨릴 전망이다. OCN 스튜디오 한지형 팀장은 “최근엔 기획 초기부터 영화판·드라마판 제작을 염두에 두기도 한다”면서 “영화의 스핀오프를 TV 시리즈로 제작하거나, 드라마의 결말을 극장에서 영화로 보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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