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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인생 40년 만에 혼자 보내는 추석, 너무 좋다 했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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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05)

명절이 아니면 가족이란 이름의 우리가 언제 한자리에 모이겠는가. 아직은 많은 사람이 고향을 찾아가고 부모님을 찾아뵈러 떠난다. [연합뉴스]

명절이 아니면 가족이란 이름의 우리가 언제 한자리에 모이겠는가. 아직은 많은 사람이 고향을 찾아가고 부모님을 찾아뵈러 떠난다. [연합뉴스]

이번 추석은 색다르다. 혼자 4일 내내 여유를 부릴 수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아무도 우리 집에 안 오기로 했단다. 40년 며느리인생으로 명절날이면 북적거리는 것만 경험해 와서 어떤 기분인가는 아직 상상이 안 된다. 이틀 후면 추석 연휴가 시작된다.

가난한 젊은 시절엔 추석이, 설날이, 가족과 함께 하는 각종 빨간 날이, 정말이지 계륵 같은 존재였다. 그날이 다가오면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며 마음을 이완시켰다. 그러나 명절이 아니면 가족이란 이름의 우리가 언제 한자리에 모이겠는가. 아직은 많은 사람이 고향을 찾아가고 부모님을 찾아뵈러 떠난다.

명절날 종일 부엌에서 서성거리고 한복 치맛자락을 끌고 산에까지 가서 성묘해야 했던 지난날을 생각하니 한 편의 영화 같다. 그리고 그 시절엔 당연히 그렇게 살았고 다녀와 몸살이라도 나면 제 몸 하나 간수 못 하고 병이 난 내가 핀잔을 들었다.

몇 년 전 친가, 시가 어른들이 모두 돌아가시고 어쩌다 내가 최고 고참이 되었다. 가장 오래 사신 시어머님이 83세에 돌아가셨으니 그리되었다. 명절이 되면 홀가분하다고 하면 욕을 먹겠지만, 사실 그렇다.

우리 집이 큰집이기도 했지만 위로 챙겨야 할 어른이 없다는 홀가분함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형제들을 위해 정성껏 음식을 만들고 대접했다. 떨어져 있던 형제라도 오랜만에 만나면 손님인지라 이 음식이 좋을까 저게 좋을까 장 보는 게 힘들기도 하지만 맛있게 먹어주는 것만으로 행복하고 즐거운 날이 되었다.

가족들에게 정성껏 음식을 대접해 맛있게 먹는 걸 보면 참 행복하고 즐거웠다. 나도 차례상을 기본으로 두고 그 외 음식을 여러가지로 바꿔가며 대화를 열기 위해 노력했다. 사진은 본 글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연합뉴스]

가족들에게 정성껏 음식을 대접해 맛있게 먹는 걸 보면 참 행복하고 즐거웠다. 나도 차례상을 기본으로 두고 그 외 음식을 여러가지로 바꿔가며 대화를 열기 위해 노력했다. 사진은 본 글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연합뉴스]

요즘은 차례 음식은 기본으로 차리지만, 그 외에 음식은 모두 맛집 수준으로 차린다. 나도 고참 자리에 오른 후부터 해마다 소고깃국, 추어탕, 안동 찜닭, 월남쌈 등 주메뉴를 바꿔가며 음식으로나마 서먹한 해후에 오는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노력했다.

시대는 점점 개인주의로 변하여 이젠 아무리 큰 평수에 살아도 오랜만에 만났다고 밤새 떠들고 놀지도 않고 한집에서도 잘 안잔다. 내가 일하는 고택에도 추석 연휴 내내 숙박이 예약되었다.

그래서 시댁 형제들에게 이번 추석엔 출근해야 하는 관계로 하룻밤 함께 떠들지 못하고 당일 아침 한 끼만 먹고 헤어져야 한다는 양해문자를 보냈다. 그러고 나니 1박 2일이라도 최소한 세끼를 차려야 하는 부담이 한 끼로 줄어들어 할 일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미안한 마음이 앞서는데 전화가 온다.

“형님, 출근해야 한다면서요. 그럼 힘든데 이번에는 명절날 모이지 말고 다른 날 하루 날 잡아서 식당서 만나 밥 먹어요. 그리고 이참에 우리도 다음부터는 명절 때 큰집에서만 모이지 말고 돌아 가미 모입시다. 맨 날 형님만 힘들고, 한 해 한 해 몸도 다른 데 그리 합시더.”

부모님 살아 계실 때도 할 말을 너무 확실하게 해서 모두 어려워하는 첫째 동서다. ‘살다 보니 이런 일이.’ 시대를 따라가자는 거지만 덥석 좋아하기엔 어른 체면이 아닌지라 큰 웃음으로 대신했다.

이번 추석엔 자기가 총대를 잡고 형제들에게 전화하겠단다. 부인의 말에 의문형은 죽음 아닌가. 집안일에서는 나를 최고로 쳐주는 이런 동서가 있으니 내가 더 대우받는 것 같다.

그래도 장을 봐야 하나 어쩌나 어수선한 마음인데 시동생들이 들고 올 선물이 택배로 먼저 도착한다. (진짠가베…….) 명절엔 혼자서 아침 일찍 남편 묘지에 다녀와서 출근하여 종일 책을 읽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홀가분하고 좋을 것 같은데 잠시 들러 그 소식을 들은 사위가 말한다. “에이 설마요? 장모님, 그래도 걱정하지 마이소. 추석날 차례만 지내고 오후에 우리가 갈게요.” 어쩐지 잘 나간다 했더니 너무 설레서 자식 생각을 안 했다. 하하.

너무너무 좋으면서도 너무너무 안 좋은 것 같기도 한 이 이상한 기분은 하며 잠깐 낮잠을 자는데 꿈속에서 시동생가족들이 우르르 들어 오길래 맨발로 달려나가서 끌어안고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에휴, 꿈을 깨자. 명절은 명절답게! 모두 모두 행복하고 즐거운 명절 되십시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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